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서 나는 첫 냄새가
편안했으면 좋겠다.

19년 04월 29일

by Sankim




후덥지근하다.

비행기에 내리자 말자 뜨겁고 습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마다 그 동네의 공기를 처음 느끼게 되는데 나라마다 참 독특한 냄새가 난다.


중국은 중국의 그 특유한 신발장 콤콤한 냄새가 나고 한국은 마늘 냄새가 난다고 들었다. 카자흐스탄이랑 몽골은 말똥 냄새가 나고 동남아는 후덥지근한 습기가 먼저 반긴다. 의외로 프랑스 파리는 그리 좋은 냄새가 아닌 꾸리 한 냄새가 났던 던 걸로 기억난다.


좋았던 곳은 일본. 설명하기 힘든 익숙한 냄새인데 그 냄새 덕에 편한 마음으로 여행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냄새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맡았다. 오래 씻지 않은 찌린내로 그 냄새가 상파울루의 첫 느낌으로 강렬하게 남았다.


그러고 보면 그 낯선 냄새에서 오는 첫 느낌이 어김없이 그 도시의 느낌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상파울루에서 좋은 인상이라곤 하나도 없다. 상파울루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길거리에서 불시 마약 검사를 하는 수많은 경찰들의 커다란 곤봉과 으슥한 곳에서 나오는 헐벗은 누나들의 유혹의 손짓, 치노라고 날 부르던 신경질적인 노숙자들의 목소리만 떠오른다.


끔찍했다. 이 곳 부까라망가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첫인상은 동남아랑 닮아 있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느긋느긋 한 일상. 10월 말이면 패딩을 꺼내 입고, 게으르기로는 한국 대표라고 해도 손색없는 나한테 이곳만큼 맞는 곳이 잘 없다는 생각이 든다.


KakaoTalk_20190818_212404015_02.jpg 새로 계약한 우리 집의 창문 너머 풍경. 너무 마음에든 나머지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해버렸다. 그리고 잘못 계약을 해버린 바람에 코이카 현지 변호사께서 고생 좀 하셨다.




보고타에서 비행기 타고 한 시간 북쪽으로 날아오면 부까라망가가 있다. 보고타가 워낙 높아서 여기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의 대부분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다. 그래도 적도랑 좀 가까워졌다고 꽤나 더워졌다.


지금 여기는 우기. 비가 꽤 온다고 하던데 아직 내가 온 지 3일째지만 비 다운 비가 온 적이 없다. 그래도 습한 거는 비랑 관계가 없는지 여기는 폐보다는 아가미가 더 호흡하기 적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건조할까 봐 한국에서 모이스처 선크림을 사 왔는데 그 덕분에 선크림을 바르면 얼굴에 기름기가 뚝뚝 흘러서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


그래도 밤에는 사정이 좀 나아져서 금방 시원해진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본 적 있다. 사람의 몸이란 아주 성가셔서 좋은 날씨에 잘 자는 게 아니라 더운 날씨에 에어컨 틀 때, 혹은 추운 날씨에 전기장판 안에 있을 때 잘 잔다고 하더라. 그런 면에서 잘 때 선풍기만 딱 틀면 더운데 선선한 바람이 드는, 잠만큼은 정말 꿀 잠잘 수 있는 환경이다.




첫 기관 출근날도 밝았다. 역시나 나에 대한 기대는 이미 성층권을 아득히 뚫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OJT 기간으로 잠시 부카라망가 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 OJT 첫날에 부까라망가에 있는 모든 교장선생님들과 교육부서 국장이라고 하는 사람과 인사하는 것으로 부까라망가 일정을 시작했었다.


그다음 날에는 다른 국장인 ICT국장인가 하는 하여간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미소만큼은 끝내주게 잘 짓는 사람과 한국에서도 본 적 없는 기자와 함께 인터뷰를 했었다. 그리고 골동품으로써나 가치 있을 법한 다 부수어져 가는 기계 앞에서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사진이라던가, 처음 보는 다마소 사파타 학생들과 함께 오랜 사나이의 우정을 나눈 거 마냥 웃으면서 대화하는 사진 등 두산동아 전과에서나 나올 콘셉트 사진들을 찍었었다. 그 사진들은 다행히 기사에 올라오지 않았지만 대신 줌샌 킴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기사에 한 줄 적혔다.


그리고 부까라망가로 이사 온 뒤, 첫 출근날. 새로 보는 또 다른 국장과 인사하고 부카라망가 교육계의 주요 인사들이 함께하는 회의에서 나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하면 현행법상으로 사기죄에 해당할 정도로만 할 줄 알기 때문에 완전히 형편없는 소개를 해버렸다.


