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 좋은 먹거리가 함께한다면 가능할지도
가능하다고 답하고 싶다가도, 망설여진다. 길 위의 규칙이 달라졌고, 낯선 이를 맞이하는 마음도 예전만 같지 않다. 문은 더 단단해졌고, 물 한 잔 청하는 일조차 서로에게 조심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인심 좋은 먹거리’가 함께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놓을 수가 없다. 돈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내미는 한 끼, 이름 모를 사람을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아직 남아 있다면 말이다.
신작로에 접해 있는 우리 집은 방앗간 뒤에 텃밭이 있었다. 도롯가의 집이다 보니 물 한 잔 마시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때로는 텃밭에 심어 놓은 채소를 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나가다 물 마시러 오는 분 중에는 물맛이 좋다며 큰 통에 담아가는 사람도 드문드문 있었다.
어린 기억에도 낯선 사람의 방문이 어색하지 않았고, 물이나 채소를 나눠주는 데 인색하지도 않았다. 우리 집에서 나눠준 쌀이며 채소며 가져간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 편안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말씀하신다.
그때는 ‘무전여행’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 “많았다”라는 말 속에, 지금은 희미해진 풍경 하나가 들어 있다고 느낀다. 집 앞을 지나던 젊은이들이 손에 쥔 건 배낭 하나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배낭보다 더 무거운 건, 세상을 한 번쯤 믿어보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갈 곳을 정하지 않고 떠나는 용기,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물 좀 마셔도 될까요”라고 말할 수 있는 뻔뻔함,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그래, 들어와” 하고 대답할 수 있는 넉넉함. 그 시절의 무전여행은 어쩌면 여행이라기보다, 서로의 삶이 잠깐 맞닿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쌀을 주고 물을 내어주는 일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저 텃밭에서 뽑아 쥔 상추 한 줌, 쌀 한 바가지가 모자라지 않다는 마음으로 내어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머니의 말씀은 ‘덕을 쌓았다’는 자랑이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한 어떤 믿음처럼 들린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언젠가 내가 모르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살려줄 거라는 믿음. 세상이 그 정도로는 굴러가 준다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무전여행을 생각하면, 옛날 방식 그대로의 ‘무전’은 어렵겠지만, 그 정신만큼은 남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돈 없이 떠난다기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말을 섞고, 호의를 조심스럽게 주고받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 여행. 어쩌면 요즘의 무전여행은 ‘받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배낭에는 최소한의 돈과 신용카드가 들어있겠지만, 함께 꺼내 보여줄 것은 먼저 마음을 내미는 태도일 것이다.
나는 가끔, 우리 집 앞 신작로를 떠올린다. 길이 집이던 시절, 낯선 발걸음이 이상하지 않던 시절. 물맛이 좋다며 큰 통에 담아가던 사람의 뒷모습. 채소 좀 주겠냐고 머뭇거리던 목소리. 그 모든 장면이 내게 “가능하냐?”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믿을 수 있냐”는 질문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니 지금도 무전여행은 가능할지 모른다. 다만 그 여행의 통화는 돈이 아니라 태도일 것이다. 길 위에서 함부로 요구하지 않는 겸손, 도움을 받았을 때 과하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담백함, 그리고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이 건네겠다는 약속.
어머니가 말하던 그 ‘나눠준 쌀과 채소’는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다. 누군가가 물 한 잔을 청하듯 내게 다가올 때, 나는 어떤 얼굴로 그 사람을 맞을 것인가. 그 질문에 “들어와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다시,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무전여행을 시작하는 셈이다. 어쩌면 사람 사이에 놓인 가장 높은 문턱을, 마음으로 지워내는 여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