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비엔나가 유혹하는 데로 걷다

* 유럽여행 2일차 20240518(토) 비엔나

by 오십아재 싸묵싸묵

* 유럽여행 2일차 20240518(토) 비엔나

* 부제: 비엔나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으리라!

미술사 박물관 천장화


비엔나의 평화로운 주말 아침을 걷다

아나스타시우스 그룊 기념비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투어리스트가 아침에 뭐 할 일이 있겠는가? 그냥 씻고 무작정 City를 향해 나갔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하고 차분했다. 오페라하우스 방향으로 어제와는 겹치지 않는 길로 아주 여유롭게 거닐면서 나아갔다. 거닐던 중 갑자기 차분한 분위기의 공원에 접어들었는데 예사롭지 않은 동상과 마주쳤다.


'아나스타시우스 그룊'이라는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정치인의 동상이라고 AI 앱이 알려준다. 그의 작품이 오스트리아의 문학사와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크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예술적이고 아름답게 한 사람을 기리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정성이 마음에 와닿았다.


오페라하우스 옆 케른트너 거리로


아침 8시 30분경 오페라하우스 옆으로 난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케른트너 거리가 사람도 없어 평화롭기까지 했다. 나도 평화롭게 그 거리를 산책하듯 양쪽으로 늘어선 예술적인 건물들을 따라 걸었다. 좀 걷다 보니 낯익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맥도날드다! 아주 잘 됐다. 시장하던 차에 아침을 비엔나 맥도날드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침 9시 전인데도 영업 중이었다. 오늘 왠지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순조롭다.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기왕에 편한 의자에 앉은 김에 어제의 일들을 스마트폰에 기록하다 보니 어느덧 1시간이 넘게 흘렀다. '지금 이거 쓰는 게 중요한가? 하나라도 더 보는 게 중요한가?' 기록은 대충 정리하고 거리로 나섰다.


도너의 샘 조각상
주변 건물들을 배경으로 한 도너의 샘 조각상


조금 가니 어젯밤에도 반가웠던 '도너의 샘'이 눈에 띄었다. 어제는 밤이라 제대로 감상을 못 했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운 분수가 아닐 수 없다. 중앙의 여인상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청동상들이 놓여있는데 하나하나가 놀라운 솜씨들이다. 돌로 된 분수대 난간에 누워 있거나 걸터앉아있는 청동상들이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친다. 이렇게 기발하고 과감하고도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이런 작품이 도심 한가운데 아름다운 색채의 건물들을 배경으로 안성맞춤의 크기로 자리하고 있어 자연스러운 어울림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림 속을 걷듯 비엔나 거리를 걷다

슈테판 성당
예식중인 성당내부
오르간 파이프


시간은 어느덧 10시 20분을 넘어서고 관광객들도 조금씩 밀려들었다. 계속 케른트너 거리를 따라가다 슈테판 성당과 마주쳤다. 압도적인 규모에 말문이 막힌다. 첨탑은 하늘에 닿아 천국으로 안내해 줄 것만 같다. 입장료가 있는 줄 알고 매표소를 찾는데 사람들이 그냥 몰려들어 가는 듯했다. 빨려 들 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게 됐다. 성당 안은 더 압도적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마침, 예식이 진행 중이었고 큰 파이프 오르간에서 웅장한 음악까지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굿 럭!


아름다운 거리와 건축물들
파스텔톤 건물과 빨간 트램


그라벤 호텔 길을 따라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거리거리 사잇길이 다 카메라 렌즈를 잡아당긴다. 고개를 돌리면 길 끝에 갑자기 노란색 하얀색 성당이 기다리고 있고, 멀리 비취색 돔을 이고 있는 하얀 건물이 눈을 잡아당겨 정신은 차릴 수 없어 살짝 혼미스럽기까지 했다. 거리 양측에 아름다운 건물들이 조금씩 다른 파스텔톤과 모양으로 줄 서 있는데, 중간 중간에 아름드리 푸른 나무들이라도 있으면 그냥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게다가 길이 가늘고 길게 휘어져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예술적인 미를 느끼게 했다. 건물 사이로 달리는 빨간 트램은 비현실적이기 까지 했다. 그렇지! 이런 바탕의 거리라면 빨간색이 잘 어울리지!


직선을 극도로 싫어해서 아파트를 곡선으로 디자인한 '훈데르트바서'라는 오스트리아 건축가가 있다던데 비엔나 자체가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많은 조형물이 유선형으로 되어 있음을 쉽게 알게 된다. 지금 내 눈에는 건물 사이로 난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트램의 철길이 그렇다.


