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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Jan 31. 2023

언 수도 녹이기

언 관계 녹이기

 선 연휴 오전 8시 30분 아내가 다급하게 나를 깨운다.


"여보, 물이 안 나온다."


 어제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물을 조금 틀고 자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우리 집은 오래된 아파트에 구조상 베란다가 많이 춥기에 겨울에 한 번씩 수도가 언다. 문제는 다음날 따뜻해지면 괜찮지만 며칠 동안 계속 추우면 수도관이 깨질 수 있어서 빨리 녹여야 한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언 수도를 녹이는 작업에 돌입한다.  

 

 이번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며 제대로 수도가 얼었다. 다행히 계량기 이후부터 얼어서 계량기를 교체할 필요는 없었다. 몇 년 전 수도가 얼었을 때는 계량기가 동파돼서 교체를 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 다행인 일이었다. 10시간이 걸려 베란다의 전체 수도관을 다 녹였다. 손은 다 부르텄고 나의 휴일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물이 나옴으로 변기를 사용할 수 있고, 정수기 물을 마실 수 있으며, 따뜻한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이렇게 나의 수도 녹이는 기술은 더욱 발전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한파에 물 틀고 자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 언 수도 녹이기에 관한 추억


 4년 전,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카페를 운영했다. 대학교 앞 조그만 개인 카페였다. 결과적으로 지금 다시 회사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 회사를 나올 때는 다시는 회사생활 안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회사 생활이 그리웠던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때가 가게에 수도가 얼었을 때다. 물이 나와야 장사를 할 수 있는데 24시간 동안 해빙기로 수도를 녹여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24시간의 추위와 싸우며 해빙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야외에 있는 타일을 깨고 땅을 파서 수도관을 녹였다.


 언 수도가 녹을 때까지 해빙(解氷)하는 일은 방향성이 바뀌는 상사에게 OK 사인이 나올 때까지 보고하는 일만큼 아주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다시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서 보고를 할 때마다 방향성이 바뀌는 상사와 만났다. 나는 해빙하는 일이 덜 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수도관이 얼면 수도관을 분해해서 어디가 얼었는지 알 수 있지만, 방향성이 바뀌는 상사에게 보고가 막히면 보고서를 뜯어봐도 어디가 오류인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언 수도를 녹이면서_ 백취생의 생각


 날씨가 추워지면 수도관이 얼어버린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가만히 두어도 얼었던 수도관이 녹는다. 하지만 날씨가 계속 추워지면 얼었던 수도관이 깨져버린다. 그러면 녹이기만 해도 될 수도관을 돈을 들여 새로 교체해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살다 보면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어붙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녹을 수도 있지만, 냉전이 계속되면 결국 깨진다. 다만, 수도관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할 수 있지만 깨진 관계는 교체할 수가 없다.


 수도관이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든 조금이라도 얼었다면, 녹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로 녹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혹은 수도관이 얼지 않도록 수도꼭지를 조금 틀어 놓는 것처럼 관계에서도 대화가 계속 흐를 수 있도록 생각을 조금 열어 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수도꼭지를 잠그면 추울 때 물이 얼듯이 생각을 잠그면 추울 때 대화가 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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