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립시다(나세진 작가 N블로그 "쌈토끼의 생각 저장소")
안녕하세요, 나세진 작가입니다~!
혹시 만화나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 속 인물의 매력에 끌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릴 적 보았던, 〈카우보이 비밥〉이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스파이크 스피겔'에 굉장한 매력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영화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배트맨'이자 '부르스 웨인'이란 인물에 대해서 매우 끌렸던 적이 있습니다.
스파이크 스피겔과 부르스 웨인 모두 어두운 면이 짙은 캐릭터입니다. 스파이크는 현상금 사냥꾼이란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과거에 '레드 드래곤'이란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의 기억에 갇혀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결국 과거를 놓지 못하고 자유롭지만 진정한 자유가 없는 현실에서 다시 과거로 향하는 문을 열게 되는 일종의 숙명을 확인하게 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요.
부르스 웨인은 어떨까요.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에게 자신의 부모님이 살인을 당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평생 배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줍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배트맨이란 존재도 없었죠. 그 시점부터 부르스 웨인은 '악'과 맞서는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어두운 면을 띠게 된 두 남성 캐릭터가 한때 정말 끌렸습니다.
그런데 그림과 같이 미인(또는 미남)을 그리면서, 자신이 그린 캐릭터에 반하는 사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허황된 이야기란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친구로부터 자신은 사랑을 공유할 연인을 못 만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평소 즐겨보는 만화에 굉장히 매력적인 이성이 많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 인물들의 매력을 지닌 현실 속 이성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죠. 비슷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짙게 농축된 매력의 단편에 서사가 얽힌 캐릭터를 현실 인물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잠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빠져볼까요?
피그말리온은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키프로스 섬의 여성들에게 어떤 결함을 느꼈기 때문이죠. 그는 그 뒤로 현실의 여인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조각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아로 사람 크기의 여인을 조각했는데, 이 조각상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조각상 자체가 자신의 이상형이 되어버린 것이죠. 키프로스 섬의 수호신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에서는 비너스)의 축제일에 그는 정성스럽게 기도했습니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그의 진심을 알아보고,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여인이 갈라테이아입니다. 교육심리학 용어인 '피그말리온 효과'도 이 이야기에서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창조자와 창조물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에게서 나온 것에 더욱 강한 애착을 느끼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야기처럼 현실에 적용되는 자연 법칙마저 잊은 채로요. 모성애가 강한 이유를 아이가 엄마와 한때 한 몸이었다는 데서 찾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술이 현실보다 더 순수하다는 믿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예술은 불필요한 조건이 제거된 상태로 감정과 의미가 응축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복잡한 현실보다 더 이상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하지만 예술이 현실을 편집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위험성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