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적지수(墨翟之守), 그리고 세상의 소금과 빛

생각의 단편(나세진 작가 N블로그 "쌈토끼의 생각 저장소")

by 나세진

안녕하세요, 나세진 작가입니다~!


책을 읽다가 굉장히 매력적인 사상가를 찾았습니다.


묵적지수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보편적 사랑(兼愛)'을 설파했던 인물. '묵적(墨翟)'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묵적은 제자백가(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수 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묵가(묵자학파)의 초대 거자(鉅子, 생살권이라는 군권을 쥐고 있는 묵가의 지도자)입니다. 묵가는 무사 출신의 훈련된 군사적 집단이라고 합니다.


묵자 〈공수公輸〉편에 실린 유명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공수반이라는 뛰어난 장인(匠人, 공학자, 발명가)이 운제(雲梯, 공성攻城에 쓰이는 구름사다리)라는 기구를 개발하여, 초(楚)나라 왕이 그것을 이용하여 송(宋)나라를 공격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묵자가 열흘 낮밤으로 달려갑니다. 당연히 전쟁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묵자는 초나라가 송나라를 치려 해도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 말을 합니다. 묵자, 공수반, 초나라 왕이 논쟁 끝에 그 자리에서 모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묵자와 공수반은 허리띠를 끌러 성을 만들고, 나무 조각으로 기계를 만들어 공방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어떤 장면이 상상 되시나요? 레고 블럭으로 성을 쌓고 차례를 주고 받으며, '이럴 때는 어떻게 하겠니?' 등의 말이 오가는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장기나 체스를 조금 더 현실감 높여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공수반은 묵자의 성을 공략하지 못했고,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결국 초나라 왕도 송나라를 치겠다는 마음을 접었지요. 묵자가 정말 큰 일을 한 것입니다. 다수의 목숨이 걸려 있는 장기 한 판에 묵자가 졌다면, 어마어마한 참사가 일어났겠지요. 아마도 묵자는 사활을 걸고 이 한 판에 임했을 것입니다.


전쟁을 막고, 묵자가 돌아가는 길에 송나라에 머물게 됩니다. 그때 마을 여각(숙박업소)에서 비를 피하려 하였으나 문지기가 묵자를 들여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말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놓고 싸우는 사람은 알아준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저는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선생님 한 분이 떠오릅니다. 그 분은 학급 운영과 학생생활지도를 정말 잘하셨던 것 같습니다. 말없이 묵묵히 말이지요. 개구쟁이들이 많았는데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이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며 무사히 한 해를 마무리하셨죠.


그런데 약간 안타까운 건, 그 선생님이 말 수가 적으셔서 그런지 하시는 일이 티가 잘 안 납니다. 뭔가 열심히 하시는데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실도 구석 쪽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성 교육과 관련하여 여러 프로젝트도 하셨던 걸로 압니다.


선생님의 학급을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과 눈 맞추어 웃고, 때론 진지하게 상담하며, 방과후에는 몸소 교실을 차분히 청소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선생님이 하셨던 교육 활동으로 연구대회를 나간다면 입상도 거뜬히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 년 내내, 자잘한 고충 조차 없는 학급이 있을까요. 그런데 항상 평온하기만 한 표정으로 계셔서인지 주변에서는 그 선생님이 편해 보였나 봅니다.


학생 간의 갈등이 터지고, 그것을 잘 마무리하는 분도 훌륭한 분이고, 자신이 연구한 교육과정을 대외적으로 강의하고, 저술하는 것도 본받을 행동입니다. 드러남이 있기 때문에 타의 귀감이 되는 분들이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교육계에 빛과 같은 분들이죠. 그렇지만 아무 일 없어 보이는 듯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분도 훌륭한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은 어떤 걸 의미할까요. 빛은 존재 자체가 숨겨지지 않습니다. 어둠을 드러내고 방향을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필요할 때 진실과 길을 비추어 줍니다. 반짝이는 은하수처럼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뽐내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눕니다. 이 분들이 계셔서 교직을 밝게 빛내 줍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 못지 않게 중요한 소금 같은 분들도 있습니다. 소금은 빛처럼 눈부시진 않지만, 부패를 막고 보존하는 역할을 합니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묵묵히 지키며, 교육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합니다. 빛으로부터 받은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빛의 경우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아주지만, 소금의 경우에는 그렇지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사회에 소금과 같은 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묵자는 공자에 비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묵자의 가르침은 공자의 유학(儒學) 만큼이나 현학(顯學, 세상에 이름높은 유명한 학문)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그야말로 대혼돈의 시대! 열국들의 쟁탈전이 시시때때로 벌어졌던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묵자는 당시의 사회상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有三患 飢者不食 寒者不衣 勞者不息

(필자의 주관적인 해석: 세 가지의 재앙이 있다. 주린 자는 먹지 못하고, 추위에 떠는 자는 입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은 쉬지 못한다.)


배고픈데 먹을 게 없어서 기아 상태에 빠져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의 모습. 추워서 벌벌 떨며 웅크리는 아이의 모습. 전쟁과 관련된 각종 노역에 시달리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지금 지구상에 이런 때를 겪는 나라가 많을까요? 그럼에도 부국강병을 논하지 않고, 사랑을 통한 관계의 회복을 강조했던 묵자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습니다. 이 점에서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습니다만, 저는 이상적인 말에 몸소 책임지려고 노력한 묵자가 싫지 않습니다. 열흘 밤낮으로 달려간 묵자의 모습에서 빛과 어우러진 반짝이는 소금이 보입니다.



참고자료

신영복, 《강의》, 돌베개(2004)

위키백과, '공수반'

나무위키, '공수반'

네이버 지식백과, '묵적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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