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 한 크리스마스

관계와 분위기를 대변하는 크리스마스트리

by 쌍미음

왠지 모두가 들뜬 연말,

이번 한 해도 잘 버텨온 나,

그런 나의 다정한 사람들,

그런 우리가 함께 머무는 소중한 공간,

그런 공간을 함께 꾸미는 여유로운 시간,

그런 시간을 채우는 웃음과 정성.


독실한 무신론자에게 있어 크리스마스 장식이란 - 이런 의미이다.



지나는 길에 보이는 상점의 커다란 빨간 리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이웃집의 희미한 꼬마전구불빛,

출근길에 보이는 큰 회사 로비에 세워진 대형 트리와 갖가지 장식품,


나와는 상관 없는 장소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거나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는 것은,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마음과 정성을 짐작할 수 있음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곳에는

12월이 아흐레나 지나도록,

크리스마스가 보름이나 앞으로 성큼 다가오도록,

아직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허전하거나 궁금하지도 않았을 고작 크리스마스트리의 안부.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주십사 요청했던 누군가의 용기,

흔쾌히 구매를 진행했던 누군가의 아량,

크리스마스트리의 잎사귀를 일일이 펼쳐가며 나누던 그들의 담소,

장식품을 달며 함께 쌓아가던 그들의 시간,

이 모든 것이 상자 안에 고스란히 처박혀 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 하고 있는 지금,


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 한 크리스마스트리는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의 관계와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나와 함께 하는 너는 더이상 다정한 사람이 아니며,

너와 내가 존재하는 이 곳은 더이상 소중한 공간이 아니며,

함께 숨쉬는 시간은 더이상 여유롭지 못하다.

이 순간에 웃음과 정성은 없다.




누구도 먼저 찾지 않는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숨죽이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바늘잎과도 같은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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