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불주사 맞던 아이, 어른 되다

생각도 관심도 흐른다. 세월처럼

by 먼소리뚜버기

1970년대에 산골에서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녔다. 아프면 보건소를 찾았고, 학교에는 누군가가 찾아와 예방접종을 해줬다. 주사를 놓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담임 선생님이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하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맞았다. 그러다 6학년이 되면 ‘불주사(BCG)’라는 것을 맞아야 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예방접종의 최절정이었다. 당시엔 일회용 주사기가 아니라 알코올램프로 주삿바늘을 달궈 소독한 뒤 여러 명에게 재사용했기 때문에 ‘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주삿바늘이 뜨거운 상태로 찌른 것은 아니지만, 뜨겁게 달군 바늘을 보는 공포감과 접종 후 생긴 흉터 때문에 무서워하는 주사였다. 예방접종과 기생충 검사 정도가 국민학교 시절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보건정책의 전부다.

불주사를 맞은 다음 해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돈을 내고 배우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부모 세대들의 충분치 못했던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자녀 세대로 집중되던 시절이 끝나지 않았을 때다. 그런데 모두가 다 수업료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장학금을 받는 친구들도 일단 수업료를 낸 뒤, 장학재단으로부터 환급을 받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수업료를 내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으로 불리던 저소득층 가구의 자녀들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는 학비를 깎아 주는 제도가 있다는 걸,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이 외에 기억하는 것은 ‘둘만 낳아,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정부가 1970~80년대에 추진한 산아제한 정책(가족계획),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매월 노인 승차권 12매 지원, 영세민으로 불렸던 가정에 양곡을 나눠줬다는 정도다. 당시엔 보건정책이니 복지정책이니 그런 것에 관심이 없을 시기였기도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국민이 체감할 만큼 두드러지지 않은 영향도 있었다고 본다.


1980년까지는 가족이나 시장이 제 역할을 못 할 때에만 국가가 제한적으로 개입해, 극빈층을 보호하는 수준의 복지에 머물렀다. 지금 시선에서 보면 책상 앞에서만 짠, 다소 소극적인 행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민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의 기조가 대통령이 새롭게 선출될 때마다 ‘도입‧확대‧강화’ 등으로 표현되며 과거 정부보다 나아지려는 노력이 있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려는 역할에 충실해지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국민을 위해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사회보장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최근 한 연구(원소윤, 2024)에 따르면, 지자체의 임신·출산·육아 관련 현금 지원이 실제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효과가 없다고 느끼는 담당자들이 많다고 한다. 2022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첫 만남 이용권’ 사업을 새로 만들면서, 지자체에 출산장려금을 없애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몇몇 지자체는 실제로 없앴지만, 주민 민원이 빗발치자 다시 살린 곳도 있었다. 한편, 지자체끼리 복지 경쟁을 벌이다 보니 현금 지원과 자체 사업은 계속 늘어났고, 경기 침체와 지방교부금 감소로 재정 부담을 호소하는 담당자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사회보장기본법」에서는 ‘사회보장’과 ‘평생사회안전망’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이를 쉽게 말하면, ‘사회보장’은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사망 같은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소득과 서비스를 보장하는 제도이고, ‘평생사회안전망’은 이런 보장을 사람의 일생 전체에 걸쳐 끊기지 않게 이어주는 맞춤형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남을 거들어서 도와주는 일인 ‘부조(扶助)’는 ‘함께’의 의미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배제해 효과적인 결실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경쟁하듯 내놓는 각종 현금 지원까지 모두 ‘공적부조’라고 봐야 하는지는 한 번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또, 새로운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미리 협의하는 제도 역시 그때그때 정부 분위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지자체 현장에서 많다고 한다(원소윤, 2024).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보장’과 ‘평생사회안전망’조차도 누가 더 많이 주는지,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 같은 돈의 언어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복지는 결국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삶과 존엄의 문제다. 지역사회도 단순히 서비스를 나눠 주는 역할을 넘어서, 서로를 돌보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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