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여행 14일차 20240530(목) 피렌체
* 유럽여행 14일차 20240530(목) 피렌체 (SMN-두오모성당-세례당-오페라박물관-종탑)
다시 두오모 성당을 찾다
어제는 피렌체 강행군 투어로 일찌감치 잠자리에 곯아떨어졌었다. 아침까지도 어제의 피로가 풀리질 않아 늦잠을 좀 잤다. 아무리 피곤해도 마음은 벌써 두오모 쿠폴라 위에 가 있었고 소설을 영화화한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들이 두오모 쿠폴라에서 마주치는 엔딩 장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여행자야말로 시간이 금이라는 걸 새삼 느끼며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어제와 마찬가지로 피렌체를 향해 길을 나셨다.
어제처럼 피렌체 중앙역에서 이틀째 피렌체 투어를 시작했다. 피렌체 중앙역의 정확한 지명은 'Firenze Santa Maria Novella'로 버스나 이정표 등에는 줄여서 'SMN'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역을 나오자 바로 맞은편에 딱 봐도 예사롭지 않은 높은 첨탑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장품 '노벨라'가 이곳 성당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 3대 건축가로 꼽히는 알베르티(Leon Batista Alberti, 1404~1472)가 디자인한 파사드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당으로 두오모 성당이 준공되기 전까지 피렌체를 대표하는 성당이었다고 한다. 길을 건너 성당 쪽으로 가 볼까 하는 유혹이 순간 있었지만, 오늘은 두오모 성당 투어에 집중해야 하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지나쳐야만 했다.
SMN에서 곧바로 두오모 성당으로 향했다. 늦은 오전이라 거리에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가는 길에 토스트 가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속부터 든든히 하고 두오모 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세례당과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도 감탄했지만, 오늘 다시 봐도 성당 파사드의 디자인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오백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당 내부와 두오모 천장화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어제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앗! 그런데 성당 정문 앞에 오늘은 방문객을 받지 않는다는 표지판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유는 모르겠으나 성당 행사나 공사 등으로 닫혀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성당 안을 못 본다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종탑을 돌아 성당 우측으로 가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종탑으로 입장하는 줄이었다.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다른 사람들을 따라 눈치껏 줄을 서 봤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안내원이 앞에서부터 한 사람씩 뭔가 이야기를 하면서 오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종탑 입장은 티켓이 있어야 하고 어제 미술관처럼 시간대에 맞춰서 와야 입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매표소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줄만 서고 장시간 헛수고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일이 안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브루넬레스키 패스, 매진!
성당 우측에 근사한 기둥과 조각상으로 장식된 매표소에 사람들이 줄 서고 있었다. 우측의 조각상은 대성당의 난제였던 두오모(돔)를 해결한 천재 예술가 브루넬레스키였다. 기다리는 동안 표지판을 보니 내가 처한 상황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두오모 투어 패스는 성당 건축에 기여한 건축가와 조각가의 이름을 따서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 조토(Giotto), 기베르티(Ghiberti) 패스 3종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패키지 상품은 산 조반니 세례당,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산타 레파라타 지하교회(무덤) 투어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조토 패스는 종탑 투어가 더해지고 브루넬레스키 패스는 피렌체 투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두오모 쿠폴라 투어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쿠폴라까지 오를 수 있는 브루넬레스키 패스는 이미 매진이었다. 어제부터 두오모 쿠폴라까지 오르는 내 모습을 얼마나 많이 상상하고 기대했던가? 아~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미리 좀 알아보고 준비했더라면 충분히 예약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쿠폴라 대신 차선으로 종탑을 오를 수 있는 조토 패스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교회와 세례당 둘러보다
