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올 사람이면 떠나지 않았을 거야.

당위(當爲)

by 새참의 연필

모닝콜이 울린다.

억지로 잠을 쫓으며 침대에서 나와 출근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내려 전철역으로 향한다.

잠깐 걷는 사이 얼굴에 불어오는 칼바람이 오늘따라 시리다.

회사 앞 역에 도착 한 뒤 다시 5분 남짓한 시간을 다시 걸어 사무실로 들어간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행동을 2년째 반복하고 있지만 승환에게는 모든 게 현실 같지 않다.

1주 전,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이별 전까지만 해도 승환은 본인의 삶에 지극히 만족하고 있었다. 억대 연봉은 아니지만 그 나이대의 평균을 웃도는 연봉을 벌고 있었고 적당한 문화생활과 취미 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가끔 비싼 파인다이닝을 가기도 하고 여행도 자주 다니며 인생의 재미를 찾았다. 불만이 없다 보니 평소 인간관계에서도 모나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그런 승환을 좋은 이미지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던 중 찾아온 이별이 승환의 모든 것을 뺏어가고, 껍데기만 남겼다.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가 업무를 수행한다. 머릿속에서도 본인이 오늘 어떤 목표가 있고, 언제까지 과업을 처리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움직이면서도 승환에게는 현실감이 없다. 지금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 맞는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승환은 하루를 보냈다.


평소에 여자친구와 큰 다툼도 없었고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별 선고를 받게 되니 충격이 몇 배는 더 심했다. 하루 종일 절망감과 무기력함이 왔다 갔다 하면서 감정이 극한으로 몰리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승환의 주변의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평소였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일들에 대해 짜증을 내고 화를 표출했다. 그런 모습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주변에서도 승환을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뒷말이 나오는 걸 알면서도 승환은 자신을 추스를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승환의 심리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본인 스스로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 좋은 일은 몰려온다더니, 이별 외의 다른 악재들이 승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기도 했고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승환은 꾸역꾸역 버텼다. 술에 만취해서라도, 사정을 아는 정말 친한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서라도,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을 때 전날 술에 취해 전 여자친구에게 전화 건 흔적을 봤을 때도, 자책하지 않고 버텼다. 함께 갔던 가게, 같이 먹었던 음식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사진, 편지 모든 흔적을 찾아가며 지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괴롭게 보내면서 이겨내다 보니, 많이 덤덤 해 졌다. 역시 시간이 약이었다.

순간의 괴로움도 나중에 돌아보니 씁쓸한 추억일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의 모습을 많이 되찾았다. 물론 승환이 상처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내면의 흉터는 여전히 진하지만 적어도 남들이 봤을 때는 멀쩡해 보였다. 언젠가는, 스스로도 완전히 이겨 낼 시간이 올 거라고 승환은 생각했다.


이 ‘완전히 잊는다’는 과정을 맞이하려면 그냥 시간만 보내면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용기를 내야 한다.

바로 그 사람을 진정으로 떠나보내는 마음이다. 다시 돌아올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별을 통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떠난 인연은 거기서 끝나 버린 것이고, 억지로 이어봐야 서로가 불행 해 진다는 것. 사실 알면서 인정하기는 힘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내 마음을 비워 놔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찾아왔을 때 들어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게 이별로 인해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혹시나, 만약에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까 하는 미련은 버리는 것이 좋다. 이별 초기에는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이 와서 오해였다고, 자기가 잘 못 생각 했다고 사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돌아올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별을 말하지 않았을 것. 뭐가 어찌 되었건, 승환이 없는 삶이 더 좋았을 거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이별을 말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생각 조차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하고 그를 위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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