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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쌈장 May 13. 2023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푹 잠들 수 있기를.

"넌 누구냐." "왜 왔어. 뭣하러 왔냐. 필요 없다. 가라. 보기도 싫다. 귀찮다."


코로나 시대여서 요양병원에 면회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운데 큰 유리벽이 있고 양쪽에 마이크를 들고 말하며 면회를 시작했다. 할머니의 얼굴, 손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인사를 드리는 게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가 이렇게 되어 생활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말로만 듣던 치매가 이렇게 슬픈 내 이야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다. 유치원 가을 운동회 날이었다. 두 사람의 협동심을 보여줄 수 있는 다리 묶고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할머니의 오른쪽 다리와 내 왼쪽다리를 끈으로 하나가 되어 목표지점을 돌아서오는 것이다.  승부욕이 있었던 나는 할머니와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할머니, 하낫둘 하나둘 할 테니까 하나 할 때 오른발 가고 둘할 때 왼발 가면 돼. 알았지?

할머니와 손을 꼭 잡고 뛰기 시작했다. 맞춰질 리가 없었다. 그때 당시 60세 이셨던 할머니는 지금의 활발히 활동하시는 60세를 연상하기엔 너무 달랐다. 할머니로선 최선을 다하신다고 하셨는데 매번 넘어지고 느려서 이길 수 없었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상실했다.




소풍날이면 매번 할머니가 김밥을 싸주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처럼 쌓여있는 김밥을 보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두 개 먹다 보면 어느새 김밥이 주는 게 아쉽기만 했고, 하루종일 김밥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소풍 당일에 밥과 속재료들을 만드셨으니 할머니는 정말 부지런하셨다. 매일 아침 배낭 메고 산으로 들로 나가 좋은 야채들 뜯어와서 저녁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 그때 해주시던 두릅을 찾고 삶은 콩을 찾는 거 보면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들이 많이 생각이 나나보다. 깻잎무침, 두릅, 돼지껍질조림, 청국장 음식을 먹을 때면 할머니가 해주신 손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때는 매번 똑같은 반찬이라고 그렇게 투정을 부렸었는데 나의 소울 음식이 되었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대학생 때의 어느 날, 내 주머니에 돈이 5000원 정도 있었다.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순대를 같이 먹으려고 한봉다리 포장해 갔다. 잘 체하시는 할머니였기에 꼭꼭 씹어서 삼키라고 말하곤 둘이 티브이를 보며 이쑤시개에 하나 두 개 꽂아먹었었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밥을 안 해도 돼서 좋으셨던 걸까. 손녀가 사 와서 좋으셨던 걸까. 할머니가 맛있다고 드시며 행복해하셨다. 아직도 순대 담은 까만 봉지를 보면 문득 그날이 떠오른다.




몇 년을 바삐 지낸 후, 결혼식에서 본 할머니가 나보다 작아지고 힘이 없어 보이셨다. 그래도 내 결혼식에 참석하셔서 얼굴 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할머니가 신부대기실에 와서 꼭 안아주시며 하시던 얘기가 생각이 난다. 잘살아. 잘살아야 된다. 행복하게 살아라. 알겠지. 하시는데 눈물을 꾹 참으며 웃음 짓고 할머니와 포옹했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나 보다. 꼭 안을 수 있었던 날이.


결혼과 출산을 하고 세월이 지나 요양병원에 가시게 된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를 보고 싶어서 면회를 했는데 참 허탈하게도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졸려서 약에 취해있었다.

이렇게.. 인생이 마무리된다고? 억울하고 괴롭지 않으실까.  손녀와의 추억도 나누지 못하고 손녀가 누구인지 자식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병원에서 밥 먹고 약에 취해 잠을 자고 이렇게 인생이 끝난다고..

몸이 아프셔서 괴로우시진 않지만 작은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으시고 여기가 어디인지, 내 자식이 내 손자들이 기억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큰 욕구인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것일까.

무의식으로 삼시 세끼를 드시고 관계형성은 맺지 못하는 이 환경에 즐거움은 있으실까. 감사하며 삶을 마무리할 수 있으실까. 이제는 할머니가 편하게 쉴 수 있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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