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난 봉사하러 온 것이었다.

19년 04월 21일

by Sankim




으아아악. 젠장.

세상에 왜 아침이 있는 걸까.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절로 욕이 나온다. 아침잠이 유독 많은 나는 아침이 언제나 고역이다. 그리곤 매번 어제 늦게 잔 나를 탓한다. "일찍 좀 잘걸!". 그런데 웃긴 건 일찍 잣다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란 거다. 참 이상한 노릇이다.


그래서 못 일어나는 이 몸뚱이 때문에 아침에 알람을 10개 넘게, 1분 간격으로 울리게 해 놨다. 그것도 악마 같은 "띵띵 띵 굿모닝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를 제일 큰 소리로. 그래서 룸메이트들과 매번 사이가 좋지 않았나 보다. 근데 잠자고 있는 나는 귀머거리인지 독한 놈인지, 알람을 하나도 못 듣는다. 맨 마지막 꺼나 겨우 들어서 깨면 다행이다.


게다가 누군가가 날 깨우려고 하면 욕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한다더라. 그래서 자고 있을 때 나는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름도 지어줬다. 토마스로. 하여간 자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아닌 거다. 알람을 그리 맞추어 놓아도 겨우 새벽 6시 10분, 더 자면 끝장나는 그 한계시간 끝의 끝까지 기여코 자다가 일어난다. 아무리 해도 이 빌어먹을 새벽 기상은 적응되지 않는다.




콜롬비아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많은 나라를 다녀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부지런히 일찍 일어나는 동네는 여기가 처음이다. 6시 반에 겨우 눈 뜨고 얼굴에 물 좀 묻히고 식당에 가서 널브러져 있으면 이 홈스테이 집 애기들은 이미 싹 씻고 옷도 갈아입고 밥 먹고 있다. 머리도 근사하게 올백으로 넘긴 채로. 그래서 아침 식사는 늘 혼란스럽다. 한 명은 거지꼴인데 한 명은 상견례라도 온 것 같다. (혼란하다. 혼란해!)


7시쯤 집 밖을 나서면 이미 거리는 대낮이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게 일상이라니 어떻게 이렇게 부지런할 수 있는지 경이롭다. 난 완전 잘못 와버렸다. 심지어 이제 부까라망가에서 일하게 될 직장은 6시 반 출근이란다. 큰일 낫다. 깨어있는 내가 자고 있는 토마스를 깨우려면 새로운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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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에 오면 역시 그래피티 투어다. 진짜 멋을 아는건 이런 예술이 일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소변 금지나 가위 모양만 그려져 있는 한국의 벽들은 반성해야한다.


콜롬비아는 부지런 하기도 정말 부지런 하지만, 콜롬비아는 진짜 "멋"이 뭔지도 아는 나라이다.

먼저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기타 치는 거 정도는 물론이고 바이올린, 트럼펫이나 첼로 연주도 봤다. 제일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은 테너와 소프라노가 길거리에서 공연하던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변변찮은 오디오 속 노래에 맞춰서 부르지만 진심이 섞인 그 성악은 더 이상 길바닥의 것이 아니었다.


예술은 이곳의 삶이다. 볼만한 미술도 참 많다. 세계적으로 뚱땡이를 제일 잘 그리기로 유명한 페르난도 보떼로Fernando botero가 바로 이 곳 콜롬비아 사람이다. 이 뿐 아니라 일상 속에 그림이 녹아있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앉아있는 홈스테이 거실에서 당장 보이는 그림만 해도 4장이다. 그리고 남미 영화하면 콜롬비아 영화. 남미 춤으로 유명한 살사로 유명한 곳도 콜롬비아다. 예술의 나라라 해도 부족함 없는 곳이다.




이렇게 예술 예술한 거는 콜롬비아에 예술 같은 것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도둑질'이다. 크. 도둑질은 유럽 코쟁이 도둑놈들이 세계 제일인 줄 알았는데 콜롬비아 도둑놈들은 더하다.


