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

소녀의 당돌함이 돋보이는 상상의 세계(1)

by 나세진

안녕하세요~! 나세진 작가입니다.^^ 오늘은 정말 엉뚱하고 엉뚱하도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원문: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 대한 감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스포일러 안내

- 제 글에서는 작품의 핵심 장면과 결말을 함께 다룹니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은 작품을 읽고 돌아오시길 권합니다.^^

58489051348.20260114095132.jpg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간단한 작가 소개>


책 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를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 책의 작가인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1832년 영국 체셔의 유복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수학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1851년 옥스퍼드대학교의 크라이스트처치에 입학했고, 1851년부터 26년간 그곳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1856년 첫 시를 발표했고,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이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862년, 크라이스트 처치의 수학과 학장의 딸 앨리스 리들과 그 자매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땅속 나라의 앨리스〉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1865년 삽화가 존 테니얼의 삽화가 더해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했습니다.

이 작품은 '더 가디언'이 선정한 The 100 best novel에 18위로 선정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대작을 쓴 작가는 쭉 한 가지 길만 걸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미술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만 그리는 모습이 떠오르고, 위대한 문학가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루이스 캐럴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 수학 교육에 몸담은 그의 이력이 참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습니다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물의 업적과 발자취를 단순히 연결하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모스크바대학에서 법학 교수를 하다가 추상 미술의 창시자가 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이 된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서 그의 배경과 책을 연결해서 읽는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논리적이어야 할 수학자가 자신의 글에서 자유롭게 논리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있으니, 이야말로 역설의 대명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역설은 감동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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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논리적 권위를 무너뜨린 작가의 파괴력>


이야기의 구조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소녀 앨리스가 언니와 강둑에 있다가 흰 토끼를 보고 따라갑니다. 그리고 이상한 세계(Wonderland)에서 여러 존재들을 만나고, 기묘한 대화를 나눕니다. 말이 안 되는 일도 경험하지요. 그러다가 위기의 상황에서 꿈에서 깹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스토리 사이사이 놓인 일련의 대화와 사건들이 담는 의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소설을 읽고 제가 난독증이 아닐까 의심해 보았습니다.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해, 한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보곤 했습니다. 이상 작가의 난해한 글을 읽는 것과는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논리와 맥락에 맞추어 대화가 오가지 않고, 인물들이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구잡이로 던졌기 때문에 헤맸던 것 같습니다. 뭔가 말장난을 하는 것 같았죠.

말장난의 절정은 '아주 이상한 다과회'에서 앨리스가 3월 토끼, 모자 장수, 겨울잠쥐와 대화하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앨리스가 모자 장수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고 지적한 점을 들어 불쾌함을 표현하자, 모자 장수가 갑자기 "까마귀와 책상이 어떤 점에서 비슷할까?"(원문은 "Why is a raven like a writing desk?"로 왜 까마귀는 책상과 비슷할까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와 같은 전혀 생뚱맞은 퀴즈를 내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물음에 답하려고 머리를 굴려보았습니다. 저는 까마귀가 동물의 사체를 먹는 걸 떠올렸습니다. 사체를 먹으며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사람이 책상에 앉아서 죽은 사람들이 남긴 유산(=책)을 읽으며 자신을 살찌게 하는 행위에서 유사성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이죠.

그리고 앨리스가 겨울잠쥐에게 "하지만 세 자매는 우물 안에 살았잖아요."라고 묻자, 겨울잠쥐는 "물론 그랬지. 우울하게 살았지."와 같이 연결이 전혀 되지 않는 말을 합니다. 이런 식의 대화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저는 작가가 일부러 이런 대화와 사건을 나열하면서, 언어의 논리와 권위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난해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해석이 어려운 경우도 있죠. 저는 인간의 '이성'을 기반으로 한 '근대성'이 떠오릅니다. 예전에 이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광인'으로 취급하고 정신병원에 가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논리적이고 더 나아가 비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이 선과 악의 문제에 무조건 포섭되어야만 하는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추리 소설을 떠올려 봅시다. 저는 추리 소설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인과 관계가 딱 맞아 떨어지는 퍼즐을 푸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추리 소설에서의 모든 대화는 허투루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하나가 문제 해결의 단서가 됩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는 의미도 없고 맥락도 벗어난 말들이 무수히 오갑니다. '~하니 ~하다'는 식의 단정이 진실을 빗겨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논리적 설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설명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자네 형이 OO대학을 나왔으니, 그런 형과 함께 자란 자네는 자격지심도 많았겠군."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속으로 '도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오히려 저는 형이 공부를 잘해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형은 형대로, 저는 저대로, 저마다의 가치가 있는 대체 불가능한 두 존재이기 때문에, 한 쪽이 공부를 월등히 잘한다고 해서 제가 꼭 자격지심을 느껴야 한다는 건 납득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황당했던 건, 그 사람이 자신의 논리적 단정을 확신에 찬 말투로 말한 점이었습니다.

언어를 살펴보면 어떤 질문에 대한 응답 형식이 있습니다. 그것을 언어의 논리적 권위라고 저는 부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하지만 세 자매는 우물 안에 살았잖아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응, 그렇지만 ~해서 ~하게 된 거야."와 같은 응답 형식이 논리적 권위입니다. 사람들은 대게 이 틀에 익숙하고, 이런 형식을 벗어나면 대화가 잘 안 된다고 여깁니다.

형식을 벗어난 걸 이상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선악의 문제인지는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저 역시도 제가 생각한 논리적 형식이 나오지 않아서, 책을 읽기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고정된 언어 형식 안에서 놀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란 생각이 듭니다.

근대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리를 기반으로 한 '근대성' 안에 다른 사람들을 가두려 하고, 그 외의 현상은 모두 울타리 밖으로 내모는 것은 폭력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작품 속 말장난의 향연은 언어가 지닌 권위(논리, 형식, 배타성)의 결함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걸 의심해 보는 태도를 지니게 하는 장치가 아닐까 합니다.


※ 중요한 문장도 많고, 생각할 점도 많이 던져주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여러 편으로 나누어 글을 써보려 합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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