그래도 다행이게도 첫 출근만큼은 깔끔한 양복을 입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단원복을 입고 갔기에 한국인은 스페인어를 엉터리로 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옷은 말끔하게 입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기관과 집 사이 거리가 애매하게 가까워서 걸어갔다. 더운 날씨와 깔끔한 양복, 적당한 걸음, 그리고 엄청난 긴장으로 땀샘에서 수맥이 터졌다. 그래서 덕분에 "오늘 참 덥죠?"라는 인사로 나에게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껀덕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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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역신문에 난 기사. 난 그렇게 줌샌킴(Jumsen Kim)씨가 되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린 그 날. 댄스 발표회에도 초대를 받았다. 나랑 같이 부까라망가로 오신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은 미술 교육으로 오셨는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청 산하의 미술 학교로 파견 오셨다. 이번에 댄스 발표회로 초대를 받아서 처음으로 이 기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부까라망가 구시가지, 시청 근처에 있는 이 미술 학교는 옛날 시청 건물이었던걸 유지보수를 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서 봤을 때부터 "고져스gorgeous"한 그 건물은 콜롬비아식 파르테논 신전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학교랑 확연히 비교되었다.


우리 학교는 입구부터 꼭 군부대처럼 생겼다. 난폭한 성장기 어린이를 막기에 적합한 육중한 쇠문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런 문은 어딜 가나 비슷한지, 허락 없이는 문도 안 열어준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들어오면 훈련소에 입소하듯 세상과 단절되는듯한 느낌도 든다. 게다가 들어가면 허락 없이는 못 나오기 때문에 예전 OJT때는 한번 학교에 들어가면 오후 7시나 학교 밖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131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학교지만, 파르테논 신전처럼 나이를 멋있게 먹은 건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낡은 건물들이다. 어떤 건물은 입구가 X자로 봉해져 있길래 교장선생님께 물었다. 저 건물은 왜 사용을 안 하느냐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 학기에 갑자기 지붕이 내려앉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밤에 일어난 일이라서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여긴 그런 건물들이다. 그런 학교다.


하여간 다시 댄스 발표회로 돌아오자면, 그 고풍스러운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진짜 그리스 시대의 댄스를 연구하는 것인지 혹은 22세기 미래 댄스를 연구하는지는 몰라도 하나의 난해한 몸짓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하지만 그 눈빛들 하나하나에 서려있는 진지함은 프로 춤꾼들 같아서 숨죽여 지켜보게 되었다.


이런 예술의 열기로 가득한 기관에서 근무하게 될 미술 선생님이 정말 부러워졌다. 나는 우리 학교 기계 수업을 몇 번 견학했는데 20명 남짓 학생 중 7~8명 정도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는 푹 내리고 눈은 추켜올려보면서 "저 선생 뭐라고 씨부리나" 쳐다봐 주는 짜릿함이 있었다. 아마 이 미술 선생님은 이 짜릿함을 콜롬비아 생활 내내 경험하지는 못할 거다.




두 달간의 '보고타' 구운몽이 끝나고 각자 임지로 파견 나왔다. 이제 내 이름으로 계약한 집도 생겼다. 방도 그럴싸하게 꾸몄다. 이제 내가 아니면 쓰레기통을 비워주는 사람도 없고 설거지를 해주는 사람도 없다. 선크림 지우고 자라고 잔소리해주는 사람도 없고,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사람도 없다. 집에서 퇴근할 때 켜있는 형광등이 없다.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휴지 좀 달라고 부를 사람도 없다. 아마 반경 100km 안에서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 꼽힐 거다. 이제 고독의 시작이다.


예전에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 "존재의 근간은 고독. 고독하기에 고로 존재한다"라고. 그러나 한국에서는 고독이란 실패한 사람의 특징이다. 한국에선 고독을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카톡에 얼마나 자주 카톡이 오는지가 중요하고 주소록에 얼마나 많은 번호가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서 피할 수 없는 고독으로부터 도망쳤었다. 그렇지만 이제 한국 속세에서 떠났다. 고독을 애써 못 본 채 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걸 안다. 이제 누구도 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직시할 때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새벽 3시가 있으니까."


이제 혼자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제 2년간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남에게 외롭다고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고독을 인정하는 시간. 그렇게 산다면 나에게 나는 그 첫 냄새가 좀 편안하고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 되어 가겠지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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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생겨서 드디어 설 선물을 받았다. 4월에 받는 설 선물은 무심코 먹은 빵에 들어있는 예기치 못한 커스터드 크림처럼 반가웠고 맛있었고 칼로리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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