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적응하는 중이라고
적어볼까

19년 3월 9일

by Sankim




얼굴이 후끈후끈거린다.

아이패드를 호텔에 또 두고 온다던가 하는 그런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늘 종일 공원에서 논 탓이다. 선크림을 바른다고 발랐지만 SFP40 정도로는 아무런 선블럭이 안된다. 왜냐하면 보고타는 고도가 굉장히 높아서 태양 빛이 내리 박히다 못해 커다란 부리로 쪼이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트에서 파는 선크림은 SFP가 100을 그냥 넘는다.


이렇게 하나씩, 한국과는 조금은 다른 보고타에서의 삶을 나는 온몸으로 알아 가고 있다. 우리는 2월 26일 날 비행기를 타고 넘어왔었다. 이제 한 12일 지났나 보다. 어제는 처음으로 코이카 안전보고서도 썼다. 딱 그만큼이나 시간이 흘렀다.


코이카 단원들의 '현지 교육' 일상을 말하자면 하나부터 아홉까지 공부다. 그리고 열도 물론 공부다. 출국 전 영월에서 했었던 코이카 '국내 교육'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아직까지 나에게 보고타는 고도가 높고 교통 체증 많고 외국인이 많고 좀 피곤하고 한국말이 안 통하고 매연이 많은 '코이카 영월 교육원' 같다.


아직 적응 못해 힘들어하는 우리들을 위해 스페인어 선생님들은 배려해 주신다고 수업 시간을 많이 줄여 주셨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교통 체증으로 등하교만 2시간 걸린다. 나는 이제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 경기도에서 태어나면 인생의 1할을 지하철과 버스에서 보내 듯, 보고타에서 태어나면 인생의 1할은 이 빌어먹을 교통체증 속에서 보내게 될 거라고.


그만큼이나 교통 체증이 심하다. 그래서 공부하고 돌아올 때는 걸어서 돌아온다. 한 4-5km를 걷는데 늦은 오후 산책하는 기분이다. 보고타 현지 사람들은 이런 긴 거리를 걷는 나를 도통 이해를 못한다. 나는 걷는 거보다도 더 오래 걸리는 버스를 이해 못하겠지만 말이다.


보고타의 길거리는 현대 미술관 같다. 아름답고 도통 이해를 못하겠다는 점에서 현대 미술과 판박이이다.




스페인어 선생님은 두 분이다. 그래서 우리 콜롬비아 단원 8명은 두 조로 나뉘어서 수업을 각각 진행한다. 한분은 카를로스 선생님 다른 한분은 까르미냐 선생님이시다.


카를로스 선생님은 한국분과 결혼한 스페인 사람인데 아내 일로 잠깐 콜롬비아로 오셨다. 그래서 한국에서 8년을 사셨고 한국말도 꽤 잘하신다. 그걸 모른 나는 카를로스 선생님이 한국어를 잘 모를 줄 알고 첫 만남에 바로 면전에서 무례하게도 "와 콧구멍 진짜 크다. 500원짜리도 들어가겠다."라고 했다. (무례했지만 정말 말 그대로 경이로운 모습에 경탄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를 향하는 카를로스 선생님의 눈초리는 예사 눈초리가 아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콧구멍에 끼워 버린 거 같다.


그리고 까르미냐 선생님은 토종 콜롬비아 사람.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신다. 그래서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도 모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회화를 가르치는 일과 다름없는 극한 수업을 하고 계신다. 다행히 외국인 상대로 오래 스페인어를 가르쳐오신 터라 능숙하시다. 까르미냐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무조건 말로 뱉어 보는 거다. 그래서 무조건 이것저것 많이 말을 해야 한다. 순서대로 대화하는 수업을 하는데, 늘 그렇듯 남의 차례 구경은 신난다. 하지만 내가 말할 차례가 다가오면 엉덩이에 힘이 뽝 들어가면서 긴장하게 된다.


이렇게 하루 7시간을 교실이라기에 너무 조그만 유리방에 갇혀서 스페인어만 공부한다. 늘 수밖에 없다. 특히나 엉덩이에 힘을 주게 만드는 말하는 시간과 예사 눈초리가 아닌 시선과 함께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는 코이카 동기 선생님인 후안 선생님과 함께 홈스테이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 홈스테이 가족은 파파, 마마, 누나랑 말도 안 되게 정말 귀여운 10살 남동생 Julian 이렇게 4명이다. 게다가 여기는 하숙집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콜롬비아 각지에서 온 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아르헨티나에서 돈 벌러 온 친구도 있다.


그래서 매 저녁이면 거실에서는 응답하라 드라마를 찍고 있다. 다들 모여서 떠들거나 보드게임 '우노'같은걸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물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기 때문에 그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시청자처럼 보기만 한다. (물론 스페인어 드라마라서 이해도 못한다.) 이 친구들에게 고마운건 가끔 뭘 먹을 때마다 우리를 공짜로 끼워준다.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봉사 활동하러 왔기 때문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보고타에서 매끼 외식만 하고 살 기엔 코이카에서 주는 생활비는 부족하다. 그래서 자주 밥을 해 먹고 있다. 하지만 눈치 은근히 보인다. 그 집의 주방은 그 집 안주인의 성역같은 곳이다. 마음대로 사용해라고 말해주셔도 마마의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상납하는 마음으로 이 집 가족들 밥도 같이 해줬다. 닭볶음탕이랑 카레, 짜장. 몇 번 이렇게 해줬더니 돌아오는 것도 많다. 저녁도 몇 번 얻어먹고 어저께는 피자도 얻어먹었다. 이게 베푸는 삶인가 싶다. 바라지 않고 줘야 즐겁다. 뜻하지 않아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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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안이 카레를 먹으며 매워 죽겠다고 난리다. 하지만 아무리 훌리안이 귀여워도 봐줄 수 없다. 카레는 매운맛이다.




스페인어로 헤어질 때 하는 인사는 아디오스. 'Adios'라고 한다. 그 뜻의 어원은 'A Dios'. '신에게로:To god' 이라는 뜻이다. 너를 신에게로 보내니 이후 신과 함께 하길(With god)이란 뜻인 거다. 참으로 유럽스러운 인사법이다. (생각해보니 여긴 유럽이 아니구나)


헤어질 때 인사법은 아름다운 말들이 많다. 한국에서 인사하는 "안녕"이란 말도 아름답지 않은가? 이응과 니은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보니 발음도 부드럽고 이쁘지만 '별 탈없이 편안'하라는 그 뜻이 특히 이쁘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헤어질 때 "사우 볼: Сау бол"이라고 한다. 그 뜻은 "아프지 말고 건강해"로 평소에 아픈 사람에게도 사용하는 말이다. 그 뜻이 너무 이뻐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끝에서 오는 아쉬운 감정들이 이런 아름다운 말을 만들었나 보다. 한국에서 떠나온 이후 생각나는 얼굴들이 많다. 인사를 다 못하고 와서 신경 쓰인다. 다들 편안하길 별일 없길 아프지 말고 건강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너도 신을 믿지 않는 그 누군가도 신과 함께이길 ¡Adios!


KakaoTalk_20190530_103524987.jpg 구름은 낮다. 하늘은 가깝다. 한국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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