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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Mar 19. 2021

정신건강의학과, 가도 괜찮아요.

건강하세요, 몸도 마음도.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가 있다.

"내 아이가 지금 잘한다고 자만하지 말고, 조금 느리다고 크게 걱정하지 말라."

지금 잘하고 있는 아이가 언제 어떻게 비뚤어질지 모를 일이고, 조금 느린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크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너무 자만하지도 걱정하지도 말고 묵묵히 지켜보며 적절한 시기에 아이에게 필요한 뒷받침을 잘해주라는 이야기.




건강도 마찬가지다.

지금 건강하다고 앞날의 건강을 자만해서도 안 되고, 지금 아픈 곳이 있다고 앞날의 희망을 버려서도 안 된다.

몸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마음 건강 역시 매한가지이다.

그러니 너무 자만하지도 걱정하지도 말고 늘 챙기고 보살피면서 아픈 곳이 있다면 적절한 시기에 병원에 찾아가서 필요한 처방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어느 날 배가 몹시 아파서 내과를 찾았는데, 큰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받아보라는 소견서를 받고, 그 길로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며칠 후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힘겨운 두 번의 수술 끝에 결국 3개월 만에 돌아가신- 아빠를 지켜보며 처음 깨달았다.

그 누구의 건강도 앞으로의 일은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 건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20대 중반에 나는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 겪었던 우울감을 드디어 극복해낸 줄로만 알았다. 

무궁한 자기 계발과 부단한 노력으로 다 깨부순 줄 알았다. 

스스로 마음의 병을 고쳤고 건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전의 시간들은 아예 없었던 일인 양 아주 건강하게 지냈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울감은 언제나 내면 깊숙한 곳에 깔려있었다. 

너무도 오래전에 그 기반을 튼튼히 다져놓고 있었기에 내가 애를 쓴 끝에도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장담할 수 없는 거였다.

예전에는 아팠지만 한 때는 극복해냈었다. 

그러나 언제든 어느 환경이 되면 또다시 재발할 수 있는 거였다.

이제 와서 뒤늦게 우울장애 치료를 받으며, 누구에게든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아프면 병원에 갑시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사람에게 이상한 시선을 보내지 맙시다. 몸이든 마음이든."




당뇨나 고혈압이 있으면 꾸준히 약물치료와 식이요법을 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듯, 마음 건강에도 부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든. 

건강해지기 위해서 꾸준히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는 것뿐이다.


독감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면 낫기야 낫겠지만, 그 과정이 힘드니까 타미플루를 챙겨 먹으면서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과 같다.

우울함도 어떻게든 버티고 힘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낫기야 하겠지만 그 과정이 힘드니까, 병원과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자.

너무 거부감을 갖지 말고 병원에 가보자.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울증 치료 과정은 내가 정신병자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온 동네에 소문을 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덮어두기만 했던 지난날의 나를 지금의 내가 위로해주는 과정이자,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다. 

동시에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마음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미래의 나에게 오직 지금의 나만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


감사하게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셨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그렇게 까지 해서 이 상태를 떨치려고 노력해야 하나? 그냥 이런 기분으로 쭉 있으련다.'

라고 생각하셨다면, 다른 분은 몰라도 당신은 지금 당장 병원에 꼭 가보셔야 합니다.

일단 한번 가보세요. 일단 한번 상담이라도 받아보세요.


심한 몸살감기를 앓고 계신 분에게 진통제를 권하는 심정으로,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그 어떠한 진통제도 지 않아서 모르핀 패치를 붙이셔야만 했던 아빠를 떠올리며 권해드립니다.

몸이 아프면 일반 약물과 진통제가 약효를 발휘할 수 있을 때, 미리미리 내과든 외과든 가보세요.

마음이 아프면 일반 상담과 약물치료가 가능할 때, 미리미리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세요.

정신건강의학과, 가도 괜찮아요.


당신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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