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은 소소하고 시시하고 값비싸면서도 무료다.

19년 04월 14일

by Sankim




오늘은 콜롬비아의 큰 휴일.

이곳 콜롬비아는 유서 깊은 가톨릭 국가이다. 그래서 부활절 일주일 전. 고난주간, 이 동네 말로는 Santa semana라고 해서 휴일에 들어간다. 휴일을 맞아 사람들이 고향 혹은 근교에 놀러 갔는지 보고타는 텅텅 비었다. 어찌나 사람이 없는지 매일 붐비는 이 대로도 오늘만큼은 한산하다.


삼겹살을 튀긴 길거리 음식인, 치차론을 파는 아저씨도 과일컵 파는 아주머니도 전자상가 앞에서 불법 프로그램을 파는 아저씨들도 없다. 닫힌 가게들 사이에 몇몇 가게만 문뜩 불이 켜져 있다. 한산한 길거리 구석에는 콜롬비아식 배민커넥트, Rappi 하는 사람들, 택시기사님들만 띤또 한잔과 함께 쉬고 있다. (콜롬비아는 커피를 띤또라고 부른다. 다른 나라에서는 띤또는 와인이다. 함부로 콜롬비아 밖에서 띤또 한잔 하자고 하면 안 된다. 낮부터 술 찾는 주정뱅이로 찍히기 때문이다.)


설, 추석 때 서울에 있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언제나 사람 반 건물 반(거기에 개똥 조금)인 보고타 만 보다가 사람 구경이 힘들어진 지금이 참 낯설다. 다들 놀고먹고 쉬고 있고 나만 여기 남겨져 공부 중이구나. 배 아프다. 다음다음 주에 기관으로 파견되는데 하필 그전에 이런 빅 휴일이라니. 정말 애통하다.


KakaoTalk_20190813_202819786_01.jpg Santa marta라서 밖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파 같은 걸 들고 다니길래 요즘 새로운 유행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부활절에 쓰일 종려나무 잎을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 일은 이렇게 섣부르게 시작했으면 안 됬었다. 근사하게 넘긴 머리와는 대조적인 꼬깃꼬깃한 오렌지색 팬츠. 거기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머리가 길어서 거슬리던 차에 길가다 충동적으로 머리를 잘라 버렸다. 자르기 전 한국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잘라달라고 어설픈 스페인어로 분명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감의 찬 "Okay"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자리에 앉았고 처음 보는 난해한 기구들이 거울 뒤에서 요술처럼 나왔다.(분명 거울 뒤는 벽이었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저건 면도기다. 그런데, 면도기에 안전 커버가 없어서 날이 바깥으로 보인다. 아니다, 어쩌면 면도기라고 부른건 섵부른 나의 기대일지 모르겠다. 실은 중세 고문기구일 수도 있겠다.


이발기로 쓰는 면도기(혹은 고문기구)가 왕왕 떨린다. 아니 내가 두려움에 몸이 떨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머리카락이 잘리긴 한다. 느낌이 묘하다. 그런데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올백머리로 만들기 시작한다. 당황한 나는 그게 아니고.. 를 말하며, "앞머리 내리고..." 요로쿵저러쿵 손짓으로 간절하게 설명했다.


왠지 미용사의 표정이 어색하다. 수년간 해외생활로 현지에서 체화한 비공인 7단 눈치로는 봤을 때 저 표정의 사전적 의미는 "이런 머리는 처음 해보는데 어쩌지...?"였다. 그러고 한 2분 여분 지났다. 미용사의 표정이 변했다. 정말 망쳐버린 미술 숙제를 선생님께 가지고 온 학생의 표정이었다.




어쩔 수 있나 말려주세요. 빗으로 어떻게든 볼륨이라도 넣어 보려고 용쓰며 말리는데 다 마치고 나서 난 좌절했다. 왼쪽 오른쪽이 안 맞는 건 둘째치고 앞머리가 한 올 한 올이 사춘기 고등학생의 자아를 가진 듯 제멋대로였다. 얼만지 물어봤다. 양심은 있는지 미안해하며 만 페소 달라고 한다. 난 이런 거에 화 안내는 쿨한 남성이기에 "차오(안녕)" 외마디와 함께 나왔다.


마음속 어딘가 구멍이 뚫린 느낌이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내 마음이 도미노처럼 우수수 붕괴된다. 그날 저녁은 무조건 맛있는 거 먹어야지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중에 의외로 동료 선생님들께 제일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게 더 슬펐다.)


KakaoTalk_20190813_202819786_01.jpg 초밥은 옳음, 진리와 같은 뜻이다. 배를 탄 초밥은 그 너머의 참된 진리이다. 사랑이다.




나는 새로울걸 배울때, 언제나 비슷한 사이클이 있다.(미안하지만 또페인어 이야기다.)


크게 4가지로 구분되는 이 사이클은 처음은 하나도 모르겠는 상태. 그 다음은 알아가는 게 하나하나 생기는 상태지만 까마득히 어려운 상태. 세 번째는 너무 어러워서 벽에 부딪히고 내 존재가 미생물처럼 느껴지는 상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벽을 넘어서서 이제 쫌 겸손히 안다고 말하는 단계. 아직 그 이상으로 잘해본 적이 없어서 그다음 단계는 모르겠다.


