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멈춘 트럭은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다

모둠 밥상보다 이미 막힌 문턱

by 먼소리뚜버기

어머니가 하시던 “누가 밥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현장에서 어르신들이 말하는 “밥하기 싫어”라는 푸념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말을 곱씹다 보면, 밥솥이 아니라 부엌의 다른 쪽이 먼저 떠오른다. 밥은 버튼만 누르면 되지만, 반찬은 몸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 반찬은 부엌이 아니라 ‘장보기’라는 문턱에서부터 이미 막혀 있다.


반찬 이야기를 하다 보면, 더 앞단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반찬을 만들려면 먼저 재료가 있어야 하니까. 농촌을 두고 ‘식품사막’이라는 말을 꺼내는 이유도 결국 거기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건 사막 같은 황량함이라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이다. 가게가 전혀 없는 게 아니다. 읍면 소재지에 가면 마트도 있고 시장도 있다. 문제는 그곳까지 가는 길이 어르신들에게는 너무 멀고 험하다는 데 있다. 나는 이것을 ‘식품 접근성’의 문제로 다시 읽는다.

보건복지부의 ‘노인 실태조사 결과(2023)’에서 노인의 18.6%가 일상생활 수행에 제한을 겪고 있으며, 특히 장보기와 식사 준비 같은 활동에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 굽은 어르신이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버스 타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라”는 것은 사실상 “장보기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못 가.” 식품 접근성이란 단순히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 심리적으로 엄두가 나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많은 어르신에게 읍내 마트는 지도상에는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갈 수 없는 ‘이국만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 접근성의 벽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밥을 잘 챙겨드세요’라고 말하기 전에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구체적인 시도들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마을로 찾아가는 장터’다.

어르신이 시장으로 갈 수 없다면, 시장이 어르신에게 다가가면 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과거 우리에게는 훌륭한 모델이 있었다. 마트가 없던 시절에도 마을마다 ‘구판장’이 있어 과자·라면·통조림 같은 가공식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구판장이 하나둘 문을 닫은 뒤에는, 콩나물과 두부, 채소를 싣고 골목을 누비던 ‘트럭 행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고등어가 왔어요.” 특유의 억양이 섞인 스피커 소리와 함께 마을 어귀에 등장하던 그 트럭은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었다. 거동이 힘든 노인들에게는 냉장고를 채워주는 유일한 생명선이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 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취를 감춘 지금에야 깨닫는다. 그 소박했던 구판장과 낡은 트럭이, 사실은 농촌의 식생활을 지탱하던 소중한 자원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시대가 훨씬 발달했다. 마음만 먹으면 예전의 트럭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만족도를 높일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 기술도, 물류 시스템도 더 좋아졌다. 단, 여기에 조건이 하나 붙는면, ‘경제의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름값도 안 나오는데 산골까지 트럭을 어떻게 보내나?” 이런 계산기를 두드리는 순간 해법은 사라진다. 수익성의 잣대가 앞서면서 구판장 같은 생활 인프라가 버티기 어려워 힘없어 사라졌고, 만물 트럭이 멈춰 섰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나은 기술 이전에, 더 단단한 철학이다. ‘함께 사는 세상에 사람이 중심’이라는 생각이 깊게 뿌리내려야 이 트럭은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다.


둘째는 ‘누군가가 대신해 주는 연결’이다.

물론 제도적으로 제도적으로는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처럼 이동 동행, 식사 준비, 가사 지원 등을 돕는 체계도 있다. 사회복지 단체나 지자체가 나서서 장보기를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장을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인구밀도는 낮고 면적은 드넓은 농촌 지역을, 소규모 센터 인력 몇 명이 커버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다. 서류상으로는 그럴싸해 보일지 몰라도,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공적인 시스템이 닿지 않는 그 넓은 틈, 나는 그것을 ‘마을의 문화’로 채워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같은 동네 사는 사람끼리 조금씩 거들어 주는 문화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마을 이장님이나 부녀회장님, 혹은 장을 보러 나가는 이웃이 ‘내 것 사는 김에 숟가락 하나 더 얹듯’ 필요한 것을 챙기는 것이다. 이것이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일상에서 작동하는 ‘마을 돌봄’이다.

“어르신, 오늘 장날인데 뭐 필요한 거 없어요?”

무심한 듯 던지는 이 말 한마디가 어르신의 텅 빈 냉장고를 채우고, 텅 빈 마음의 고립감까지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접근성은 제도나 예산이 아니라, 이웃의 안부 한 마디에서 완성된다.


셋째는 ‘함께 만드는 부엌’이다.

재료가 있어도 혼자서 지지고 볶는 과정이 버거운 분들을 위해, 마을회관에 모여 반찬만이라도 같이 만드는 것이다. 재료 손질은 힘이 있는 사람이 하고, 간은 솜씨 좋은 어르신이 맞춘다. 이 과정에서 “반찬 만들기 싫다”라는 귀찮아하는 마음이 “같이 만드니 재밌네”라는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보건과 복지가 놓아야 할 다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지도상의 거리를 줄일 수 없다면,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진정한 식품 접근성이란, 마트가 몇 개 있느냐를 세는 것이 아니다. 어르신의 부엌까지 신선한 식재료가 도착하는 과정에 막힘이 없는지, 그 경로를 살피는 일이다. 트럭이 들어오고, 이웃이 대신 장을 봐주고, 함께 반찬을 만드는 풍경. 그 풍경 속에서 비로소 어르신의 밥상은 ‘한 끼 때우는 일’에서 ‘나를 돌보는 식사’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을엔 ‘생존의 트럭’보다 먼저 ‘기쁨의 리어카’가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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