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07월 25일
하우스 앞 잡초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 망할 잡초들은 엄청 잘 자라네’
귀농이라 하면 귀농이라 할 수 있는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4달. 여기 와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배웠다. 다이소와 지하철, 쿠팡 로켓 배송은 인류 문명의 축복이라는 것과 배차시간 40분짜리 버스면 훌륭한 대중교통이라는 것. 시골이라고 절때 물가가 저렴하지 않다는 거랑 시골 입지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학세권도, 팤세권도, 편세권도 아닌 농세권. 농협 하나로 마트가 집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가 중요하단 것까지. 그중 가장 뼈저리게 배운 것은 ‘식물은 절때! 내 마음대로 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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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느리고 연약하다. 더 정확하게는 쓸모 있는 식물은 느리고 연약하다. 그래서 식물을 잘 기르기 위해, 하우스 안을 식물 성장에 가장 최적화된 환경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석박사들이 연구해 찾아낸 식물 성장에 가장 좋은 파장의 빛을 최적의 시간 동안 쬐어준다던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항온항습기로 상시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 준다던가. 그리고 수십 개의 논문을 바탕으로 찾아낸 최적 비율의 영양액을 식물에게 밥으로 준다던가. 하지만 더디게 자란다. 게다가 온도가 조금 높거나, 까다로운 식물 입맛에 맞지 않는 양액을 준다던가 하면 곧바로 바닥에 누워버린다. 그리고 인생, 아니 초생을 포기해버린다. 갓 태어난 신생아도 이거보단 덜 까다로울 거다.
이렇게 식물 키우기에 애먹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우스 밖은 잡초 천지다. 항온항습, 양액, 특수 빛 이런 거 하나 없이, 오히려 온갖 병충해의 공격과 거센 비바람, 폭염과 같은 시련 속에서도 잘만 자란다. 이런 걸 보면 참 허무하다. 왜 저렇게 쓸모없는 풀떼기는 온 우주의 축복이라도 받은 듯,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랄까. 우리 하우스 안 풀떼기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잡초의 반의 반의 반도 안 자랄까?
게다가 그런 생각도 든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잡초들은 왜 하나같이 쓸모가 없을까? 대한민국의 정신 나간 기후에도 적응하면서 살아온 그 놀라운 비밀을 왜 영양소로 남기지 않았을까? 그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풀이라면 탈모 치료나 노화 방지, 주름 개선과 같은 효능이 있을 법하지 않나? 아니 이것도 안 바란다. 저것들이 아보카도, 딸기, 쌀, 토마토, 산삼, 아니, 최소한으로 맛은 없어도 먹을 수는 있는 당근이나 민트 같은 거였다면, 인류 문명은 식량 문제로 고민이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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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런 식이다. 인생 좀 날로 먹고 싶은데 쉬운 게 하나 없다. 풀때기 하나 키우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듯, 살 빼는 것도 돈 버는 것도 인간관계도 모두다 내 마음대로 안된다. 뱃살은 하우스 앞 잡초처럼 날로 날로 자라고, 통장잔고 대신 학자금 대출의 이자만 티끌모아 태산으로 늘어난다. 왜 세상은 노력해야만 할까? 악법, 열역학 제2법칙의 통치 아래에서는 날로 먹는 인생, 유토피아는 우리들 사전에 없을까? 문뜩 태초의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동물들 이름이나 지어주고 과일이나 따먹던 그때가 부럽다.
에라 모르겠다. 건물주나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