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여긴 어디지

19년 3월 2일

by Sankim


HOLA 이곳은 콜롬비아 보고타다 오바.

여기는 무려 해발 2640m. 그래서 나는 한국 땅 그 어디에 있는 사람보다도 높이 있다. (심지어 백두산 천지보다도, 롯데 제2월드 옥탑방보다도) 나는 애석하게도 키가 작게 태어나서 높은 공기를 마셔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해발 2640m의 공기를 마시니 가슴도 머리도 찡하다. 고산증이다. 코이카 국내 교육에서부터 고산증 경험자로써 다른 단원들한테 겁을 엄청 줬는데 이게 웬걸 나만 고산증이 심하다. 키 작게 태어난 탓일 거라고 투덜거리지만 아마 설레발친 탓도 있으리라.


관용여권의 붉은 자태도 나의 코이카행에 한몫했다. 근데 내가 빨간 여권을 가지고 다니니 나에게 중국어로 말을 건다. 이상한 노릇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와있다. 작년 바람이 매섭던 가을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코이카 신청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정신없는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났더니 콜롬비아에 도착해 있다. 코이카 지원서를 쓰며 있던 말, 없던 말, 순 뻥들만 늘어놓던 시간과 면접을 보면서 너무 긴장한 탓에 앞에 놓여있던 물을 벌컥벌컥 원샷했던 유난히 덥던 가을날, 코이카 합격소식을 듣고 내 인생 마지막 기말고사를 통째로 말아먹은 종강 날 그리고 사회에서 못 받아줄 나 같은 사람 40여 명과 함께 했던 영월에서의 국내 교육시간까지도 모두 꿈만 같다.


그런 하나하나의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서 커피랑 마약왕 빼고는 아는 것도 없는 콜롬비아에 나는 2년을 살려고 건너왔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본 인상적인 영상이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이랑이 한국 대중음악상 포크 부분 상을 받는 영상이었다. 상을 받기 전 날, 가수 이랑은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돈, 명예, 재미 이 3가지 중 2가지 이상이 충족되지 않으면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수상 자리는 명예는 있지만 상금이 없고 지겹고 따분했기 때문에 명예 딱 하나밖에 충족이 안된다며 불평했다.


그래서 돈이라도 충족시키고 싶다며 모던한 디자인의 한국 대중음악상 트로피를 그 자리에서 경매로 붙여 팔아버렸다. 덕분에 이랑은 명예에 이어 돈도 얻었고, 시청자들은 재미를 얻었다. 이랑은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하튼 이 기준에 빗대어 보면 나의 코이카의 삶은 현명한 선택일까? 일단 세 개 중에 하나는 벌써 버렸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터무니없는 돈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빨간색 관용여권을 쓰니 어느 정도 명예는 얻은 건가 싶다. 마지막으로 재미. 아직까진 재밌다. 콜롬비아 온 지 딱 4일 지났지만.




요기는 컬럼비아가 아니라 콜롬비아다. 컬럼비아는 참고로 미국의 도시, 그리고 아웃도어 회사 이름이다.


보고타까지 오는 하늘 길은 다들 예상하겠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우리 집 현관을 딱 나서서 보고타 한 호텔의 입구에 발을 디딜 때까지 무려 40시간이 넘게 걸렸다. 집에서 택시를 타고 노포동 버스터미널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보고타까지. 지구를 반 바퀴 돈, 까마득히 먼 길이었다.


40시간이면 해리포터 전 작품을 다 보고 반지의 제왕을 다 봐도 남는 시간이다. 방금 내가 다 계산해봤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앉아있거나, 미국 입국 심사로 잔뜩 쫄아있거나, 닭장 같은 비행기 칸 안에서 밥 주기만 기다린다던가, 하는 건 인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특히나 그 중간에 미국이 행선지에 있다면 그 여행의 시작은 소위 잡쳐버린다. 미국 입국 심사를 하는 사람들은 일단 모든 유색인종들을 '불법체류자'이거나 혹은 '곧 불법체류자가 될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게 시비다. 나는 미국은 1도 관심도 없고 그냥 불행히도 보고타 갈려고 여기 환승하려고 들렸는데 말이다.


심지어 빨간 관용 여권에 'OFFICAL'라고 적혀있어서 공적인 임무로 가는 것까지 알 텐데 의심의 눈초리로 물어본다. "비행기 탈 돈은 어디서 났냐? 미국은 무슨 이유로 왔냐? 여자친구랑 헤어진지 얼마나 되었냐? 오팬무?" 등등 별걸 다 궁금해한다. 조금만 이상하게 말하면 당장 너를 흰색 조그만 방에 집어넣어서 환승은커녕 평생 폐쇄공포증으로 다시는 비행기를 못 타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눈초리이다.


