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해야만 구조받는 ‘SOS 돌봄’의 아이러니
어느 지역(00시)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SOS 돌봄센터’가 시범운영 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언론은 “돌봄 공백을 메우겠다는 취지가 헛구호가 될 우려가 있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용자가 턱없이 적다는 것이 이유였다. 보도의 결론은 익숙했다. “홍보가 부족했다.” 위탁기관이 홍보와 관리를 소홀히 해서 실적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더 크게, 더 많이’ 알리지 않아서 실패한 걸까?
우리는 흔히 홍보를 ‘알림(announcement)’이라고 착각한다. 현수막을 걸고, 전단을 뿌리고,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 홍보를 다 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정한 홍보는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정확히 가 닿는 ‘도달(reach)’이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자. 평소에는 돌봄센터에 관심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야근이 생기거나 급한 용무가 생겨 아이를 맡길 곳이 없을 때, 부모는 그제야 발을 동동 구르며 정보를 찾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며칠 전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현수막의 기억이 아니다. 내 손안의 스마트폰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AI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스마트폰 검색이나 AI 비서에게 묻는 것에 익숙하다. “우리 동네에 지금 당장 아이 맡길 곳 있어?” 이 질문에 AI가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도록, 온라인상에 정확한 데이터가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이런 도구를 잘 활용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AI 시대의 진짜 홍보 전략이다. ‘홍보’를 읽고, 보고, 듣게 강요하는 낡은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 필요한 순간에 검색되지 않는 정보는, 아무리 많이 뿌려도 도달하지 못한 소음일 뿐이다.
물리적 접근성도 간과할 수 없다. 도시 전역을 통틀어 센터가 딱 한 곳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보가 도달했다고 한들, 차 타고 30분을 가야 한다면 부모는 이용을 포기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내 집과 멀면 ‘그림의 떡’이다. 이용 실적 저조의 원인은 홍보 부족이 아니라, 애초에 가기 힘든 곳에 만들어 놓은 ‘접근성의 실패’일지도 모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SOS’라는 이름에 숨어 있다. SOS는 긴급 구조 신호다. 배가 침몰하거나 산에서 조난했을 때 “지금 당장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이 SOS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이 센터는 “미리 신청하면 휴일과 야간에도 맡아준다”고 한다. ‘미리 신청’이라니. 이것은 ‘예약’이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양육자가 사고를 당해 발생하는 것이 ‘돌봄 공백’인데, “며칠 뒤에 급할 예정이니 예약하겠다”라는 상황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예약하는 SOS’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119에 전화를 걸었는데 “급한 건 알겠지만, 내일로 예약하고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사전 계획된 일정에 따른 돌봄만 가능하다면, 그것은 ‘SOS’라는 간판을 떼야 한다. 진짜 틈새를 메우려면, 예약 없이도 불쑥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이름값을 할 수 있다.
이번 논란이 보여주는 것은 ‘공급자 중심 사고’의 한계다. 공무원이나 기관은 “현수막 걸었으니 홍보했다”고 생각하고, “센터 문 열었으니 오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행정 편의를 위해 긴급 돌봄에 ‘예약제’를 건다. 하지만 수요자인 부모에게 중요한 건 ‘검색했을 때 바로 나오는 정보’, ‘내 집에서 가까운 거리’, 그리고 ‘예약 없이도 달려갈 수 있는 열린 문’이다.
홍보는 ‘알림’이 아니라 ‘도달’이어야 하고, SOS는 ‘예약’이 아니라 ‘즉시’여야 한다. 이 두 가지 인식의 전환 없이는, 아무리 좋은 돌봄센터를 지어놔도 그곳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적막만 흐르는 공간이 될 것이다. 정책이 헛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책상 위의 기획서가 아니라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