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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Dec 03. 2022

후회할 짓 하지 마라

무리하지 않고 친절하기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후회할 짓 하지 마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체로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놀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 많이 들은 말이다. 누군가 과거 나의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후회하느냐라 묻는 다면, 솔직히 학창 시절 공부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볼 걸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10대의 나는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고 현재 나의 행동이 미래 나와 연관 있을 것이라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와 30대를 거쳐 곧 40대가 되니 나의 50대와 60대도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지금 나의 행동은 50대와 60대의 나에게 영향을 줄 것이란 것을 30대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30대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최근까지 백수로 사는 동안 지인들로부터 이전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후회해봐야 소용도 없는 일이지만, 10대의 멀 모를 때의 나의 선택과 30대의 퇴직 선택을 비교한다면 이 선택은 내가 40대 이후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선택이다. 다시 말해 멀 모르고 한 선택은 아니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막상 자영업도 하고 백수도 해보니 가끔 나의 선택이 옳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 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인들에게 첫 직장을 퇴사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나의 선택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나의 자존심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그것보다 퇴사 이후의 삶에서 알게 된 사실 때문에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내가 백수로 살며 깨달은 것은 일부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세상에 어떤 일이든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살이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후회를 하려면 과거 선택에 따른 현재의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첫 직장의 퇴사 선택에 따른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재 기준으로 100퍼센트 후회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 나의 선택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 좋은 선택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택들도 있었다. 그리고 좋지 못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었고, 반대로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를 후회하게 만드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백수가 된 이후에 나는 어떤 선택이 조금이라도 더 확률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드느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분석을 했다. 따라서 이번 글은 매 순간 후회를 덜한 선택을 하기 위한 나만의 규칙을 이야기하려 한다.  




"언제 후회를 하는가?"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후회 섞인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나는 후회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로 후회 없이 사는 사람은 없고, 두 번째로 우리 모두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후회하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직장을 예로 들어 누군가는 돈을 가장 원하고, 누군가는 휴식을 가장 원하며, 누군가는 명예를 원한다.


'그 주식 어제 팔았어야 했는데.'

'작년에 퇴사를 했어야 했는데.'

'그 팀으로 옮겼어야 했는데.'


 회사 동료들과 대화를 하면 자주 이런 후회 섞인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따라서 후회는 과거 자신의 선택에 의해 현재 본인이 생각할 때 원치 않는 결과에 도달했을 때 한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아무 선택을 하지 않는 다면 난 후회 없이 살 것이고 마음도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선택도 없고 따라서 후회도 없는 삶을 산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 딱히 선택할 일이 없을 것 같던 3년의 백수 시절도 크던 적던 매일매일 선택을 하면서 살았다. 원서를 낼까 말까, 공부를 포기할까 계속할까, 돈 없는데 점심을 먹을까 말까 등...... 선택하기 위해 사는 삶은 아니지만 살아보니 나는 살기 위해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살던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재취업을 했고, 경제적으로는 조금이라도 안정되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는 멀어졌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 100% 만족할 만한 선택이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하게 되었다.


 어차피 생존을 위해서 좋든 싫든 선택을 해야 하며, 세상에 100% 완벽한 선택은 없다. 그렇다면 그다음로 생각해 볼 것은 그래도 후회를 덜한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만 남아있다.


