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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Mar 05. 2023

결국 마음의 문제였다.

글쓰기가 어렵다.

30대 후반부터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늦거나 혹은 늦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살아보니 절대적으로 빠른 건 없었다. 다 상대적인 것이었다. 철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평소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에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곧 철학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이고. 너는 무엇이며.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해 간다. 이것은 절대적이며 때로는 상대적이었다.


글쓰기가 어렵다. 다양한 제목으로 글을 적었지만 발행하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난 이걸 왜 쓰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가 있기에 글을 쓰는 작가가 있고, 작가가 있기에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 난 누군가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쓰지만 과연 이것이 읽는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는 글을 쓰다 멈추게 된다.


30대 후반의 삶은 깨달음의 연속인 시간들이 더해졌다. 신기한 것은 멀 알겠다 싶을수록 더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절판된 법정 스님의 <인연 이야기>라는 책을 중고로 구했다. 그 책에서 한 스님이 도를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음경을 자르려고 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부처는 스님에게 한마디를 한다. '도의 수행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음경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스님의 생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욕망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음경이 있어서 성욕이 생긴다고 생각한다면 당연 스님 같은 행동도 이해가 된다. 다만 음경은 내가 얻고 싶어서 얻은 것이 아니며 태어날 때부터 나의 신체 일부인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는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만약 음경을 잘라 욕망자체를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그런 식의 수행을 할 것이면 수행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마음수행은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고 존재를 이롭게 쓴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스님은 도를 깨우치는 것도 일종의 욕망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부처는 하나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욕망을 제거 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욕망들을 두루두루 이해하여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법륜 스님의 동영상도 한편 보게 되었다. 한 아내가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괴로워하니 자신도 너무 답답하고 괴롭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스님이 그 아내의 이야기를 으니 나도 답답하고 괴로운데 당신은 내가 이런 마음이 들게 하고 싶었냐고 물어보았다. 그 아내는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은 누가 주는 것이지요?라고 스님이 물어봤다.


100%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올라오는 욕망, 아픔, 슬픔등은 결국 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땐  공부 잘하고 잘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그냥 나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할 의도가 있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내가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던 것이다. 본인의 의도는 본인만 알 수 있는 것이고, 그 의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결국 내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심지어 나도 누군가에게 의도와 달리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 후 상대에게 나의 이야기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지만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적지만 자기 자랑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글쓰기를 멈춘다.


 부처는 우연히 음경을 자르려고 하는 스님을 보게 되었다. 혹은 그 스님이 부처님의 주변에서 음경을 자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연이란 생각을 한다. 어떤 일에 답을 구하는 사람과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어.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선행을 하게 되고, 답을 알게 된 사람은 더 나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결국 상부상조이다.


브런치에서의 인연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어디에서 떠도는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글 쓰기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브런치 작가의 글을 보며 도움을 얻고 있다. 책 한 권의 한 에피소드가 내가 찾는 답이 되며, 그것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부지런하게 살고 있는 사람과의 인연 된다. 또한 고전을 읽으며 나는 과거의 분들과도 인연을 맺는다. 과연 그분들은 후세의 누군가 자신의 고찰이 담긴 글들에서 답을 찾아 마음이 밝아지고 삶이 이롭게 바뀌는 것을 상상했을까? 분명 그 바람은 그 글 안에 있고, 이것을 인연이라 생각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에 달려있었다.


 세상에는 엄청 많은 고전이 있다. 브런치에도 좋은 글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다 읽어 볼 수 없다. 인연이라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연이 있고 다 만나 볼 수 없다. 운명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내 삶에서 만나야 할 좋은 인연들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인연을 만날수 있냐 없냐는 결국 내 마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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