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들이 세계의 BTS가 되기를 꿈꾸는 저자의 목소리(4)
안녕하세요~! 나세진 작가입니다. 명절 연휴에 인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자가 6차 교육과정에 따른 초등학교 5, 6학년 사회 교과서를 집필할 때, 바로 옆에서 새로운 7차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저자는 "기존의 교육과정이 채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지는 현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국가 교육과정이 단 한 차례라도 완전히 실행되려면 12년이 걸립니다.(초1~고3 졸업까지 12년) 실제로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개정 주기를 고려하면 국가 교육과정이 온전히 실행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지적합니다. 참고로 교육과정의 개정 방식에는 주기적·전면적·일시적 개정 방식과 부분·수시 개정 방식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제안 이유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 국가 교육과정 전면 개정 주기를 최소 10~12년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실천·비평·개발 모델'에 입각해서 교육 현장의 실천 경험이 수시로 국가 교육과정 문서에 반영되는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교육과정 문서를 연성 문서가 아니라 경성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 국가 교육과정 문서를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교육과정에 관한 연구를 상시화하고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이 장은 초등 교원 양성 기관인 교육대학과 중등 교원 양성 기관인 종합대학교 내 사범대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교육대학은 초등 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목적형 양성 체제를 지닌 대학입니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전국의 교육대학이 4년제 대학으로 승격했습니다. 그리고 사범대학은 종합대학 내 단과대학을 의미합니다. '사범(師範)'의 뜻은 무엇일까요? 모범 혹은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적 교원 양성 기관은 한성사범학교입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을 위한 제도적 조치가 실행에 옮겨집니다. 한성사범학교의 설립은 한국 교육사의 획기적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교원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훌륭한 학자나 과거 급제자가 스승의 역할을 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일정한 자격이 있는 인사를 교원으로 선임했다고 합니다만, 그 교원을 양성 기관에서 양성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제가 강제로 우리 나라를 빼앗고, 한성사범학교를 폐지합니다. 관립 중등학교에 부설된 사범과, 교원속성과, 임시교원양성소 등을 통해 보통학교 교원이 양성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한국인에게 저급한 교육을 시행하려는 식민지화 교육에 대한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중기(1922~1938)에는 개정 조선교육령에 따라 독립 양성 기관인 사범학교가 설립됩니다. 이는 3.1운동의 여파로 인한 유화적 조치였습니다. 초등학교 6년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6년 과정을 운영했고, 보통과 5년, 연습과 1년을 통해 초등교원을 양성했습니다. 그러나 연습과 1년 과정만이 실질적 교사 교육이라 할 수 있었고, '교육' 과목은 보통과 4, 5학년에 주당 2시간만 배정되는 정도였고, 식민 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대부분 일본인 교원으로 구성하여 운영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1938~1945)에는 황국신민화 교육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등 전쟁에서 총력전을 벌여야 해서 '전시 총동원 체제' 구축을 위해 일제는 교육을 활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수신, 공민, 일본어 교육의 비중을 높였습니다.
광복 후 일본인 교사가 빠져나가고 교원 부족 문제가 두드러졌습니다. 1946년 9월 초등교육이 의무 교육화되자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이때 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임시 양성소를 통해서 부족한 교원을 충원했습니다. 교육 재건과 개혁을 위해 1950년대 말 미국의 조지 피바디 교육대학과 우리나라 문교부 사이에 체결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미국식 교육 및 교사 교육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후 1962년 사범학교를 2년제 교육대학으로 승격했고, 1981년 교육대학이 4년제로 승격했습니다. 이는 대학 수준에서 초등 교원을 양성하는 획기적이고 중요한 발전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00년에 걸쳐서 진행된 사범학교에서 대학으로서의 변화 과정이 우리나라에선 절반도 안 되는 기간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문에 고등학교의 관행이 대학 제도의 외양을 따라잡는 데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① 7장에 대한 생각
저는 7장을 읽으며 잘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 각 과목별 연구자들이 분과적으로 교육과정을 개발해놓고, 교사들에게는 통합적으로 가르치라고 하는 점. 검정 교과서로의 방향 전환이 교과서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효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바꾸는 재집필 관행. 핀란드와 일본은 10년 주기로 교육과정을 개정한다는 점.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현장과 유리되지 않는 교육과정의 개정 방식을 주장합니다. 또한 교육과정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많이 모르고 있던 부분이라서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많이 쌓게 된 단원이었습니다.
② 8장에 대한 생각
8장은 우리나라의 교원 양성 정책과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게는 제대로 된 교육도 없다는 것을 일제 강점기 교육 정책을 살펴보며 느낍니다. 일제는 식민지 정책을 공고히 하는 데 교육을 활용했습니다. 교육이 차별과 지배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교원 속성과, 임시 교원 양성소. 교육을 하는 교육자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와 질 높은 교육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정책이 일제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교원은 단기간에 양성할 수 있는 비전문적가라는 인식이 싹트게 된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임시 교원 양성의 역사는 여전히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교육은 복잡한 활동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매년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매년 어렵습니다. 내용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고, 학생의 눈높이에 맞는 내용 조직과 학습자의 발달 상황, 그리고 좋은 발문과 평가 도구를 유기적으로 조직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제게 초등학생 가르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매번 어려웠습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몸소 깨닫게 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민주주의란 한 줄로 표현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광복 후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양질의 교육을 위한 반성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길로 빠지는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선생님께서 일제 강점기의 교실 장면을 콕 집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너네들, 이때 태어났으면 허리춤에 칼 차고 다니는 선생님 보게 될 거다."
일제의 군국주의 교육 속에서 길러지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크게 될까요.
저는 체벌을 받고 자란 세대입니다. 중학생 때는 숙제를 안 했거나, 소란을 피웠을 때 엎드려 뻗쳐를 한 뒤 나무막대로 엉덩이를 맞았습니다. 심하면 야구방망이로 맞는 일도 있었죠. 그때는 그게 너무 당연했습니다. 감정을 싣지 않고, 정말 잘못했을 때,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선생님이 매질하는 경우는 그래도 선생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담아서 자기 기분대로 구타하는 식의 체벌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학생을 구타하는 문화가 일제의 교육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제 강점기 학생들의 회고록에서 뺨을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훈장님께서 회초리를 든 걸 체벌의 시작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김홍도의 서당도를 보면 훈장님 옆에 회초리가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회초리 문화는 구타의 방식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떤 한국사 강사의 회초리 관련 강의 영상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숙제를 안 했을 때, 대부분 선생님이 이유를 물어보고 내일까지 해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뭔가 합당한 이유가 없을 때,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봅니다. 학생 스스로 저는 맞아야 겠다고 생각하면, 당일 바로 때리지 않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의 말을 듣고 회초리를 끊어서 준다고 합니다. 끊어 준 개수대로 때리는 것입니다. 서로의 합의 아래 정말 공부를 하라고 때리는 회초리였습니다. 강사는 그때의 회초리는 정말 교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체벌 자체가 공교육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진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엄벌주의보다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지향합니다.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진정 반성하도록 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때리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어 학습을 유도하는 방식은 교육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길이기도 합니다. 공포감에 의한 통제는 즉각적인 효과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에 교육적인 방법으로 학생의 정의적 영역까지 이끌어야 하는 전문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