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백화점, 먹거리의 길이 열리던 날
내가 자란 무풍은 경상도 방언과 전라도 방언이 섞인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경북과 전북이 맞닿은 곳이라 그렇다. 오일장은 변함없이 열렸고, 무풍 사람뿐 아니라 김천의 대덕면 사람들도 함께 이용하는 주변에서 꽤 큰 장터였다. 특히 소를 매매하는 우시장이 있었을 때는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소는 농경지에서 큰 힘을 보태는 노동력이지만, 동시에 집안의 목돈이기도 했다. 자식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결혼하게 되면 가축을 팔아 목돈을 마련하곤 했으니까, 장날은 생계와 미래가 함께 오가는 날이었다.
나는 가끔 부모님을 따라 오일장에 갔다. 기둥을 중심으로 칸칸이 나눠진 장옥 안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흥정이 오갔다. 한쪽의 난전에서는 채소와 생선, 달걀 같은 식품과 호떡·풀빵·뻥튀기 같은 간식이 김을 내며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오일장은 언제나 다양한 제품과 먹거리를 만나는 신기한 곳이었다. 어린 내 눈엔 그곳이 백화점 같았다.
어릴 때 어른들이 “장구경 간다”고 말하시면, 나는 왜 굳이 구경을 가나 싶었다. 그런데 장에 몇 번 따라가고 나서는 그 말이 이상하지 않았다. 구경이라는 말은 단지 눈요기만 뜻하지 않았다.
장날은 우리 삶에서 먹거리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지는 날이었다. 평소에는 텃밭에서 나는 채소와 집에 저장해 둔 식재료가 밥상의 품격을 정해 놓았다면, 오일장에 가는 날만큼은 ‘있는 대로 먹는’ 밥상에서 ‘골라서 먹는’ 밥상으로 잠깐이나마 바뀌었다. 생선이 있을 때는 생선을, 달걀이 있을 때는 달걀을, 기름과 양념이 모자라면 그것을, 장날 눈앞에 펼쳐진 것 중 원하는 것을 고른다.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입이 호강한다는 것도 있지만, 밥상 걱정이 조금 덜어지고 다음 끼니가 덜 불안해진다는 뜻이다.
지금은 화면을 몇 번 누르면 새벽에 문 앞에 먹거리가 놓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편리함은 어디에나 똑같이 퍼져 있지 않다. 지역과 형편에 따라 어떤 집은 여전히 장을 보려면 시간을 내어 이동해야 하고, 무엇을 먹을지보다 무엇을 구할 수 있는지가 먼저 정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기억하는 무풍의 오일장은 단순한 옛 풍경이 아니라, 시골 지역에 식품과 생필품이 모이는 날로 장터를 찾은 사람들을 환하게 웃게 하는 촉매였다. 정해진 날이면 사람들이 모이고, 물건이 몰리고, 먹거리가 들어왔고, 그 덕분에 산골의 생활에도 ‘고를 수 있는 폭’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백화점에 갔다고 말하고 싶다. 번쩍이는 유리 진열장 대신 투박한 난전이 있었고, 매끈한 카드 대신 꼬깃꼬깃한 지폐가 오갔지만, 그곳은 분명 나의 백화점이었다.
‘있는 대로’ 먹던 밥상에서 ‘원하는 대로’ 고르는 밥상으로 바뀌던 날. 어른들이 말하던 ‘장구경’은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라, 우리 삶의 선택지가 넓어지는 순간을 확인하러 가는 설렘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만큼은 산골 마을의 식탁에도 활짝 문이 열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