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쌍미음 Jan 26. 2021

아? 나, 우울증인가?

우울증의 인지

때는 2020년 7월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기력하다, 식욕이 없다, 짜증이 난다, 분노가 치민다, 만사가 귀찮다,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 소리를 지른다, 이러다가 조만간 학대를 하게 될 것만 같다.




결혼 후 6개월 만에 첫째 아이 임신, 그때부터 줄곧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해왔다.

그러다 두 아이가 각각 7세, 5세가 되던 해부터 이제는 -비록 단시간 알바일지라도- 일단 뭐라도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하면 그럴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전공했던 학과의 졸업장, 관련 면허와 자격증을 들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풀타임 근무는 힘들고, 내가 원하는 요일에 단시간만 할 수 있는 일을 골라야 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래도 길은 있었다. 

수요가 많았고 공급도 많았다. 경쟁도 치열했다.

차근차근 준비했고, 서류 전형과 면접을 통과했고, 결국 2020년도 프리랜서 활동 계약을 따냈다.


그리고 코로나가 대대적으로 터졌다.

내가 계약한 곳은 코로나에 가장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집단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보다도 더 보수적이고 완벽하게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곳이다.

일을 하겠다고 계약은 했지만 일을 하지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8년만의 사회 활동 계획이 무산되었다. 

기대에 한껏 부풀어올랐던 거품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큰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 하고 집에서 원격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때마침 내가 일을 하지 못 하게 되어버린 바람에, 집에서 아이의 생활을 뒷받침해줄 수 있게 되었다.

... 어쩌면, 내가 하필 그 직업을 골랐던 게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생활이  몇 달이고 끝도 알 수 없이 자꾸만 길어지고 또 길어졌다.

작은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지 못 한 날이 훨씬 더 많게 되었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불안하고 걱정되는 시기에, 내가 집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안심되고 다행이고 감사한 날들인가, 내가 다른 직장에 취업을 했더라면 얼마나 불안한 나날들이었을까, 정말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애써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암기하고 스스로 세뇌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추진하던 일의 물거품,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가정보육, 아이들과의 전쟁에 점점 지쳐갔다.


'때리지 않고 키우겠다.'는 다짐도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곧 아이들을 때리게 될 것만 같았다.



무기력하고, 식욕이 없고, 짜증이 나고 분노가 치밀고, 다 귀찮았다. 잠만 자고 싶었다.




... 아? 잠깐,

나 이거, 언제 많이 겪어봤던 것 같은데?

이거, 뭐더라?


나 이거, 우울증인가?




검사고 상담이고 받아볼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분명 우울증이었다.  

예전에도 겪어봤었는데, 그때도 어찌어찌 버티다 보니 결국 헤어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조금만 견디면 결국엔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




아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