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중앙아시아길에서 러시아를 느껴보다

추억의 단편(나세진 작가 N블로그 "쌈토끼의 생각 저장소")

by 나세진

안녕하세요~ 나세진 작가입니다.


오늘은 추억이 될만한 특별한 일상을 올리는, 조금 색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굳이 서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십 년만에 만났지만, 낯설지 않은 시간을 러시아를 추억하며 보냈습니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란 공자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인간 관계의 넓이보다 깊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정말 반가웠습니다. 밀도 있는 만남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친구와 저는 '러시아'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너무 자세히 말씀드리면 친구에게도 실례가 될까 조심스러워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 끈의 추억을 되살려보고자 만남의 장소를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근처 '중앙아시아 거리'로 정했고, 우리는 중앙아시아 거리에서 러시아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을 먹어보기로 약속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와 함께 소비에트 연방(소련, 1922~1991)을 이루는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함께 사용하는 언어 문화권에 속했습니다.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어를 단순히 외국어로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언어였습니다.


가게 앞을 장식하는 화덕에서 직접 중앙아시아식 만두인 '쌈싸'의 향이 느껴집니다. 친구와 나는 샤슬릭, 쌈싸, 라그만, 쁠롭을 주문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샤슬릭은 양고기, 닭고기 등을 쇠꼬치에 꿰어 익힌 꼬치구이입니다. 라그만은 국수 요리고, 쌈싸는 만두, 쁠롭은 볶음밥입니다. 모두 중앙아시아식 요리입니다. 현 러시아 본토에서 태어난 요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요리들은 러시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모두 구소련 문화권 전체에서 공유된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음식도 하나의 생활권이기 때문에 소련 시절 러시아 사람들도 샤슬릭을 국민 간식으로 여기고, 쁠롭을 식당에서 흔히 먹는 '우리' 음식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라그만

외국 음식을 먹을 때 고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향입니다. 한국인의 미각을 자극하지 않는 적절한 향이 맛을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음식에서 지나치게 이국적인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순간적으로 거부 반응이 밀려올 수 있습니다. 또한 고기 요리라면 고기에서 나는 냄새를 잘 잡아야 합니다. 식욕을 돋우는 데 거슬리게 하는 냄새는 인상을 찡그리게 합니다.


그 다음으로 저는 형(形)과 색(色)을 함께 봅니다. 오늘 식사했던 장소는 향과 형, 색 모두 잘 갖춘 음식을 내어 놓았습니다. 예전에 이태원에서 러시아 음식을 먹었을 때는 향이 너무 강해서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맛은 사람마다 상대적이기에 어느 음식이 더 낫다고는 말하기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이태원에 있는 러시아 음식점은 러시아인들을 겨냥한 입맛이었다면, 여기는 한국인의 입맛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러시아 케이크 카페

식사를 마친 후, '러시아 케이크'란 유명한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규모가 작았지만,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저희는 운이 좋게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습니다. 케이크의 이름이 '나폴레옹'이라니.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은 러시아로 군대를 일으킨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 영국 함대에 패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내렸습니다. 대륙봉쇄령은 영국과의 무역을 금지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강력한 영국 해군에 무릎을 꿇고, 군사적인 점령 대신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한 것이지요. 영국과의 무역이 필요했던 러시아는 이를 형식적으로만 따랐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영국은 주요 수출국이었기 때문에 이를 끊으면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합니다. 즉,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1812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러시아를 침공했습니다. 만일 나폴레옹이 새로운 판로만 제공해 주었더라도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입니다.