왕궁앞 광장


왼쪽으로 가야 국립도서관이라고 구글 지도는 말하고 있는데 내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우측의 하얗고 웅장한 건물 광장 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고 누가 그랬던가. 비엔나에서도 길을 잃어도 좋으리라.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듯한 웅장한 건물은 시시박물관과 합스부르크 왕실 보물관이였다. 개인적으로 왕이나 귀족들이 사용했다는 왕관, 의복, 액세서리, 식기 같은 것은 화려하지만 많은 감응을 주지 못하기에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바로 Skip 했다.


4개의 로마신화를 주제로 한 멋진 조각상(우리나라로 치면 해태상) 사이 통로로 들어가면 호프부르크 왕궁이 있는 헨델 광장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곧 나타날 빈 미술사 박물관에 이미 가 있어서 맘이 급했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빈 미술사 박물관'은 비엔나에 방문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다. 내 다리 힘에 한계가 있기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드디어 빈 미술사 박물관을 가다

미술사 박물관 천장화
영웅 테세우스와 미라노타우로스
화려함의극치를 보여주는 박물관 돔


왕궁을 지나니 널찍하고 잘 정돈된 정원들과 분수 그리고 웅장한 동상들로 이루어진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이 나를 맞이 한다. 왕궁이 남성적이었다면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은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여성적이며 예술적이다. 그에 걸맞게 거리의 악사가 색소폰을 불며 구걸하고 있는데 그 음악과 주변 경관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하~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건가?


오랜 번영기를 누린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예술품을 전시하고 관리하게 위해서 세운 미술사 박물관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자부심 중 하나라고 하겠다. 화려한 대리석 기둥과 그 사이의 아치형 구조물, 조각상 그리고 화려함의 극치인 돔으로 유명한 박물관은 그 자체가 수없이 많은 작은 예술 작품을 품고 있는 큰 예술 작품이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초입의 메인 계단과 천장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언제 내가 저 계단을 올라가 볼 수 있을까?" 했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그 꿈을 이루게 되어 가슴이 살짝 부푼다.


현관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앞에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마음에 준비가 되자 차분히 걸음을 떼어 계단으로 향했다. 드디어 천장화가 눈에 들어온다. 금색 테두리로 둘러싸인 전장화에는 하늘이 보이는 돔을 그려 넣어 마치 천장이 뚫린 듯이 보여 공간미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계단 끝에는 그리스신화의 영웅인 테세우스가 반인반수인 미라노타우로스를 말 그대로 때려잡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조각상이 정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양하고 묵직한 대리석 색상, 각종 조각품의 배치와 크기가, 화려한 금빛의 적절한 사용 등이 완벽한 조화미를 뽐내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수많은 예술품이 조화롭고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회회 작품도 아름다웠지만 크고 작은 조각상들이 나의 눈을 더 끌어당겼다. 하얀 대리석 조각상뿐 아니라 청동빛, 금빛, 은빛의 다양한 색감의 형태와 소재,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 기독교, 각종 동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담은 조각상들을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 가면 원래 자기와 다른 문화 또는 없는 문화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외국인들이 63빌딩을 볼 때 시큰둥하지만 숭례문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고 연신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회화 위주의 미술이다. 물론 조각상도 있지만 사찰 부처님의 조각상 정도이지 생활 주변에서 조각상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에 반해 그리스 로마 문화의 후예답게 비엔나는 거리 거리에서 아름답고 역동적인 조각상들을 쉽게 마주하게 되어 사람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줬다.


사람은 예술적인 도시를, 도시는 예술가를 만든다

성당과 하이든 동상


박물관의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서 점심 먹을 곳으로 향했다. 오스트리아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슈니첼을 먹어 보기 위해 '슈니첼 비르트'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조금 거리는 있었지만, 구글맵의 별점도 괜찮고 서민적인 분위기 식당이라는 평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자리가 만석이였는데 주인아저씨가 큰 소리로 맞아 주면서 다른 관광객과 합석하게 해주었다. 서민적인 식당답게 조금은 시끌벅적한 Pub 같은 분위기였다. 오스트리아 사람들도 먹고 마시며 즐겁게 친구들과 떠드는 건 한국이랑 다를 게 없구나 싶었다. 나도 분위기 따라서 슈니첼과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슈니첼은 한국으로 치면 얇은 돈가스 비슷한 맛이었다. 맛이 돈가스만 못해서 아쉬웠지만 현지 식당의 즐거운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비엔나 물가가 워낙 비싸서 한 끼에 3~4만 원은 기본이다 보니 이 정도 맛과 가격이면 감지덕지였다)