먼저 유럽 코쟁이 도둑놈들은 딱 봐도 도둑놈처럼 생겼을 경우가 많았다. 히피들 길에서 자는 사람들 딱 봐도 위험한 사람처럼 보이는 놈들이 도둑놈이었다. 보자마자 "저 놈은 위험하다"는 냄새가 진하게 난다. 그런데 콜롬비아 도둑놈들은 다르다. 양복 입고 도둑질하는 놈들, 수상해 보이는 게 없는 선량해 보이는 놈들이 도둑질한다. 그리고 어찌나 바람같이 움직이는지 살짝 정신만 팔리면 다 털린다.


그리고 가끔 도구도 이용한다. 칼을 들이대거나 총을 어디서 구했는지 쓱 보여주며 목숨 값으로 목숨보다 소중한 핸드폰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 현지인들도 부지기수로 당한다.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특별히 당하는 게 아니었다. 까르미냐 선생님도 최근에 가방을 도난당한 적이 있고,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 사무소 직원도 경찰 사칭한 도둑놈한테 당했다.


그래서 '도둑을 조심하라'는 제스처도 있다. 손 끝으로 볼을 긁는 제스처인데 너 주변에 너를 노리는 도둑놈이 있다는 신호이다. 이제 가려워서 볼 긁는 사람만 봐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No dar papaya"라는 속담도 있다. 이 말의 본 뜻은 '파파야를 주지 말라.'는 말인데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거나, 카페나 식당에서 테이블 위에 핸드폰이나 지갑을 두는 등, 도둑질할 여지를 주지 말라는 말이다.


진짜 도둑놈 천지 빼까리다. 한국에서 자리에 노트북 두고 화장실 가던 짓 같은 건 여기서는 Dar papaya다.(사실 파파야 수준이 아니다. Dar computadora다.) 나도 그래서 결국 털렸다. 스페인어 교과서를 털어 먹혔는데. 아마 나보다도 더 스페인어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 콜롬비아에 있었나 보다. (그 책은 왕초보 A1 수준이었다.) 공짜로 받은 싸구려 볼펜도 없어졌다. 아마 Papaya가 어떤 크기인들, 완전 싸구려인들, 필요가 있든 없든 훔쳐가나 보다. 어쩌면 훔쳐가는 게 콜롬비아에서 하나의 문화, 스포츠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격하게 들 때가 있다. 나는 여기 나름(?) 여행 나왔지만 격하게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1년간 코이카 단원은 국외로 떠날 수가 없다는 조항이 있어서 떠날 수 없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 가까운 가족의 사망, 결혼 등등으로 한국 가는 것 아니라면 안된다. (나의 경우,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다시 재혼하시면 그 사정이 2배로 들어간다. 이런 소리를 하는 거 보면 역시 난 안될 놈이다.)


그래서 계속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고 스카이스캐너로 비행기도 알아본다. 가고 싶은 곳들은 벌써 구글 지도에 초록색 깃발로 꽂혀있다. 벌써 남미에만 스무 군데가 넘는다. 이런 소릴 하다가 결국 현지 코디네이터님이 계신 자리에서도 이런 소리를 해버렸다. "내가 여기온 이후의 8할이 여행"이라고. 웃으면서 넘어가셨지만 이번에 단원 한 명을 잘못 뽑았네 여기셨을게 분명하다. 봉사단원이라면서 놀 궁리만 하니까 말이다.


그렇다. 가끔 그런 말 하고 웃는다. 내가 봉사 활동하러 왔다고? 여기 콜롬비아에? 참 웃기다. 아직 파견되지 않았지만 황제 봉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만큼 잘 지내고 행복하고 풍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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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에 오면 역시 몬세라떼다. 이쁜 야경과 달달해서 홀짝이다 사람 죽게 만드는 뱅쇼와 어딘가 모르게 무서운 코카잎으로 만든 차가 있다.




