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완성은 한 발짝 내딛는 것부터

시도(試圖)

by 새참의 연필

큰 키에 과하지 않은 체형. 하얗고 적당히 깔끔한, 흔히 요새 두부상이라고 불리는 외모.

현성은 누가 봐도 괜찮은 모습의 청년이었다. 이제 청년이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어색한 나이지만 또래보다 어려 보였기 때문에 겉모습으로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 현성이었기에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항상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왜 쟤는 연애를 하지 않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해도 선뜻 응하지 않고, 사람들과 친해지면서도 일정 선을 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다. 일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서 다음날 다시 정시에 출근하는. 흔히 말하는 얼굴 낭비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평을 받는 현성이었다.


“너는 연락도 하고 그래라. 내가 불러야만 나오냐?”


시끌벅적한 소리에 앞사람의 말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상재의 말만은 현성에게 뚜렷하게 들렸다. 워낙 발성이 좋고 큰 목소리라 그랬을지도 모르고, 정곡을 찔려서였는지도 모른다.


“사는 게 바쁘잖냐.”

“너만 바쁘냐? 우리 모두 다 바뻐. 애들도 너 궁금해해.”


그러고 보니 대학 동기 모임에 안 나간 지도 꽤 오래되었다. 한 때는 하루라도 안 보고 살 수 없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젠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어야 할 정도라니 현성은 새삼 놀랐다. 그러다 보니 눈앞의 상재가 고마웠다. 동굴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꾸준히 챙겨주고 연락하는 것이 귀찮기도 할 텐데. 현성을 말없이 눈앞의 소주병을 들어 상재의 잔을 채웠다.


“그냥 나랑 이렇게 만나는 거 말고라도, 여자도 좀 만나고 하라고. 이러다 조금 더 지나면 영영 인연 못 만나. 최소한 좀 외부로 돌아다니기라도 해 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재가 했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현성은 최근의 일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특별한 일이 없이 단조롭게 보내던 하루하루가 꽤 긴 시간이었다. 매일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생활을 하면서 쳇바퀴 같이 살고 있었다. 감정의 요동이 없다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무색무취의 삶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다는 것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편하고 익숙하다는 핑계로 자신을 방치해 버린 것이. 늘 진취적으로 살 수도 없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기만 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귀찮다는 감정은 강박을 덜어주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만 과하면 나를 잠식해 버리고, 무너지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날이 반복되는 순간, 몸도 따라서 무너지게 된다. 피곤하지 않아도 누워만 있고, 핸드폰만 손에 쥔 채 스크롤만 넘기는 하루를 보내고 하면 분명 쉬었는데도 체력 회복이 되지 않는다. 재충전을 하지 못하고 시간만 가면 괜스레 자책이 들기도 한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귀찮음에 절여진 몸은 그런 날들을 쌓아만 간다.


수렁에 빠진 듯한 시간이었다. 남들은 현성을 멀쩡하게 바라보았지만 사실 현성은 자신도 모르는 채로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상재와의 만남이 그런 현성을 끌어올려 주는 단단한 손길이었다.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재의 말처럼, 언젠간 하고 싶어도 못할 날이 오기 전에 움직여보고 싶었다. 자신에게 의지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자 현성은 묘하게 들뜬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똑같이 비추던 가로등 불빛이 더욱 환하고, 밝게 느껴졌다.


며칠 뒤, 현성을 퇴근길에 서점을 들렸고, 서점을 나오는 현성의 손에는 요리책이 들려 있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싶은 현성에게 요리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퇴근 후, 간단한 요리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꽤나 긍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우선, 요리를 고르고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집 앞 마트 들리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어두운 집에 들어가 박혀있는 것보다 잠시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는 모습을 보다 보니 에너지가 생겼다. 집에 도착해서 준비된 재료를 손질하고, 레시피에 맞춰 완성을 향해 가다 보면, 금방 완성품을 만날 수 있다. 요리가 하나하나 완성될 때마다 성취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요리책을 통해 둘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나중에는 유튜브를 찾아가며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였다. 현성은 그렇게 요리를 하면서 맛있는 냄새를 맡고, 비주얼을 보며 기대를 하고, 마지막으로 완성된 작품을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과정이 삶에 대한 의욕을 조금씩 불러일으켰다. 익숙해지고 나니 요리란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요리는 평소에 자주 먹던 라면에 비해 크게 복잡하지도 않았다.


요리하는 저녁에 익숙해진 이후로, 현성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요리야, 라면이라도 끓여 먹었다고 하지만 청소는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모르던 사이에 쌓이던 먼지와 얼룩은 현성의 마음을 겉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에 걸쳐 잘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와 얼룩을 지우면서, 마음속에 있던 멍울까지 지워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시작하던 현성은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가볍게 주변 산책을 하다가 공원을 달리기도 하고, 혼자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밝은 에너지가 점점 늘어나면서, 현성의 비주얼이 더욱 빛나고 주변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까지 현성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현성은 더 이상 벽을 치지 않고 솔직한 마음대로 그들을 받아들였다.


얼마 뒤, 상재는 현성의 연락을 받고 술집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지?'


현성에게 먼저 연락 온 것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이라, 내심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른 시간인 탓에 가게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현성을 바로 볼 수 있었다. 테이블로 다가가는데, 현성의 옆에 낯선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왔어?”

“어. 그런데 이분은 누구?”

“응. 내 여자친구. 소개해 주고 싶어서 오늘 보자고 했어.”


상재는 놀람과 당혹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윽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새로 시작해 본 것, 그 발걸음들이 현성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 계기가 된 상재를 바라보며, 현성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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