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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Jan 10. 2023

부담감의 역사

부담감에 대한 고찰

 첫 직장을 퇴사하고 나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퇴사 후 여유가 생겨 주변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졌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나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랑의 시작인 것 같다. 나는 첫 직장을 퇴사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다시 말해 나는 관심이 사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백수로 살다 보니 내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곧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고,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곧 내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것이 여유가 없던 과거에는 몰랐던 것 들이다.




 회사 안과 밖에서 주변 지인들과 대화하거나 혹은 독서를 통해 과거 내가 여유없이 살았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여유없이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나에게는 가부장 문화에서 오는 부담감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집안의 장손이고 장남이었다. 집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더불어 많은 부담감도 받았다. 너는 집안의 기둥이니까 네가 잘되어야 한다는 말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었고, 나는 자랑스러운 장손 겸 장남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10대와 20대를 보냈다. 사실 내가 공부를 잘하는 능력이나, 운동 혹은 기타 경제적으로 풍족할 수 있는 확률을 올리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나에겐 그런 재능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대체로 스스로 주변인들과 비교하며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맺는 모든 관계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다고 생각했다.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넘어서야 하는 경쟁관계가 되는 것처럼 배웠고 그렇게 느꼈다. 따라서 관계마다 가질 수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잘 이해하였을 때, 우리는 정서적으로는 안정되고, 자기 계발을 통해 한 명의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과거 내가 가진 부담감은 이중적 관계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부담감때문에 나는 상생보다는 경쟁하는 관계를 택했다고 생각을 했고, 나는 능력이 좋은 친구나 형제와의 관계가 항상 불편했고, 심할 때는 '여우의 신포도'처럼 남을 시기하여 자기 합리화로 인지 부조화를 견뎌냈다. 첫 직장을 관두고 부담감을 많이 내려놓은 뒤 내 삶은 많이 바뀌었다. 심지어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더 이상 타인과의 관계가 이중적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부담감은 불(不) 필요한 것일까?


  부담감은 사전적으로 어떠한 의무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느낌을 말한다. 반대로 의무나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없다면 부담감을 느낄 일도 없을 것이다. 분명 개인이 스스로에게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단지 살고 싶다는 생존 본능의 영역이기에 부담감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부담감은 인간이 집단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개인의 주변에 있는 타인에 의해 생긴 어떠한 감정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면 필수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 감정은 때로는 개인을 집단을 위해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집단을 위해 파멸시키기도 한다. 만약 인간에게 부담감이라는 느낌이 없다면, 과연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는 부담감이라는 느낌이 있었기에 우리가 집단을 만들고, 이렇게 생존하며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적절한 부담감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 과도한 부담감의 폐해


 하지만 주변을 관찰하면 과도한 부담감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마다 감정을 처리하는 정도가 다르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부담감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이 부담감을 타인에게 투사시켜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전자와 후자의 경험을 모두 해보았다. 전자의 경험은 첫 직장을 다닐 때였다. 그 당시 나의 부담감은 극에 달했고, 그로 인해 불안장애를 경험했다. 회사를 그만두자니 실망할 가족들에 대한 부담감으로 힘들었고, 계속 다니자니 나의 몸과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과도한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후자의 경험은 카페를 운영할 때 경험했다. 아니 사실은 고등학교 때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카페를 운영할 때 근처 대학교에서 일하는 고3 시절 친구가 찾아왔다. 여러 근황을 이야기하다 그 친구는 나에게 내가 고등학교 때 자신에게 한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니, 내가 "너는 그렇게 공부하고도 성적이 그거밖에 못 올리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니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잊고 지냈던 과거 나의 어두운 모습을 들켰고,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내가 부담감을 많이 느껴 그렇게 행동했다고 변명하고 싶지 않다. 분명 이런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여러 면에서 부족하여 벌어진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 직장에서는 유명을 달리한 동료에게는 나의 무례함에 대해서 사과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나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날 밤 함께 식사를 하며, 정말 친구에게 사과와 사과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을 했다. 물론 친구는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그 친구는 16년 동안 그 말을 잊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정말 후회할 짓을 많이 했고, '후회할 짓을 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 그래도 첫 직장을 퇴사한 이후에는 누군가에게 사과할만한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여기서 아내는 제외이다. 아내에게는 아직도 한 번씩 사과를 한다. 물론 이 횟수도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내가 잘못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남녀관계에서 잘잘못을 떠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험상 먼저 사과하는 것이 부부생활에 유리하다. 우리 부부는 다툼이 일어나면 보통 내가 먼저 사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다.




 나의 부담감 역사는 무례함과 고통의 역사였다. 부담감이 심해지면 내가 얼마나 무례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었고, 나에게 혹은 타인에게 얼마나 고통을 남길 수 있는지도 경험했다. 과거 나는 타인을 공생과 경쟁의 이중적 의미를 가진 대상으로 보는 실수를 했다. 물론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다. 친구이자 동료지만 경쟁자라고...... 하지만 백수가 되고 부담감에서 한 발짝 멀어지니 비로소 공생(共生)의 대상은 나를 포함한 우리이고, 경쟁의 대상은 언제나 어제의 나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부담감은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느껴야 하는 감정이지, 나와 공생하고 있는 존재와 비교하며 느껴야 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과거와 비슷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때만큼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백수 시절 경험 덕분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난 다시는 과거의 무례함과 고통의 역사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늘도 다짐한다.




지금 모바일로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계속 수정을 한다. 글을 쓸 당시는 보이지 않던 오점들이 글을 발행하고 나서는 보인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오점을 발견할 때 마다 수정할 수 있는 브런치의 글 처럼 내 삶도 오점을 발견할 때 마다 수정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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