 이제 곧 마흔이 된다. 논어에서 마흔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불혹의 나이라고 표현했다. 생각해보면 아직 부족하긴 해도 과거보다 확실히 유혹에 흔들리는 횟수가 줄어든 것 같다. 과거에 쓴 <재능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라는 글에서 공자는 제자들로부터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불렸다는 내용이 있다. 나는 그 무리하지 않은 삶이란 살면서 최소한의 후회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내 주제를 알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나 사람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확실히 후회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을 많이 탐을 냈다. 좀 더 날 것으로 나를 표현하면 나는 염치없는 인간이었다. 공부에 관심도 없고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도 높은 성적 받기를 바랐고, 경험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서,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버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사업도 잘 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배울 점 많고 이쁘고 착한 여자 친구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내가 배울 점 많고 착한 남자 친구가 (잘생김은 10대에 포기했다.) 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 나의 연애는 모두 결말이 좋지 않았다. 이 모든 선택들이 후회는 되지만 사실 값진 후회이긴 하다. 덕분에 나는 내 주재를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최소한의 후회를 하기 위해서는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학창 시절부터 4지 선답의 인생을 살았다. 항상 모든 것에는 정답이 있다는 전제하에 얼마나 빠르게 정답에 도달하느냐를 두고 12년을 살았다. 그렇게 10대를 보내고 20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무의식적으로 쌓은 습관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대학교에서 학문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족보를 찾아다니거나, 그냥 책을 무작정 외워서 시험을 봤다. 분명 고등학교와 다른 면학 분위기였지만, 난 기존의 방식을 고수했다.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기존의 방식과 작별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만약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 나를 피폐하게 하는 방식(습관, 성격, 태도, 사람)을 계속 고수한다면, 그것은 무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가 있다.>


 후회되는 선택을 덜 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기라는 규칙과 더불어 나에게는 하나의 규칙이 더 있다.

 

 나를 돌이켜 보거나 주변 동료들을 관찰해보면 우리는 현재 처해진 환경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편한 행동을 하는 것 같다. 특히 그중에 분노와 짜증은 가장 선택하기 쉬운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분노와 짜증을 포함해 대부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 첫 직장에서 분노와 짜증이 가득한 사람을 종종 만났고, 나 또한 일을 하며 분노와 짜증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나의 이런 선택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분노와 짜증을 선택한 나의 과거를 후회한다. 왜냐하면 바이러스가 침투하더라도 어떤 이는 면역이 있어 아프지 않은 것처럼, 나도 분노와 짜증에 대해 면역이 있었다면 분노와 짜증에 전염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 직장에서 나는 해외에 장기적으로 출장을 다니는 직원 중 한 명이었다. 위에서 말한 가장 편한 행동을 선택한다는 원리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조직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한번 출장 보낸 사람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대체로 계속 출장을 보낸다. 조직 입장에서는 초보자가 숙련자로 변모할 동안 기다리는 것보다 숙련자를 바로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조직을 운영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출장 기간 동안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편한 행동을 선택했다. 분명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을 텐데, 어느 순간 매사에 분노하고 짜증을 냈다. 참 신기하게도 분노와 짜증은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감정인데도, 내가 근무한 회사에서는 그런 감정을 선택한 나에게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고객에 송부하기 위해 제품의 최종 품질을 점검하는 팀에서 일을 했다. 품성이 훌륭한 부모 밑에 품성이 훌륭한 자녀가 태어날 확률이 높듯이, 품질이 좋은 부품은 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낼 확률이 높다. 물론 부품 하나 만으로 고품질의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부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팀의 동료에게 많은 짜증을 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게시판에 본인상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본인 상의 대상은 나와 회의를 했던 부품 품질팀의 동료였다. 아마 내 인생에 가장 큰 후회가 되는 몇 가지 사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 전혀 생각을 못했다. 사과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당시 분노와 짜증을 내던 내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퇴사를 했다. 그 이후로 결심을 했다. 만남이 있다면 당연히 이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언제 갑자기 이별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내 주변에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항상 친절하겠다고......


 나는 백수로 지내다 얼마 전 내가 다녔던 회사의 협력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나의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의 맞은편에 은 분노와 짜증이 많은 팀의 한 선배가 나에게 너무 남의 입장 고려하며 일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후회할 짓을 하고 싶지가 않다.      





무리하지 않음과 최선을 다하기_백 취생의 생각


누군가는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는데도 계속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대로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을 잘못되었다고 느꼈는데도 계속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면, 그 또한 무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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