식당을 나와서 숙소 호스텔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롭고 아름다운 거리들이 맞아 주어서 힘든 줄을 몰랐다. 갑자기 저 멀리서 작지만, 하얀 두 개의 비취색 돔 지붕이 멋지게 솟아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예사롭지 않은 건물은 '마리아힐프 가톨릭 성당'이었는데 앞에 도착해서는 한 번 더 놀랐다. 바로 앞 동상에 '요세프 하이든'이라고 쓰여있지 않는가? 비엔나 하면 모차르트 정도만 생각했는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음악가와 미술가들을 배출한 도시가 바로 비엔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예술적인 도시를 만들었고 그 도시가 또한 훌륭한 예술가들을 키워냈다.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브람스, 요한슈트라우스 1, 2세, 클림트, 에곤 실레 등등)


다국적 친구들, 소화하기 쉽지 않네!

8인 혼성 도미토리


어제는 호스텔 6인 남성 전용실에서 묵었다. 중국인 대학생, 조지아 출신 건장한 청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사무에르라는 친구와 합숙했다. 유럽에서 중앙아시아 친구들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생각해 보니 지정학적으로 비엔나가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유럽은 물론이고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도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모든 게 달리 보이는 법이라고 했던가?


오늘은 8인 혼성 실로 이동해서 체크인했다. 꼭대기 층과 비스듬한 지붕 밑 공간을 복층으로 연결해서 8인실로 깔끔하게 인테리어해서 채광도 좋았다. 멀리 호주에서 온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친구가 가장 좋은 안쪽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길래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 친구 인사를 건성으로 받는 거 아닌가. 개인주의가 좀 있는 놈인가 보다 하고 나는 창가 옆에 그다음으로 좋은 자리에 짐을 부렸다.


일단 씻고 쉬려는 차에 덩치 크고 성격 활달한 체코 출신 여자애가 들어왔다. 호주 친구가 일어나서 체코 애랑 서로 여행한 곳 정보를 주고받았다. 체코 여자애가 내가 지켜보고 있어서 눈치가 보였는지 먼저 자기를 '제시'라고 소개(본명이 아닌 예칭인 듯)하길래 나도 내 소개를 했다.

"아임 Brian, 컴 프롬 사우스코레아."

그러자 제시가 "오! BTS!"라고 하면서 K팝을 좋아한다며 다음에 한국에 꼭 갈 거라고 '급' 친한 척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제야 호주 놈이 나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고 인사를 청하는 것이었다.

'이 짜식이 여자 앞이라고 이제야 젠틀한 척하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이름이 기억하기 어려워서 영어 이름으로 소개한다고 했더니 오리지널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규완 킴" 이라고 알려줬더니 무성히 하게 한두 번 따라 해 보려고 하더니 그냥 'Brian'이 낳겠다고 한다.

'이런 무례한 놈을 봤나! 남의 이름을 가지고. 나이도 한 참 어린놈의 짜식이' 속으론 좀 불쾌했지만 여행와서 싸울 것도 아니고 이런 '개념 없는' 백인 남자애들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넘어갔다.

그때 흥분한 제시가 한 손을 주먹 쥐고 위로 뻗으면서 "Brian과 함께 서울로!"라고 외치는 거 아닌가?

'이런 황당한 경우를 봤나!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난 뭐라고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못 했고 쌩까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좀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ㅋ~

잠이나 자야겠다.



P.S.

처음에 비엔나를 둘러보고 조금 의아스럽고 실망스러웠던 점이 하나 있었다. 비엔나의 독자작인 문화 예술이 아닌 로마 문명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지나지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소견으로 그래도 600년의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를 거치며 나름 오스트리아만의 독특한 문화를 기대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가 중국 문화권에 있지만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왔던 것에 비추어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나의 짧은 식견이 낳은 오해였던 것 같다. 로마제국의 쇠퇴 후 중세 이후 유럽 문화의 바톤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는 태생적으로 로마제국의 정치권력과 종교, 문화를 그대로 계승 발전시켰다고 봐야겠다. 2천 년이 넘게 유럽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력이 그만큼 절대적이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비엔나가 로마의 화려한 업그레이드 버전 같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EU 공동체 형성도 이해가 깊어졌다. 유럽의 여러 국가가 국경은 달리하고 있고 생활양식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근저에는 종교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오랜 세월 공유되는 '동질의 DNA' 같은 것이 있어 EU 결속이 가능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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