그는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러시아에서는 이 전쟁을 조국전쟁이라 부르며 오늘날까지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럽 최강의 군대를 민중들의 인내로 버티며 몰아낸 사건이었거든요. 결국 전쟁의 천재도 러시아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부서진 나폴레옹 케이크, 그리고 친구가 선물한 헤르만 헤세 단편집, 그리고 러시아 홍차


맛이 너무 궁금해서였을까요. 카메라를 꺼내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포크부터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먹기 전의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나폴레옹 케이크는 얇은 페이스트리 층을 여러 겹 쌓고, 부서진 파이 가루를 위에 뿌린 형태입니다. 이는 겹겹히 무너진 나폴레옹의 군대를 상징하는 것일까요? 나폴레옹 전쟁의 남은 잔해를 뜻하는 것일까요? 답은 이 케이크를 처음 만든 제빵사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친구는 최근 읽었던 헤르만 헤세(1877~1962) 의 책 《싯다르타》《데미안》을 읽고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데미안》은 헤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제가 청소년기에 한 번, 그리고 교직에 몸담고 나서 한 번, 총 두 번 읽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은 흔들리며 성장하는 존재이며, 스스로 알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로서 아이들이 스스로 알을 깰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게 '교육'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제겐 미지의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친구가 재밌게 풀어주는 이 책의 줄거리를 경청하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전부터 내면과 외면 모두 멋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두 측면이 모두 성장한 친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진정한 '아빠'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는 친구의 성찰을 보았습니다.


헤어짐이 아쉬워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카페 바이칼Cafe Baikal'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들어갔습니다. 여담으로 바이칼 호수는 언젠가 꼭 가고 싶은 러시아의 호수입니다. 제가 바이칼 호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깊이'에 있습니다.


요즘은 점점 외형을 크게 불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고층 빌딩이 랜드마크가 되고, 사람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지요. 일상에서는 키가 큰 사람을 부러워 합니다. 바이칼 호수는 큰 편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깊이 있는 호수로서 가장 많은 담수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바이칼 호수를 보면 생각의 깊이를 지닌 노대한 문학가가 연상됩니다.


카페 바이칼 입구와 올라가는 길, 웹툰 캐슬의 클럽 발레리노 느낌이 난다.

반가운 키릴 문자를 읽으며, 카페 내부로 들어섰습니다. 이디야 커피와 같은 카페가 아니라, 중앙아시아·러시아 음식점이었습니다. 차는 식후에 가볍게 내어 놓는 곳이었습니다. 이미 배부른 상태여서 우리는 나오려 했습니다. 밖으로 다시 나가려는 저희를 사장님이 잠시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앉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료로 따뜻한 러시아 홍차를 내어 주었습니다.


사장님은 평소 독서를 열심히 하신 분으로, 러시아 관련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제 정세와 러시아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셨고, 교육, 문화에 대해서 강의를 듣는 느낌으로 친구와 저는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사장님은 러시아에서 구입한 물건을 보여주며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소비에트 상징이 담긴 모자와 레닌의 얼굴이 담긴 액자

유독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모자에 박힌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상징 배지와 레닌의 얼굴이 담긴 액자였습니다.


액자의 레닌은 사회주의 사상을 혁명을 통해 현실화한 사람입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실험 국가를 만들었죠. 하지만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이 실험은 끝났습니다. 인류의 해방이란 원대한 꿈을 안고 시작된 여정은 결국 이상과 다르게 흘러간 것입니다. 액자에 담긴 흰 글자는 일장춘몽처럼 활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사장님이 그려주신 그림

마지막으로 사장님이 제게 선물해주신 그림을 보여드리고, 글을 마치려 합니다. 볼펜으로 그린 그림과 문구입니다. 저는 문구가 지닌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초부득삼""붕몽의생"입니다. 초부득삼은 처음에는 실패하더라도, 세 번째에는 성공한다는 뜻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붕몽의생은 큰 꿈을 가지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생활하라는 뜻입니다. '蟻(개미 의)'는 제가 좋아하는 웹툰 '캐슬'의 주인공이 속한 집단에 쓰인 글자이기도 합니다. 개미가 거대한 성을 무너뜨리는 암시가 담겨 있죠.


무명의 작가, 초보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꾸준히 성실하게 정진하라는 뜻으로 보여주신 듯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작가로서 부끄러운 글을 쓰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한 길을 파다보면 언젠가는 목마른 사슴이 쉬어가는 우물 정도는 팔 수 있겠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기쁨과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