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했듯이 회사에서 품질관리의 최종 목표는 고객만족이다. 매년 대기업 경영자들은 어떻게 고객 만족을 시키는가에 관하여 신년사를 한다. 기술의 혁신, 팀워크 등을 이야기하는데 결국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고 일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 매해 다른 신년사이지만 잘 보면 결론은 동일하다. 내 인생이 제품이라면 내 인생의 고객은 나이다. 이번 글은 모든 제품은 각기 다른 Spec(규격)이 있듯이, 우리 인생 또한 각기 다른 Spec이 있다는 나의 인생 품질 관리 원칙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B2B와 B2C라는 용어가 있다. 제조업에서 일하다 보면 듣게 되는 용어인데, B2B는 기업대 기업의 거래를 의미하며, 기업이 생산자고 기업이 고객이다. B2C는 기업대 소비자의 거래를 일컫는 말로 기업이 생산자고 소비자가 고객이 된다. 참고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성전자는 B2C를 하는 기업이지만, B2B를 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과거 근무한 회사도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도 B2B 사업을 하는 회사이다. B2B 기업에서 제품 규격이 만들어지는 절차를 간단 설명하자면 우선 고객과 미팅을 하여 개발하려는 제품에 대한 Concept과 Spec에 대해서 입수한다. 그리고 Concept과 Spec은 제조 관련 부서과 개발 부서로 공유가 되고, 개발 부서와 제조 부서는 해당 Concept과 Spec을 만족시키기 제품의 Sample을 제작하고 다양한 Test를 진행한다. Test가 종료되면 Test 결과를 바탕으로 고객과 최종 Spec 협의를 진행한다.
이 글을 접하게 된 분들 중 혹시 제조업에 취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가정하에, 제품의 Sample을 만들고, Test 하는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려 한다.
① 고객에서 요구하는 Concept과 Spec이 내부 부서에 공유되면, 개발 부서는 제품 설계 도면을 만들고 제품에 들어갈 부품 업체에 연락하여, 1차 견적을 확보한다.
② 해당 견적서는 구매 부서로 전달이 되고 최종 설계 도면이 확정되면 부품 업체와 가격 협상을 하게 된다.
③ 제조 부서는 해당 제품을 만들기 위한 설비를 점검하고 신규 설비를 Set up(설치)한다. 설비, 사람, 작업 방법, 재료가 준비되면 개발 Sample을 만들며, 수율을 산출한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제품 수량을 맞추기 위해서 공정 부적합품률(불량률)을 계산한다.
④ 해당 부적합품률을 바탕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산출하여 영업팀이 고객과 제품 단가를 협상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이런 활동은 하위 부품사에도 동일하게 진행된다.
⑤ 고객과 모든 협의가 완료되면, 최종 제품 규격을 정하고 생산을 시작한다.
(과거 근무했던 회사에서 배운 내용을 요약하여 작성하였지만, 실제 내부 부서들의 Process까지 표현하면 더 복잡한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제품에 대한 Spec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부서가 협업해야 한다.)
내가 근무한 회사에서는 제품 Sample을 만드는 활동을 개발 Run이라 불렀고, 그런 개발 Run이 모여 하나의 개발 Event가 되었다. 개발 Event는 제품의 디자인 검증, 신뢰성 검증, 양산성 검증으로 나뉘고, 각 개발 Event는 한 번의 개발 Run으로 끝날 수도 있고, 여러 번의 개발 Run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나의 Event를 종료하기 위해 설비, 작업방법, 제품 설계를 변경하며, 간혹 고객과 협의하여 제품 규격을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일상의 마진 설계에 관하여-
고객이 원하는 Spec에 맞게 제품을 설계할 때는 항상 마진 설계를 해야 한다. 제품의 Spec이 정해지고 양산(개발이 끝난 후 제품 생산)이 시작되면 양산된 제품에서 어떤 불량이 발생할지 100%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다양한 신뢰성 시험 평가를 진행하여, 미리 예측하여 방지를 하지만 종종 예외 사항이 발생한다. 이런 예외 사항이 발생하면 불량을 개선하기 위해 제품에 추가 설계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데, 이때 설계 마진이 없으면 마지막 수단으로 고객과 약속한 Spec을 변경해야 할 수도 있다.
나의 일상도 제품 설계할 때처럼 마진 설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떤 불편한 일이 발생할지 100%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일상은 그대로지만 일상 주변의 환경은 조금씩 변해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짧은 시간 안에 해내던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지기도 하며, 물가 상승으로 기존에 벌던 수익으로는 현재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건들이 나의 일상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준다.
사실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일상의 마진 설계란 일상에 여유를 더하자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언제나 목적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비어두는 것이다. 그 목적 없는 시간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면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시간이 맞는 지인과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사용된다. 지인과 시간이 맞지 않으면,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사실 여유 시간 대부분은 독서, 산책 혹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인과의 만남은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물론 그 여유시간을 자기개발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개발이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순수하게 여유를 가지게 해주는 활동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몇몇 지인에게서 자기개발 시간이 어느 순간 일상 속 하나의 Spec이 되어 본인들을 괴롭게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현재 더 높은 부와 명예 혹은 어떤 것을 위해 일상 전체를 알차게 설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자기개발은 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시간이 지나 알차게 일상을 설계한 지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의 일상은 그전과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몸이 아파 다니던 직장을 쉬거나, 알차게 사는 동안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일상의 마진 설계를 하는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도 있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모든 제품은 사용자의 목적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다르게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그 제품은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우리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여유라는 마진을 가지고 목적(행복한 삶)에 맞게 일상을 설계한다면 우리의 삶은 불량(괴로움)이 발생하는 일상에서 조금 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제품이 불량이 아니면 양품인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