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닿은 점 찾기
유엔의 고령화 정책과 우리나라 복지서비스를 단순히 비교하는 일은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한쪽은 전 세계를 향해 방향을 제시하는 큰 원칙의 문서이고, 다른 한쪽은 “어디에 신청하면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실용적인 안내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는 일이 꽤 의미 있다고 느낀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복지제도들이, 국제사회가 오래 논의해 온 가치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비어 있는지 조금 더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2025 나에게 힘이 되는 복지서비스」를 펼쳐 보면,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생애주기 전반을 따라 비교적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임신·출산 단계에서는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영유아기와 아동기에는 보육과 교육을,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자립 준비를 돕는다. 중장년기에는 취업과 건강관리, 노년기에는 안정과 존엄을 우선하는 모습이 선명하다.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고, 생애 흐름에 맞춰 연속성을 갖춘 점은 분명한 강점이다.
반면 유엔이 내놓은 세 가지 틀, 2002년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MIPAA), ‘건강한 고령화의 10년’, WHO의 생애주기 접근 실천 프레임워크는 우리에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문서들은 “어떤 서비스를 주느냐”보다 “사회와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느냐”, “무엇을 어떻게 측정하고 점검해야 하느냐”에 더 방점을 찍는다.
우리 안내서가 ‘개별 서비스 목록과 신청 정보’에 초점을 두었다면, 유엔의 문서들은 ‘시스템·환경·지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이 차이를 따라가다 보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부분을 더 채워야 할지 윤곽이 드러난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이 듦을 대하는 시선과 생활환경에 대한 관점이다. ‘건강한 고령화의 10년’은 행동 영역의 첫머리에 나이와 고령화에 대한 인식 변화, 즉 에이지즘(연령차별)에 대응하는 것을 두고, 이어서 지역사회가 고령자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연령친화적 환경 조성을 강조한다. “노인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앞서 “우리가 노인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이 사회가 그들을 얼마나 환영하는 구조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다. 세대 간 교류, 나이 들어도 이용하기 편한 공공공간과 교통, 주거 환경 같은 요소들이 모두 이 논의 안에 들어온다.
반대로 「복지서비스 안내서」는 이용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 즉 시설, 급여, 감면, 신청 방법 등에 집중한다. 실용성 면에서는 강점이지만, 나이 듦에 대한 사회 인식을 어떻게 바꿀지, 동네와 도시를 어떻게 “모든 연령에게 편안한 곳”으로 만들지에 대한 질문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일수록, “얼마를 지원하느냐” 못지않게 “어떤 분위기와 구조 속에서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유엔 문서들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당사자 참여다. 정책의 설계·집행·평가 전 과정에서 고령자와 돌봄 제공자를 동등한 파트너로 보자는 제안이다. 반면 우리 안내서는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는 잘 알려 주지만, 고령자와 가족이 어떻게 정책 결정과 평가 과정에 참여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복지가 “누군가 대신 만들어 주는 제도”에서 “당사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구조”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이 참여의 틀을 더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보건의료와 장기요양을 바라보는 시각도 차이가 난다. ‘건강한 고령화의 10년’과 WHO 생애주기 프레임워크는 사람 중심의 통합 보건의료, 장기요양 체계의 질 관리, 전 생애에 걸친 건강의 흐름을 강조한다. 한 노인이 동네의원에서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필요할 때 복지서비스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입퇴원을 반복할 때도 돌봄이 끊기지 않도록 조정받는 구조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 효과를 기능 능력이나 입원·낙상과 같은 지표로 서비스 이용 전후의 변화를 꾸준히 살피고자 제안한다.
우리 안내서는 치매검진·치료비 지원, 틀니·개안수술, 응급안전안심서비스, 노인맞춤돌봄, 장기요양, 노인 일자리 등 개별 사업에 대한 정보는 매우 충실하다. 다만 이 서비스들이 실제로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어떤 경로로 이어지는지, 어디에서 끊어지고 어디에서 겹치는지, 어떻게 이어 갈 것인지, 전체 흐름을 보여주는 큰 그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또 WHO는 어린 시기·청년기·중년기의 경험이 노년의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며, 중년기의 만성질환 관리가 노년기의 기능 능력과 돌봄 필요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라 말한다. 우리 안내서도 생애주기별 서비스는 잘 나눠 보여 주지만, “언제 어디에 미리 투자하면 나중에 덜 아플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언제 어디에 미리 힘을 써야 나중에 덜 아플 수 있는지”를 함께 이해하려면, 이 연결 고리를 정책에서도, 설명에서도 더 또렷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데이터와 지표, 재정과 인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과 ‘건강한 고령화의 10년’은 지표와 데이터, 연구와 혁신, 주기적인 이행 점검을 중요한 축으로 다룬다. 정책을 만들었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숫자와 기록으로 확인하자는 태도다. 고령친화 도시·주거 지표, 기능 능력 지표, 장기요양 질 지표를 설정하고, 연령·성별·소득·지역에 따라 데이터를 모아 공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책을 조정하는 구조를 상정한다.
안내서는 역할상 ‘사업 목록·신청 방법·문의처’에 머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만큼 국가와 지자체가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재고 있는지, 지역 간 차이를 어떻게 줄이려 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피드백의 구조”는 읽히지 않는다. 또 유엔 문서들은 재정·인력·역량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 고령화 속도를 감당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 등의 수급과 재훈련을 어떻게 설계할지, 1차 의료와 지역사회 인력을 어떻게 강화할지를 구현 계획 수준에서 논의한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당장 “얼마까지, 몇 번까지 지원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제도가 오래 유지되고 조금씩 나아지려면, 언젠가는 재정과 인력에 대한 큰 그림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 역시 앞으로 보완이 필요한 지점이다. 팬데믹, 폭염, 재해와 같은 상황에서 고령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필수 의료·돌봄·식품과 사회적 연결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국제사회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의 안내서는 평상시 개별 서비스 정보는 잘 담고 있지만, 재난 상황에서 어떤 지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평소 제도가 그런 위기 속에서도 끊기지 않도록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코로나19를 경험한 뒤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부분은 앞으로 꼭 채워졌으면 하는 대목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보호자 지원과 말기·완화의료다. 유엔의 논의에서는 가족과 비공식 돌봄자의 부담을 줄이는 정책, 그리고 삶의 마지막 시기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가 빠지지 않는다. 돌봄자에게 휴식과 상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돌봄으로 인한 소득 손실을 줄여 주거나, 직장과 돌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 안내서에도 가족돌봄휴가, 일부 보호자 지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가 흩어져 있지만, 보호자를 어떤 존재로 보고 어떤 권리와 지원을 보장하려는지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어 있는 느낌은 아직 약하다. 누군가를 오래 돌보는 일을 개인의 책임과 희생만으로 떠넘기지 않으려면, 보호자를 어떤 존재로 보고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정책적 언어가 더 선명해질 필요가 있다.
「2025 나에게 힘이 되는 복지서비스」는 생애주기 전반을 따라 구체적인 서비스와 신청 정보를 이용자 눈높이에서 잘 모아 놓은 실용적인 지도이고, 유엔의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과 ‘건강한 고령화의 10년’, 생애주기 프레임워크는 인식과 환경, 통합 시스템, 지표와 데이터, 재정·인력·재난까지 아우르는 방향과 틀을 제시하는 나침반에 가깝다. 둘은 역할이 다르지만, 서로를 비춰 보면 우리가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과 앞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 함께 보인다.
고령사회 정책과 복지서비스의 목적은 제도를 하나 더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답게,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에 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 우리 곁에 놓인 복지 안내서와 유엔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문서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