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잘 보내라고 하지 마세요.

공명(共鳴)

by 새참의 연필

“주말 잘 보내세요.”


금요일 오후의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였다. 수연은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사를 하며 회사를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영제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흔한 인사말이 오늘따라 영제의 뇌리에 박혔다.


주말 잘 보내세요.

그렇지. 우리는 회사에서 아는 사이고, 주말에는 당연히 볼 수 없는 사이니까.

하지만 오늘따라 그 인사가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주말에 뭐 하냐고 물어봐 줄 수 있잖아.’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영제는 이내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연을 좋아하는 것은 영제 쪽이고 그런 마음이 있는 자신도 차마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인데 상대방의 입에서 먼저 그 말이 나올 리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좁은 조직 안에서, 한번 보고 말 사이도 아닌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가끔 다가오는 수연의 행동이 호의인지 호감인지 수백 번을 고민하지만 결국 억지로 호의라고 생각해 버린다. 회사 근처에 맛있는 음식점을 알게 되면 수연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언제 한 번 같이 저녁에 가보자고 말하고 싶지만, 또 말을 먹어버린다. 현실적인 벽이 높다는 생각에 영제는 마음을 늘 억지로 억눌러왔었다.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서운한 감정이 많이 올라왔다. 서운함의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지쳐버렸기 때문 아닐까라고 영제는 생각했다. 긴 시간 혼자 가슴 앓이 하는 것에, 관계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시간만 흘러버린 것에. 그냥 직장 동료, 낮에 가끔 커피나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지만 절대 회사 밖의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는 사이. 아마도 영원히 관계의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영제는 조용히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리, 잠깐만.”


박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제는 절망했다. 그가 말을 건다는 것은 90% 이상의 확률로 집에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더 조용히 도망갔어야 했나?


예상대로 다양한 과업이 새롭게 주어지고 영제는 짐을 다시 자리에 풀고 앉았다.


‘금요일인데 정말.’


가뜩이나 감정이 다운되어 있는데 이런 일이 또 생긴다. 왜 안 좋은 일은 겹치기만 하는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먹고는 살아야지. 그래도 금요일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아 일하는 틈틈이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보았지만 이미 다 일정이 꽉 차 있어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영제는 숙제를 후다닥 마치고, 박부장에게 메일을 보낸 뒤 다시 짐을 쌌다. 컴퓨터를 끄려던 중, 사내 메신저가 깜빡거리며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 인간이 또 읽어보지도 않고 연락하네.’ 영제는 한숨을 쉬며 메시지 창을 열었다.




“네, 들어가세요.”


사무실 복도를 지나가는 수연에게 들려온 목소리. 수연은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사를 한 영제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모니터를 보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시선은 벗어났지만 영제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금요일이라곤 해도 아무도 칼퇴근을 하지 않아 혼자만 엘리베이터를 탄 수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티가 났으려나.’


수연은 생각했다. 영제에게만 다르게 표현한 자신의 마음을 영제가 알아챘을지 궁금했다. 회사 근처 자취방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긴 수연은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침대에 뛰어들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너가 뭐라고 했다고?’


전화기 너머로 언니의 어이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수연은 빠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가보겠습니다’라고 인사했는데 대리님 한테만 ‘주말 잘 보내세요’라고 인사했다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거 때문에 내 마음이 들켰을까 봐 걱정이라고.”

‘왜?'


수연은 언니가 답답했다. 사실 누가 봐도 답답함을 느끼는 건 언니였지만, 어른답게 내색하지 않았고 수연의 말을 계속 대꾸해 주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냥 평범한 인사였고, 대리님 한테는 주말 잘 보내라고 주말을 강조했다니까. 그러면, 상대방이 느끼기에 이 사람이 왜 주말이라는 단어를 콕 집었을까? 혹시 내 주말을 궁금해하는 걸까? 왜 그랬을까 나한테 마음이 있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


그런 언니도 이 말을 듣고는 더 이상 편을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없었다.


‘수연아, 정신 좀 차리자. 그거 과대망상이야’


조금의 대화를 더 이어간 뒤, 전화를 끊은 수연은 언니의 마지막 말을 다시 생각했다.


‘니가 생각하는 정도의 10배 이상으로 표현해도, 그분은 잘 모를 수도 있어. 그리고 같은 회사에서는 더 조심스러우니까 어지간히 티 내는 걸로 안된다니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먹었으면 강하게 말해봐.’


언제부터였는지, 수연은 영제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첫인상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고, 사내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영제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모르게 스며들었다. 반듯하게 일하는 모습, 책임감 있는 모습에 점점 빠져들었다. 더 이상 호감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수연에게 큰 존재가 된 영제였지만, 회사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가능한 조심 하고 있으면서도 영제가 이 마음을 알아주고,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수연 스스로 최대한 티 낸다는 생각으로 했던 행동인데. 언니의 말을 듣나니 이 정도는 한참 부족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감이 있는 사람 또한 나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 관계를 확인하려면 누군가는 선을 넘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과를 떠나 시작은 중요하고, 좁은 사회에서는 은근한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한참 언니 외의 통화를 곱씹던 수연은 핸드폰으로 사내 메신저 어플을 켜봤다. 퇴근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지만 영제의 아이디가 접속 중이었다.


'지금, 지금 건너시면 돼요. 파란불이에요.'


영제의 아이디에 들어온 녹색 불이 수연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수연의 머릿속에 영제의 다양한 모습이 떠올랐다. 업무를 할 때 귀엽게 허둥대던 모습, 회식 자리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쑥스러워하면서도 잘 웃고 떠드는 모습, 갑자기 한껏 꾸미고 와 두근거렸던 모습, 수많은 모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수연은 결심하고 메시지를 입력했다.


‘아직 사무실이세요?’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새로 온 메시지를 연 영제는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당연히 박부장의 재촉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에, 수연에게서 온 메시지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자리에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영제는 지금이 자신이 그렇게 기다리던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입력했다.


‘회사 근처에 괜찮은 맛집 있는데, 식사 안 하셨으면 가보실래요?’


잠시 뒤, 답장을 받은 영제는 들뜬 얼굴로 사무실을 부리나케 빠져나갔다.

채 끄지 못한 모니터에는, 수연의 메시지가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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