이런 집요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세상 피곤한 일이다. 심지어 비행기를 10시간 타고나서 그런 일을 당하는 건 반 인륜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억겁의 시간 동안 온갖 심리적 육체적, 심지어는 미각적(?) 괴롭힘을 당한 뒤에 보고타 공항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해코지를 당한 이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 기내식은 경이로울 정도로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예상 도착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왔다는 거다. 자는 사이에 비행기가 과속이라도 했나 보다. 덕분에 닭장에서 고통받는 시간이 한 시간 줄었다. 보고타 공항에서의 첫 공기는 신선했다. 피곤함과 내 몸뚱이만 한 짐들에서 오는 짜증들이 조금이나마 씻겨나가는 시원함이었다. 아마 감옥에서 출소해서 두부를 먹는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그 이후 한국을 떠나온 지 벌써 4일 차. 이제 3월의 한국이 많이 춥나 덥나도 모르겠다. 시간만 겨우 기억한다. 지금 콜롬비아 시간에 더하기 2시간 그리고 오전 오후 바꾸기. 지금이 7시 46분이니, 아마 저쪽 동쪽 동네는 9시 46분 밤이겠군. 추운 3월의 한국에 비해서 보고타의 날씨는 딱 좋다. 셔츠 하나 걸치면 선선한 게 딱 가을날 같다. 지금 우기라 곧잘 비도 오고 가끔 우박도 온다고 한다. 덕분에 보고타의 치명적인 단점인 매연도 다 쓸려 내려간다. 참 잘 왔다.


여기서 4일간 한 일들을 말하라고 하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차 적응과의 싸움이다. 이 녀석을 쉽게 이기려면 하루 굶으면 된다고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들었다. 근데 그럴 거면 애초에 왜 사는 거지? 시차 적응을 안 하고 말지 굶을 순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시차를 아직 적응 못해, 뜻하지 않게 초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이제 오후 6시면 졸리고 새벽 3시면 눈이 떠진다. 공부라곤, 글쓰기라곤 하나 없이 누워서 유튜브나 보는 게으른 삶을 살고 있지만 일찍 일어나니 그 느낌만큼은 부지런해진 것 같다. 이래서 다들 새벽형 인간, 새벽형 인간 하는가 보다.


콜롬비아 사람들의 하루 시작은 참 빠르다. 홈스테이 마마의 10살짜리 아들 훌리안 Julian은 아침 6시에 등교한다. 7시에 길을 나서면 이미 대낮이다. 버스정류장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대신 오후 8시만 되어도 동네는 잠든다. 단 하나, 붉은 가로등만이 껌뻑 켜져 있다. 그리고 동네는 위험하다는 걸 광고하듯 무서운 그리고 무거운 쇠창살이 창문마다 박혀서 닫혀있다. 그런 집들이 나란히 빽빽이 서있다. 오후 8시에 붉은 건물들 사이 송곳니처럼 드러난 쇠창살을 보니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보고타에 있구나 싶다.


둘이 왔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것 같은 보고타의 흔한 동네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은 보고타 어떤 마마mama의 집이다. 현지 문화도 익히고 현지인이랑 스페인어로 대화를 좀 해봐라는 요량으로 모든 코이카 콜롬비아 단원들은 홈스테이로 생활시킨 탓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 마마는 내가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아들이라 불러주며 이것저것 챙겨 주시는 살가운 아줌마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근데 코이카 단원이 여기서 한두 번 묵은 게 아닌 듯, 집안 곳곳에 KOICA라는 스티커와 한국 장식품들이 눈에 띄게 붙어있다. 홈스테이 설명도 이미 몇 번은 해본 것인 듯 능숙하게 그리고 사무적으로 설명해주신다. 마치 로봇, 게임 속 NPC 같달까. 본지 나흘 된 나에게 "사랑하는 아들"라고 거스름 없이 말하지만, 내 느낌상 나보다 더 KOICA를 사랑하는 것 같다. 특히 그 사랑의 크기가 돈에 비례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내가 정말 힘들어하고 참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날아다니는 바퀴벌레, 한쪽이 단선된 이어폰, 젖은 양말, 그리고 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다.


나는 내가 그래도 좀 괜찮은 사람이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를테면 자존감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의 행동이나 말로 그것이 깨어질 때의 낙담은 참 크다. 나의 부족한 모습, 이를테면 흑역사라던가 사려 깊지 못해서 남에게 상처 준 언행, 아이패드를 호텔에 두고 와서 모두에게 민폐 주는 덜떨어진 행동이라던가 그런 것들 말이다. 나의 인격적인 혹은 습관적인 부분의 부족함이다. 그래도 안다는 건 나아질 여지가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세상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라는 말로 정신 승리를 해본다.


2년의 시작의 시작. 코이카 콜롬비아 현지 교육을 앞두고 있는 이 순간.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뇌와 고산증으로 아픈 몸뚱이와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해서 마음까지 무거운 이 순간. 쇠가 단단해지기 위해선 1000도씨가 넘는 뜨거운 불구덩이를 견뎌내고 또 뚜들겨 맞아야 되듯이. 이 순간들이 그런 뚜들겨 맞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더 나아질 거라며 애써 명언 나부랭이로 오늘 밤을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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