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영(投影)
정수는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몸은 그대로 굳은 채, 시선만 핸드폰에 두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단체 대화방이 띄워져 있었고 그 대화방의 마지막 말은 선호가 남긴 메시지였다. 지극히 자극적이고 센 워딩의 농담. 누가 봐도 웃을 법한 멘트이긴 했지만 누가 봐도 정소를 저격하는 말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메시지에 웃는 답장을 보내기도 했고 누군가는 읽고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수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선호의 그 말이 굉장히 기분 나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계속 생각하던 정수는 손을 들어 핸드폰을 터치했다.
몇 년 전, 정수는 한 사람과 이별을 했었다. 지금은 얼굴도 목소리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같이 있는 동안만큼은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이 많던 인연이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헤어졌던 것은, 기뻤던 순간만큼 싸우던 횟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크던 작던 무조건 싸우다 보니,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도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싸움의 시작은 다양한 이유였지만 과정과 결과는 항상 비슷했다. 트러블이 생기면 정수는 끊임없이 대화를 하자고 했고, 상대방은 싫다고 하였다. 정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갈등을 대화로 푸는 것이 대체 왜 싫다는 거지? 상대방은 정수의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아집이라고 했다. 결국 서로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그렇게 인연을 다했다.
이별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지던 시기에, 회사에 인사이동이 있었다. 꽤 가깝게 지내던 상사가 정수의 팀장이 되었다.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사람이라 정수는 좋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회사 생활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장과 팀원으로 지내면서 사이가 급격하게 멀어지게 되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팀장은 고집이 너무 강했다. 현실에 맞지 않는 지시를 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실무 입장에서 수없이 반대하고 설득해도 절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정수나 다른 팀원이 반대해도 자기 얘기만 앞세웠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을, '대화'라고 했다. 우리는 대화로 충분한 합의와 논쟁을 마치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정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팀장의 모습은 과거 그의 여자친구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본인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팀장은 항상 대화를 강조했다. 어려운 일은 대화로 풀자고, 논의하자고 했지만 정작 대화를 시작하면 항상 자기 이야기만 맞다고 하였다. 정수가 불만을 토로하면 무조건 자기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정수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였고 정수의 생각을 부정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속뜻은 비슷했다. '본인은 잘못이 없고 착한 사람인데 왜 부하인 네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느냐'
마지막에는 항상 서로 잘 맞춰가자고 했지만 그건 정수가 팀장에게 맞추라는 말이었다.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은 다양했으나 과정과 결과는 항상 같았다.
정수는 팀장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 사람이 바뀌는 것은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고, 인정하기만을 바랬다. 그리고 그건 정수의 전 여자친구가 바랬던 모습이기도 했다. 그녀가 공감을 바랄 때, 정수는 그냥 자신이 왜 그랬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려 했다.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했다. 그때 정수는 자기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완고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여자친구를 바꾸겠다는 마음 밖에 없었다. 그게 그녀에게는 큰 상처였을 것이다. 전 여자친구도 정수의 변화를 큰 변화를 바랐다기보다는, 그냥 마음을 헤아려 주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몇 년의 간극이 순식간에 줄어들면서 현실감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물론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가끔 그 연애를 떠올릴 때면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지사지. 사전적인 의미로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라는 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도 많이 사용하고 표현하는 말이지만 정작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상황을 잘 보지 못한다. 말의 범용성에 비해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이 개념을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남에게서 보는 나의 모습’ 또는 ‘나에게서 느껴지는 남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쉬워진다. 이 말이 되게 슬픈 건, 우리가 아무리 머리로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해도 진심으로 가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야 절대 그럴 수 없다. 본질적으로는 느껴야 한다.
정수의 어떤 연애는, 사고 같은 이별을 맞이했었다. 몇 주 아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즐겁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끊고 이별을 고하는 경우. 바로 차단당해서 제대로 된 이유를 듣지 못해 마음고생을 꽤 오래 했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이별의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섭섭한 감정이 쌓여서 그랬다고 했었다. 섭섭 한 걸 말해주지 않고 떠나버린 게 원망스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인연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정수는 채팅창을 보면서 그 이별을 생각했다. 선호도 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서로 성향이 잘 맞아 격 없이 오랜 세월을 보냈었지만 은근히 선호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었다.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농담의 수위 조절이 안 될 때가 있었는데, 정수가 내색하지 않았지만 상처받았던 적이 꽤 많았다.
그런 감정이 쌓여 있던 차에, 그 메시지를 본 정수는 말없이 핸드폰에 손을 올려, 조용히 채팅방을 나가면서 선호를 차단하였다.
그 후로도 정수는 다른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의미가 뭔지 궁금할 때마다, 본인이 겪었던 반대의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때 스스로 느꼈던 감정을 상대에게 투영해 보면,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런 방법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좋은 해결책이 되었다.
선호를 차단하고 얼마 뒤, 정수는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선호를 같이 아는 몇몇 친구들은 정수에게 선호와 어떻게 된 거냐며 묻기도 했지만, 별 설명 없이 말은 넘기는 정수에게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한참 신나게 술 마시며 시시껄렁한 소리를 하던 중, 한 친구가 말을 꺼냈다.
“야, 저 테이블에 저 여자 예쁘지 않냐? 아까 눈 마주친 거 같은데. 나 보면서 무슨 생각했을까?”
정수는 담배를 문 채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니가 못생긴 여자를 볼 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