종탑 입장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서 지하교회를 먼저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지하교회는 성당 지하에 있어서 성당 안으로 입장해서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는 구조였다. 성당 안을 영영 못 볼 줄 알았는데 먼 거리에서나마 내부를 둘러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두오모 천장화를 못 본 건 못내 아쉽다) 지하교회는 5세기에 시작한 초기 교회로서 세월이 흘러 피렌체의 교세에 걸맞게 그 위에 두오모 성당을 크게 건축한 역사를 갖고 있었다. 천오백 년이 넘는 역사가 주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공간이었으며 오늘날까지 보존해 온 이탈리아인들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지하교회 투어를 둘러보고 다시 성당 밖으로 나와 대성당 파사드 앞에 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으로 입장했다. 이곳은 로렌초 기베르티가 만든 '천국의 문'이라 불리는 청동문으로 유명하다. 세례당 청동문에 얽힌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의 대결은 아는 사람은 아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1401년 피렌체시에서 세례당의 청동문을 교체하기 위해 공모전을 개최했다. 금속공예가로 이미 명성을 얻고 있던 브루넬레스키와 아직 어리고 미천한 출신의 기베르티가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을 주제로 만들어진 두 사람의 작품은 같은 주제, 다른 느낌으로 모두 훌륭했었다.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은 천사가 아브라함의 손을 붙잡고 말리는 급박함과 힘을 느낄 수 있는 반면 기베르티의 작품은 천사가 조금 떨어져서 말리고 있어 조금은 정적이고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최종적으로는 기베르티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이 일로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브루넬레스키가 크게 낙담하였으나 후에는 대성당 두오모 설계로 대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세한 스토리를 알고 싶으면 tvN 인기 프로그램 '알쓸신잡' 시즌3 피렌체 편을 보시길 추천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현재 세례상에 있는 문은 가품이였다. 진품은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청동문의 격자 하나하나에 주조된 성화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윗부분의 작품은 감상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세례당 내부는 마침 천장 공사 중이어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백색을 기본 바탕으로 다양한 색상의 대리석으로 장식한 바닥과 벽, 기둥의 화려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이 세례 예식의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관람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이었다. 대성당 뒤편에 있는 박물관은 애초에 피렌체 투어 계획에는 없었고 이미 많은 미술관을 보았기 때문에 스킵할까도 했지만, 조토 패스에 포함되어 있어 아까운 마음에 가게 됐다. 하지만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례당 청동문 진품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가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성스러운 백색의 조각상들이 이 박물관이 예사롭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성당에 관련된 많은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은 두오모성당 첫 돌을 놓은 1296년부터 성당의 공사를 감독하기 위해 세워진 위원회 '오페라 델 두오모(Opera del Duomo)'가 있던 건물이란다. 통로를 따라 몇몇 작품들을 지나고 나니 갑자기 밝고 환한 층고 높은 큰 방으로 연결되었다. 방에 들어간 순간, 이야~! 속으로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실내에 성당 파사드를 떼 온 것처럼 장식한 벽에 수많은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두오모 성당은 르네상스 시대가 절정으로 향하고 있던 시기에 건축되었다. 당대 천재 예술가들이 몰려들던 피렌체에서 얼마나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창작되었겠는가? 그 작품들을 이런 공간 속에 전시함으로 그 예술미를 극대화하는 피렌체 사람들의 연출 실력이 놀라웠다.
박물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전시물이 있는 방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곳엔 세례당 청동문 진품이 두꺼운 유리창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으로 써도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는데 말 그대로 화려함과 묵직함의 아우라가 풍겨나고 있었다. 성서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입체감 넘치는 금박 부조들을 보고 있자니 한 땀 한 땀 심혈을 기울이는 기베르티의 부드럽고도 섬세한 손길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관람하는 순서 중에는 옥상 테라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내 표시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테라스로 나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됐다. 피렌체의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작품인 두오모가 오래된 도심 주택들 위로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테라스는 두오모를 바로 앞에서 관람할 수 있는 뷰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 밖에도 박물관에는 내가 좋아하는 각종 조각상이 수도 없이 전시되어 있어 즐거움을 더 했다. 나에게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은 잘 갖추어진 피렌체의 예술 종합 선물 세트였다.