일말의 양심은 듯 그래도 내가 하는 봉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대학 졸업 갓 하고 온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일단은 나에게 주어진 직책은 선생님이다. 기계 선생님. 해달라고 하는 수업은 여럿 있는데 학교를 둘러보니 수업할 여건이 전혀 안된다. 50년 된 기계가 그나마 새 기계인 이곳은 사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 기계들을 돌리는 것은 100살 된 할아버지를 현역으로 막일을 시키는 것일 것이다. 관리가 잘 된 것도 아니라서 언제 깨꼬닥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 기계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경지를 원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코이카 단원은 코이카 지원을 통해서 최대 35000달러까지 현장 사업이 가능하다. 컴퓨터실을 짓거나 기관에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주거나 도서관 같은 거나 혹은 그 밖에 이 사람들을 돕는 것들. 아마 나의 첫 봉사활동의 시작은 이 현장 사업에 있지 않나 싶다. 현장 사업은 다들 기피하기로 악명 높다. 나름 코이카도 국가의 녹을 먹고사는 공기업이라서 문서처리 돈 처리가 아주 까다롭다. 돈 10원도 허투루 쓰나 안 쓰나 하나하나 감시 관리하는 무섭고 집요한 곳이다.


아무튼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할 예정이다. 그래서 이때까지 공부만 하고 배부르게 먹이고 쉬게 해주었나 보다. 아마 난 죽었다. 다만 그런 큰돈을 막 쓰기는 미안하니까 철저히 조사하고 수요를 맞춰서 진행할 거다. 꽤나 힘들지만 재밌는 일이 되리라 믿는다.




이제 진짜 봉사를 앞둔 지금, 나에게 '봉사가 뭘까?' 묻는다. 내가 생각하는 봉사란 '빈곤의 감소'다. 내가 하는 이러한 일들이 직접적인 빈곤 감소에는 기여하지 못하겠지만 이러한 교육들을 통해서 각자의 생산성이 늘어나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내게 주어진 일은 생산성을 증가시켜주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또 하나 더 있다. 놀고먹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바로 인간 중심 디자인을 해보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학사 나부랭이 때 졸업 논문 쓴다고 별짓 다했다. 양로원 쫓아다니고 안 읽던 책도 읽었다. 그때 했던 것이 인간 중심 디자인, 디자인 싱킹이었다. 사람이 중심이 된 디자인, 사람을 돕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일이 진짜 필요한 여기서 한번 해보고 싶다. 그래서 부까라망가를 조금이나마 혁신시킬 일을 해보고 싶다. (이렇게 큰 포부를 모두 보는 이런 곳에 써 적어놔야 지 나중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하는 척이라도 한다.)


다행이게도 일하게 될 기관 옆에 꽤나 이름난 대학교가 있다. 동아리 CCC 하면서 배운 거라곤 모르는 사람한테 은근슬쩍 말 걸기인데 이번에 크게 써먹게 생겼다. 대학교 가서 무작정 친구들 사귈 예정이다. 그리고 나중에 쓱 물어볼 거다 나의 동료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이제 다음 주면 부까라망가로 간다. 그새 두 달이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그 두 달을 돌아보니 즐거움의 연속이었고 새로움이 당연함으로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당연함을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도록 적응되지 않도록. 당연한 건 재미없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뻔한 건 재미없다.'는 말이다. 바둑을 수백 판을 해도 같은 게임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 매 판이 다르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거기서 오는 '알 수 없음'에서 재미가 온다고 생각한다. 인생도 같은 맥락이다. 내일 뭐할지 다 알면 재미없다. 적응되어버리면 재미없다. 맛있다고 극찬하는 보고타 HYPERMAR초밥집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 한우 투쁠도 매일 먹으면 김치찌개가 땡긴다. 매일 다른 하루를 살고 싶다. 매일 도전하며 살고 싶다. 매일 새로운 아침 알람처럼 살고 싶다. 물론 그 짜증 나는 거는 홀딱 빼버리고.


부까라망가 지방의 특산품, 식용 개미다. 징그러우니 작은 사진으로 올렸다. 하나 먹고 부까라망가가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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