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알고리즘은 안부를 묻지 않는다

선택을 위임한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들

by 먼소리뚜버기

읍내 극장 키오스크 앞에서 어르신이 멈칫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복지의 문턱도 비슷하다. 체크 몇 칸과 화면의 ‘대상/비대상’ 사이에서 사람은 말없이 멈춘다. 그래서 이제는 알고리즘이 지나쳐버리는 안부를 사람이 다시 묻기 시작해야 한다.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이 말은 새삼스럽지 않으면서도 서늘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매 순간 점심 메뉴부터 인생의 진로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며 ‘나’라는 고유한 무늬를 그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AI(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면서 선택을 내가 아닌 AI에 의존하고 있다.”

그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내가 몸담은 행정과 복지의 현장을 돌아본다. 우리는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을 먼 미래의 이야기로 치부하지만, 복지 시스템은 이미 어떤 면에서 ‘거대한 분류 장치’처럼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력값이 들어가면 결과가 나온다. 소득 인정액, 부양의무자의 조건, 질병과 장애의 항목들…. 그리고 화면에는 ‘대상’과 ‘비대상’이 뜬다. 순식간이다. 효율적이다. 규칙에는 정확하다. 하지만 그 효율 뒤편에서 자주 빠지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의 사정이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의 서류를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였다. 몇 칸을 채우고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조용히 바뀌었다. ‘비대상.’ 나는 잠깐 멈췄다. 규정은 규정이고, 결과는 결과였다. 그런데 그날 내가 떠올린 건 ‘점수’가 아니라 어르신의 손이었다. 서류를 내밀던 손끝이 유난히 갈라져 있었고, “아유 괜찮아, 나야 뭐”라는 말이 유난히 가벼웠다. 그 말이 정말 ‘괜찮다’는 뜻이었을까.

컴퓨터 화면의 창을 닫는 건 쉬웠다. 닫고 나면 다음 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그 순간, 내가 질문 하나를 통째로 닫아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규정 밖에서 무너지는 건, 지금 어디일까?”

김 교수는 인간다움을 이루는 요소로 공감, 이성, 자유를 꼽았다. 공감은 가까운 이를 챙기는 마음이고, 이성은 그 마음을 보편적인 타인에게까지 확장하는 원리이며, 자유는 그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행하는 의지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시스템에는 ‘이성(규칙과 논리)’은 풍부한데, ‘공감’과 ‘자유’가 발을 디딜 자리가 자꾸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


독거 어르신 댁에 인공지능 스피커를 보급하는 사업이 늘고 있다. 말벗이 되어주고, 생활 정보를 알려주고, 안전도 살핀다. 실제로 많은 지자체가 ‘ICT 기반 돌봄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AI 스피커를 보급하고 있다. 훌륭한 보조 수단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핑계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줄여버리려는 태도다. 기계는 “약 드실 시간입니다”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왜 목소리가 가라앉았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떠올리진 못한다. 기계는 반응하지만, 사람처럼 망설이거나 오래 바라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보지 못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효율적인 분류가 ‘정답’을 내놓는 동안, 우리는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규정에 맞으니 지원합니다”, “점수가 모자라니 어렵습니다”라는 문장 뒤에 숨어서,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저분의 삶이 무너지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락 배달이 완료되었다는 기록 너머, 저 어르신은 밥을 누구와 먹고 싶어 할까?”

김 교수는 말한다. 문제 해결 지능을 넘어 일반적인 원리를 성찰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라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접근성’의 마지막 단계는 어쩌면 여기인지도 모른다. 어르신을 ‘복지 수혜 데이터’로만 처리하지 않고, 존엄을 가진 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 체크표에 ‘완료’가 찍히는 것과 “오늘은 어땠어요?”가 오가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반찬이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일을 넘어, 그 반찬이 입에 맞았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그걸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대신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나의 인생이 알고리즘의 것이 아니듯, 어르신의 노년 또한 시스템의 회로 속에 갇힌 ‘숫자’로 남아서는 안 된다. 편리한 기계와 빈틈없는 행정이 우리를 돕고 있지만,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은 사람의 눈빛과 체온이어야 한다.

“선택을 AI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우려 섞인 진단 앞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편리함 뒤에 숨어 ‘사람다움’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데이터가 처리하지 못하는 눅눅하고 서글픈 삶의 문턱을 넘는 일, 그건 오직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불편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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