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건은 좋아졌는데, 다리는 더 약해졌다.
신작로 번화가인 우리 동네에는 ‘주막’이 있었다. 사실 주막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노란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 심부름을 다녔다. 집에 손님이 온다거나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빠질 수 없는 게 어른들에게는 막걸리였나 보다. 주막의 입구 유리창엔 ‘실비집’이라고 파란색 페인트로 큰 글씨가 쓰여있었는데, 정작 나는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실제로 드는 비용만 받는 집’이라는 걸 성인이 되고서야 알았다. 요즘 말로 하면 가성비가 아주 좋은 술집이다. 1970년대에는 ‘가성비’라는 말조차 없었지만, 주머니 가벼운 농부들에게 술값만 받는다는 건 최고의 마케팅이자 위로였을 것이다.
어릴 땐 몰랐지만 주막이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동네에서 장터까지 10리(4km)이고, 우리 동네를 지나 마지막 도계 마을까지 10리가 조금 안 된다. 거리상으로 보면 ‘실비집’은 딱 중간쯤이다. 장을 보고 오는 사람이 한 박자 쉬어가는 곳, 농사일에 지친 몸을 잠시 녹여가는 곳, 막걸리 한잔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 곳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장터 근처로 다녔는데, 매일 신작로를 따라 걸어서 통학했다. 지금은 X세대로 불리는 내 또래들도 그 시절엔 10리 길을 묵묵히 걸어 다녔는데, 그보다 이전에는 뚜벅이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 시대는 튼튼한 두 다리가 곧 교통수단이었고, 접근성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장터까지 가는 길을 견디게 해준 것은 중간에 쉼을 할 수 있었던 숲골 주막이라는 ‘쉼표’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흙과 자갈이 뒤덮인 길은 매끈한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하루에 몇 번 안 다니던 버스는 제법 자주 마을 앞을 지나갔다. 물리적인 ‘교통 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도시로 사람들이 이주하고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버스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삶터를 떠나지 않고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어르신들에게 장터 가는 길은 예전보다 더 멀게만 느껴진다. 뚜벅이에서 대중교통이 발이 되어주었지만, 이제는 도로 위를 걸어야 할 ‘다리’가 약해졌기에 ‘고립’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우리는 종종 교통접근성을 이야기할 때 ‘도로가 났는지’, ‘버스가 들어오는지’라는 공급자의 기준을 말한다. 하지만 수요자, 특히 고령자의 관점에서 접근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무리 버스가 자주 와도, 집 대문에서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2~300미터가 힘들다면 그 버스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10리 길을 거뜬히 걷던 그 다리는, 이제 경로당에 마실 가는 것도 버겁다.
과거에는 주막이 그 긴 거리의 중간 다리가 되어주었듯, 지금의 교통 정책도 그런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정류장까지 걷기 힘든 분들을 위해 마을 안쪽까지 들어오는 소형 버스, 걷다가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그리고 높은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저상 버스. 이런 세심한 배려들이 현대판 ‘주막’의 역할일 것이다.
교통접근성은 단순히 차를 타는 문제가 아니다. ‘내 집 문을 나서서 목적지까지,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신작로의 숲골 주막은 사라졌지만, 그곳이 주었던 ‘잠시 쉬어가는 여유’와 ‘먼 길을 잇는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르신들이 집 안에 고립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도로의 접근성이 아니라, 약해진 무릎을 대신해 줄 촘촘한 ‘발’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촘촘한 발’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예전 주막엔 의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지금 우리에게도 먼저 필요한 건 거창한 교통망보다, 한 번 숨을 고를 ‘쉼표’일지도 모른다. 이미 몇몇 지역에서는 그 가능성의 씨앗들이 싹트고 있다. 물론 내 고향에서도 이미 시작했다.
첫째는 농산촌의 효자로 자리 잡은 ‘100원 택시(행복 택시)’다.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가 멀어 버스를 이용하기 힘든 마을 주민들을 위해, 택시를 부르면 100원(혹은 버스 요금)만 내고 읍내나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는 서비스다. 이 택시는 ‘대문 앞’까지 온다. 한참을 걸어 나와야 탈 수 있던 버스와 달리, 내 집 앞에서 바로 탈 수 있어 어르신들에게는 ‘자가용’이자 ‘발’이다. 예전 숲골 주막이 긴 여정의 쉼표였다면, 100원 택시는 그 여정의 시작점을 집 앞으로 당겨주었다.
둘째는 부르면 달려오는 ‘수요응답형 버스(DRT)’다. 큰 버스가 정해진 시간에 텅 빈 채로 다니는 대신, 작은 버스가 승객의 호출에 따라 경로를 바꿔가며 운행한다. “버스가 하루에 세 번밖에 안 와서 병원을 못 간다”는 하소연을, “전화하면 오는 버스 타고 다녀오면 된다”는 안도감으로 바꾼다. 물론 스마트폰 앱 사용이 서툰 어르신들을 위해 전화 한 통으로 배차되는 ‘아날로그적 배려’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어른들에게 ‘콜버스’로 인식된 DRT는 내 고향 무주가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셋째는 기력이 없는 노인 부부나 홀로 사는 분들을 위한 ‘병원 안심 동행 서비스’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이동’은 단순히 차를 타는 행위가 아니다. 신발을 신고, 문을 잠그고, 차에 오르고, 병원에서 접수하고, 진료를 받고 다시 약을 타오는 모든 과정이 장벽이다. 차만 태워주는 게 아니라, 집 안에서부터 병원 진료실까지 부축하는 동행 매니저는 교통 약자에게 가장 필요한 ‘인간적인 접근성’이다. 이는 과거 자식들이 하던 역할을 공공 서비스가 대신하는 ‘효도 교통’이라 부를 만하다.
마지막으로, 마을에 소박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중간 의자(Bench)’다. 아무리 좋은 택시와 버스가 있어도 신체활동을 위한 걸음도 필요하고, 동네 마실도 다녀야 한다. 10리마다 주막이 있었듯, 이제는 100미터마다 혹은 가파른 언덕길 중간마다 ‘쉬어갈 의자’가 놓였으면 한다. 지팡이를 짚고 가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주저앉지 않고 잠시 궁둥이를 붙일 수 있는 그 의자가 현대판 작은 주막이다.
나는 교통접근성을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으로 정의하고 싶다. 버스가 닿지 않는 골목, 택시가 꺼리는 산동네. 그 모세혈관 같은 길목을 행복 택시가 누비고, 부르면 오는 버스가 채우고, 걷다가 힘들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일 때, 우리의 교통 정책은 두 다리가 튼튼하지 않아도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숲골 주막이 막걸리 한 잔으로 주민들의 다리품을 위로했듯이 이제는 이 촘촘한 제도들이 약해진 무릎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새로운 ‘주막’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막걸리 한 사발의 취기 대신, “나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용기를 건네주는 그런 주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