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결국 핸드폰을 다시 잡는다.

소회(所懷)

by 새참의 연필

민기는 설거지하다, 문득 손에 차가움을 느꼈다. 습관처럼 여름부터 계속 맨손으로 설거지해오고 있었는데, 어느새 흐르는 물에 차가움을 느낄 정도의 계절이 되었구나. 그러고 보면 짧은 가을을 지나 이미 겨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계절이 되었는데, 마음의 공허함이 일상이 되다 보니 몸의 차가움이 조금 천천히 다가온 것 같다. 설거지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민기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였다.


매일 밤이 되면 드는 생각. 이 외로움의 근원은 뭘까? 단순히 연애를 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외로움의 일정 부분에 사랑의 부재가 존재하는 것도 맞지만, 더 큰 범위의 삶에서 느껴지는 무의미함이라는 것이 민기를 조금씩 아니 이미 많이, 갉아먹고 있었다.


모든 일에 재미가 없다. 맛집을 찾아다녀도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한 컨셉에 비슷한 데코레이션, 언젠가는 먹어본 맛. 신작 영화를 봐도 늘 똑같은 배우,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이야기. 새롭게 취미를 시작해도 초반에 반짝, 재미를 느끼다 다시 똑같은 수준에서 흥미를 잃어버린다. 이런 무기력증을 인터넷에서는 우울증 초기 증상이라고 하던데, 이런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10년을 넘어가는 민기에겐 그 말조차 뻔했다.


‘초기가 10년이 넘어가면 이미 환자지.’

민기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지나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밥벌이를 위해 하루하루 출근하지만, 민기도 꿈이 있었다.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그냥 회사원이 꿈이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대에 이루지 못한 꿈을 30대까지 억지로 끌고 와서, 계속 도전했었다. 자신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믿음으로 바쁜 현생을 쪼개가며 시도했었다. 하지만 끝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자신감만 떨어졌다. 계속된 실패는 민기를 주저앉게 하기에 충분했다. ‘좀만 더 해보면 되겠지’에서 ‘재능도 없는데 계속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으로 기울어졌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놓지 못했는데도 작은 성과조차 없다면, 난 안 되는 거겠지.'


민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끝내 꿈을 포기 하진 못했다. 잡지 못하고 손 안에서 흘러내리는 모래 같았지만, 완전히 흘려보내면 정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모래 한 알이라도 손에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 움켜쥐고 있던 모래도 시간의 흐름에 새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꿈을 놓았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었다. 직업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평범한 회사원이 얼마나 부자가 되겠냐만은. 돈이라도 많아서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펑펑 쓰면서 살고 싶은데 이놈의 급여는 제자리걸음이고 신중하게 도전하는 투자는 본전이거나 손해 거나. 드라마틱하게 재산이 늘어나지 않는다. 통장 숫자는 몇 년째 거기서 거기.


주변에 사람은 죄다 떠나간다. 사랑했던 연인도 친했던 친구들도. 점차 만나지 않는 기간이 늘어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든다. 한 번 연락이 소원해지다 보니 몇 년간 서로 멈춰버린 관계들이 많았다. 바뀌는 프로필 사진으로 서로의 나이 듦을 알 수 있었다. SNS에는 어느새 아기들 사진만이 가득했다.


민기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민기를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었다. 혼자 속앓이를 하는 사이, 민기가 좋다며 따라다니던 사람들도 지쳐 다른 사람들 찾아 떠나가버렸다. 그렇게 빨리 식을 거면 티 내지나 말지. 이제 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 쪽도 남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다 보니 벌써 시곗바늘은 1시를 넘어갔다. 또 새로운 날이구나. 하루 더 나이를 먹었구나. 의미 없이. 날짜가 바뀌어 버리고, 감정이 깊어졌다. 민기는 밤이 괴로웠다. 항상 이 시간대에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잠이 오질 않는다.


인간이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시간 새벽 2시, 드디어 서러움이라는 감정까지 다다른 민기는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가져왔다. 다시 누워 X에 접속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직업, 사랑, 꿈, 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하다. 어느 하나라도 원하던 만큼 가졌어야 했는데. 혹시 내가 가진 것에 비해 많이 바라는 것일까? 누군가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한다. 하지만 작은 일에 만족하는 것은 이제 지쳤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남들이 이미 내 몫의 행복까지 누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낫다. 여러분, 나는 실패했습니다. 당신들이라도 행복하세요. 저 대신 누구라도.'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글을 게시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침대 옆으로 던졌다. 동시에 민기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끔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하듯이 글로 써 내리면 편해지는 기분이 든다. 팔로우의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민기를 위로해 줄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배출하는 것이 민기의 안에서 부정적으로 갇혀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민기는 잠을 청했다.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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