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바퀴 달린 식탁, 밀스 온 휠스

도시락, 그 이상

by 먼소리뚜버기

“뭐 먹을까?”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음식의 이미지가 스르륵 지나간다. 결국은 이미 아는 맛, 익숙한 메뉴 몇 가지로 좁혀진다. 예전 같으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식당으로 향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두드리면 따끈한 음식이 문 앞까지 온다. 요즘 배달 앱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요청 사항은 이것이다. “문 앞에 두고 벨 눌러주세요.” 편리함의 핵심은 ‘비대면’이다. 마주치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원하는 것만 쏙 가져가는 것, 그것이 요즘 시대가 정의하는 ‘효율적인 접근성’이다. 하지만 복지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이 효율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복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밀스 온 휠스(Meals on Wheels)’다. 직역하면 ‘바퀴 달린 식사’쯤 되겠다. 이름은 세련된 영어지만, 그 본질은 아주 투박하고 원초적이다. 거동이 불편해 장을 보러 갈 수도, 요리를 할 수도 없는 노인들의 집까지 자원봉사자가 직접 차를 몰고 가서 따뜻한 식사를 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유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다. 독일군의 공습(The Blitz)으로 집과 부엌을 잃고 요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에게, 부녀회원들이 유모차나 손수레에 음식을 싣고 나르던 것에서 시작됐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굴러가던 바퀴였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어도 이 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나라로 퍼져나갔다. 왜일까? 그들이 나르는 것이 단순한 ‘칼로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밀스 온 휠스의 진짜 가치는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이 아니라, 현관문이 열리는 그 짧은 순간에 있다. 자원봉사자는 단순히 도시락 배달원이 아니다. 하루 종일 적막한 집안에 갇혀 지내는 독거노인에게 “어르신,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세요?”라고 말을 거는 유일한 말동무다. 밤새 별일은 없었는지, 안색은 괜찮은지 살피는 ‘움직이는 안전망’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지침을 보면, 배달은 단순한 ‘식사 전달’뿐 아니라 안부를 묻고 안전을 살피는 역할까지를 의무로 포함한다. 그래서 그 문 두드림은 때때로 가장 먼저 이상 신호를 알아차리는 방문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도시락 배달 사업이나 밑반찬 지원 서비스가 있다. 훌륭한 제도다. 하지만 가끔 현장을 보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과정이 생략될 때가 있다. 인력은 부족하고 배달해야 할 곳은 많다 보니, 때로는 어르신과 눈을 맞출 새도 없이 문고리에 도시락 가방만 걸어두고 돌아오기도 한다. 보고서에는 ‘전달 완료’라는 글자가 자리하지만, 그 글자가 어르신의 외로움까지 해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식은 도시락과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 영양 성분의 칼로리는 같을지 몰라도 사람이 느끼는 ‘삶의 온도’는 천지 차이다.


‘밀스 온 휠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진정한 접근성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바퀴를 달고 필요한 곳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멈춰 선 트럭을 떠올렸다면, 이번엔 ‘매일 도는 작은 바퀴’가 어르신의 부엌을 다시 돌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밥은 먹었나?”라는 아버지의 투박한 안부를, 이제는 제도가 대신 물어줘야 할 때인 것 같다. 그것도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아니라, 직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말이다.


행정 서비스도 이제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나 바퀴를 달아야 하지 않을까. 행정 서류가 닿지 않는 곳, 인터넷 접속이 닿지 않는 곳, 심지어 가족의 발길조차 닿지 않는 곳. 그 고립된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매일매일 따뜻한 밥과 안부를 싣고 달리는 자그마한 바퀴들로 만들어질 것이다. 접근성은 결국, 마음이 닿는 곳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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