두오모 사탑을 오르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대성당 종탑을 오르게 되었다. 종탑은 세례당을 설계한 조토가 역시 설계했다고 한다. 묵직한 돌들을 쌓아 올린 종탑은 올라갈수록 조금씩 들여 짓기를 하여 안정적인 모습을 한 게 꼭 키 큰 미남자를 올려다보는 느낌을 주는 구조물이었다. 입구에 붙어 있는 총 414계단이라는 표지판이 맘 단단히 먹고 시작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창이 없는 답답한 계단을 따라 계속 오르기를 반복했다. 얼마를 올랐을까? 숨이 턱에 찰 때쯤 드디어 넓은 중간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층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큰 아치형 창들이 사방으로 뚫려 있었다. 벽의 두께가 어찌나 두껍던지 종탑의 견고함과 무게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중간층에서부터는 계단이 좁아져서 한사람 지나갈 정도의 폭밖에 되지 않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오면 기다렸다가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벽을 따라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돌계단들은 세월의 흔적으로 턱은 마모되어 둥글게 뭉개져 있었고 벽면들은 시커멓게 손때가 묻어 있었다. 올라가는 사람들은 숨이 차서 힘들어했지만, 내려오는 관광객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그렇게 오르고 기다리기를 반복해서 드디어 종탑의 꼭대기 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비실 같은 안전요원 사무실이 있는 꼭대기 층은 들보와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양쪽으로 난 문을 나서면 좁다란 통로와 난간을 따라 탑 꼭대기 지붕을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통로와 난간은 안전을 위해 아치형 철망으로 감싸져 있었고 철망 사이를 통해 피렌체시 전체를 사방으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서쪽으로는 세례당 건물이, 남쪽으로는 멀리 베키오 궁전과 그 사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서 동쪽으로 접어들자, 대성당 지붕과 함께 두오모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가깝고 크게 보이는 두오모의 모습에 처음엔 인지 부조화를 느낄 정도였다. 두오모를 오롯이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종탑은 최상의 위치였다. 두오모가 우아하고 '근엄한 여왕'이라면 종탑은 '멋진 기사' 같다고나 할까? 서로 마주 보며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어 오래 있지는 못하고 다시 지붕 안으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잠시 쉬는 동안 종탑과 두오모의 높이를 비교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종탑이 82미터, 두오모 쿠폴라가 92미터로 거의 비슷한 높이였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게 아까워서 마지막으로 한 바퀴를 더 돌아보고 좁은 계단을 다시 되밟아 내려왔다. 내려가다 보니 올라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낙서 금지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안내문은 'Since centuries we preserve masterpieces(우리는 수 세기 동안 대작들을 보존해 왔습니다.)'로 시작했다. 그 밑에 작은 글씨로 '벽의 낙서는 지워질 겁니다. 하지만 만약 메시지(낙서)를 보내주신다면 예술 작품으로 우리가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위트 있는 안내문에서 이탈리아인 특유의 위트와 여유가 엿보였다. 종탑을 빠져나와 다시 종탑을 올려다보니 더 이상 이전의 종탑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애인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종탑을 오르내리고 나니 더 이상 투어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계획한 쿠폴라는 오르지 못했지만, 오히려 더 풍성한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두오모 성당에 손 인사를 날리고 기차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스트 프란체스코와 저녁 만찬을 하다
조금 일찍 투어를 마치고 농가로 돌아와 한숨 눈을 붙였다. 저녁으로 토마토, 양파를 곁들인 돼지고기 바베큐로 호스트 프란체스코를 대접했다. 내가 요리하는 동안 프란체스코는 뒤에서 테이블 세팅을 멋지게 해 주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빵과 와인은 빠지지 않는 것 같았다. 조촐한 식탁에 와인 잔들이 올라오니 금세 근사한 식탁으로 둔갑했다. 프란체스코에게 한국식으로 쌈장을 찍어 돼지고기를 양상추에 싸주었다. 입맛에 맞았는지 놀라는 눈빛으로 쌈장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물어 왔다. 코리안 바베큐 소스라고 간단히 답해줬다.
와인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묘약인 것 같다. 스윗한 향과 함께 약간의 알코올 기운에 긴장이 풀어졌다. 프란체스코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사람답게 와인 한잔이 들어가니 말이 많아졌다. 40대로 보이는 프란체스코는 근처 고등학교 교사로 나름 엘리트였고 방학 동안에는 해안 구조원으로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운동 매니아였다. 깡마른 체구지만 팔을 만져보니 근육이 단단했다.
개인 사생활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정치, 경제 등 여러 주제로 이어졌다. 물론 프란체스코가 주로 떠들고 나는 듣는 입장이였다. EU를 엑시트(Exit)한 영국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하더니, 플라톤을 비판하며 무신론자임을 강변하기도 하고 로마 바티칸, 러시안 유대인 등이 연이어 도마 위에 올라왔다. 하지만 배운 사람답게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비판을 이어갔다. 대화의 주제에서 내가 유럽에 와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말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이야기 중에 한국에서는 자신을 위해 여행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더니 자기는 일주일에 2번, 사이클링, 피트니스 그리고 수영하는 5시간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킨다며 그 시간만큼은 'For me With me'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나를 위해 오롯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지라고 학생에게 가르치듯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의 진정성이 느껴졌고 참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가치관을 가진 자유롭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에치 농가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