아마 하나 깊숙이 파는 성격이 못 되는 나라서 그 다음 단계는 내 일평생 이루지 못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내 스페인어는 이제 쪼금씩 하나하나 보이는 단계다. 이게 참 재밌다. 광고 속 문구가 하나 하니 보인다. 이게 맛있다는 거구나. 이거는 2+2이구나. 또 나보고 중국인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요즘 5살 6살 아이처럼 말하는걸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우버를 탈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웃으면서 공부하러 왔고 곧 학교 선생님이 된다라고. 이제 거지들이 뭐라 말하면서 오면 그것도 꽤 들린다. 그리고 이제 더 능숙하게 스페인어 못하는 외국인 연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배움의 재미가 솔솔하다.




그래도 영화까지는 무리였다. 선생님들과 함께 간 첫 콜롬비아 영화관. 둠보라고 하는 큰 귀로 날라다니는 코끼리가 나오는 영화 보러 갔다. 둠보라는 코끼리가 있다는건 알았지만 무슨 스토리를 가진 코끼리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알아볼까 했는데, 스페인어의 장벽으로 여전히 그 내용은 수수께끼로 남겨져 있다.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는 건 스팀펑크 형식으로 잘 꾸며진 놀이동산 (알고 보니 감독이 그 유명한 팀 버튼이었다.)과 코끼리 고작 두 마리 살리려고 수많은 소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악당과 코끼리간의 큰 소동으로인해 그 큰 놀이동산이 통째로 불타서 없어졌다.


어린이들이 보는 영화라서 그런지 주인공 코끼리들은 행복해야 한다던가, 그 나름의 정의를 보여줬지만 난 못되어먹은 어른인가 괜히 불편했다. 많은 무고한 사람이 코끼리가 벌린 소동에 죽는다던가, 법 따위는 그냥 무시해 버린다던가 하는 것들 때문이었다. 코끼리의 엄마 찾아준다고해도 과연 저래도 될까. 마냥 즐거운 동화 속에서 이런 어른 같은 고민을 하는 거 보면 난 불편할게 많아진 어른이 되었구나 느낀다. (고길동 화이팅, 톰 화이팅)


그러면서도 내 인생이 비쳐 보였다. 난 저 빌어먹을 코끼리처럼 나 하나의 행복과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많은 민폐를 끼쳤다.


먼저 가족들과 떨어졌다. 대학 졸업하고 돈 펑펑 벌어줄 줄 알았던 아들내미는 갑자기 코이카를 갈 거라며 대뜸 2년간 해외 생활한다는 내용의 부모동의서를 써달라고 했다. 2년간 터무니없는 돈을 받고 중범죄가 판을 치고 코카인도 판을 치는 중남미 콜롬비아로 가버렸다. 아직 갚지 않은 학자금 대출 2천만 원을 고스란히 남겨두고서.


감사하게도 내가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부다 내팽개치고 여기로 와있다. 여기서의 삶은 행복하지만 그것들이 전부 남의 행복을 뺏고 온 것이 아닐까. 나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게 아닐까. 특히나 부모님의 노후 따위는 다 던져버린 후레자식이 아닐까.




이런 이기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았다.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냐고. 심지어 내게 존경스럽단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과연 난 그런 사람일까?


요즘 읽는 책에서는 모든 선택의 이유는 '비용 편익의 원리'에 의한 거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그 순간 자신에게 제일 이득 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는 것이 유튜브를 본다던가 하는 다른 선택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읽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수는 한 손에 꼽겠지만.)


나의 코이카 선택도 같은 맥락인것 같다. 이 선택이 나의 가장 큰 가치를 반영한 것이다. 나의 가치는 "나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에 있다기보다는 "거스름돈 괜찮습니다고 할 때 웃으시는 택시기사님의 웃음"에 있기 때문이다. 혼자 배부르게 먹는데 있기 보다는, 부족해도 같이 나눠 먹는데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이에 비가 또 한바탕 쏟아지다 그쳤다. 비는 자주 오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선지 습하지 않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 유독 많은 곳이라 바닥에는 개똥이 널려있다. 길가 한쪽 구석에는 더러운 이부가지를 덥고 자고 있는 사람이 있다. 쇼핑몰에 갈래 머리를 한 아이는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 하나, 다른 손에는 엄마 손을 잡고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하늘에는 구름이 흘러간다. 벽에는 알지 못할 글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전선들은 어지럽게 전신주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신발 두어 개가 높은 전깃줄에 걸려있다. 전신주 위 비둘기들은 홀딱 젖은 몸을 털어낸다. 한쪽 그늘에는 Rappi라고 적힌 큰 주황색 가방을 멘 사람들의 하얀 눈동자만 보인다. 그 노고와 한숨만 보인다.


나의 존재가 보잘것 없지만, 그래도 조그마한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KakaoTalk_20190813_202819786_04.jpg 전신주에 걸린 신발의 의미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마약을 판매한다는 은어이고 나머지 하나는 누군가 집까지 맨발로 걸어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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