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05월 27일
오예! 오늘은 빨간 날.
콜롬비아는 놀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노는 날도 많다. 예전 한국은 세계적으로 공휴일의 수가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야 노는 것을 창의적인 활동의 원천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예전에는 노동시간과 노동생산성이 비례한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소위 윗분들은 제대로 놀 줄은 모르고 밤새 술 마시는 것이 노는 것의 전부였기 때문에 노는 게 좋아보일리가 없었겠다는 짐작이 간다. 그래서 그분들은 공휴일을 없애기에 바빴다. 찾아보니 더 예전에는 UN 국제 연합일에도 쉬고 국군의 날에도 쉬었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식목일, 제헌절에도 쉬었었는데 이제는 쉬는 날이 아니다. 그래서 환경오염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법은 어기라고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살았을 때는 쉬는 날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슬람 국가지만 불교도 힌두교도 가톨릭도 지대한 영향을 준 나라라서 모든 종교의 중요한 기념일은 다 쉬었다. 라마단이 끝나는 주도 일주일 쉬고, 힌두교 시바신을 기리는 날도 석가 탄신일에 크리스마스도 쉬었다. 거기에 중국인들 덕분에 설날도 일주일 쉬니까 두세 달에 한 번은 큰 명절이 있었다. 역시 말레이시아는 신들의 축복을 많이 받은 나라다.
콜롬비아는 이만큼 많이 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이 논다. 먼저 여기 와서 이렇게 가톨릭 기념일이 많은 줄 몰랐다. 예수님과 관련된 부활절, 크리스마스는 제일 큰 명절이고 그 외에도 마리아가 승천한 날, 베드로의 순교일, 그 외 여러 성인들의 날이 있다. 그리고 남미 자체의 명절들도 많다. 독립기념일이든 어떤 결정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날. 재미있는 점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날도 휴일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날은 남미 대륙의 재앙의 날이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노는 날이 많은 콜롬비아지만 그 외에도 예기치 못하게 노는 날들이 있다. 바로 빠로Paro 때문이다. Paro, 뜻은 '멈춤' 그리고 '파업'이라는 뜻이다.
여기 와서 벌써 대대적인 파업이 여러 차례 있었다. 빠로가 있는 날이면 코이카 사무소 직원이랑 교장선생님은 빠로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아직 빠로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소문으로 듣기에는 시위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있다기 보다는 과격한 폭력행위와 다 때려 부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폭력집단인가 보다. 오토바이와 칼 든 강도, 호환마마보다도 더 조심해야 될 것처럼 이야기하신다.
그런 빠로가 있는 날이면, 보통은 그 전날쯤 공지해주는데 이번 주는 이틀 연속으로 쉬었다. 뜻하지 않은 휴일을 받아서 너무 좋았지만 너무 쉬니 심심한 것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맛있는 휴일도 이렇게 자주 먹으니 질린다. 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 부러워하라고 하는 말이다.
이번 주에 나의 일생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있었다. 콜롬비아에서 새로운 룸메이트를 구했기 때문이다. 그 룸메이트는 바로 미니 나무 화분이다. 내 인생에 식물을 키워보는 것은 이번이 2번째였다. 처음 키운 식물은 초등학교 때 키운 방울토마토였다. 잘 키우기 위해서 뒷산에 올라가 황토 흙도 퍼올 만큼 참 순수했었다.
대신 뇌도 순수했던 어린아이여서 분갈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내 방울토마토는 백양산의 기운을 듬뿍 받아, 같은 반 아이들의 방울토마토와 비교해 남다른 성장 속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컵보다도 작은 화분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큰 뜻을 다 펼치지 못했다. 큰 키에 비해서 겨우 이파리를 3~4장만 겨우 났고 옥수수 알맹이보다 작은 토마토 두어 개만 겨우 열매 맺고 죽었다.
그 아픔 이후 처음으로 키워보는 반려식물이었다. 이름도 지어줬다. 뾰족이. 첫 만남은 대형 가구 마트에서였다. 콜롬비아 오면서부터 반려 식물 하나쯤 가지고 싶다고 입버릇으로 이야기하곤 했는데 뾰족이의 수려한 자태를 보고 푹 빠지고 말았다. 나무 같은 느낌이지만 크기는 내 손바닥보다 작다. 같이 쇼핑하러 간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무 아래 어딘가 엘리스가 책 읽고 놀고 있을 것만 같다고 하신다. (과연 미술 선생님. 탁월한 비유이다.)
오래된 고목 같으면서도 작고, 풍성하지만 그 잎들이 모두 뾰족한 그 새침한 매력이 너무 좋다. 공기를 정화시켜주고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고 내 노트북에서 나오는 모든 전자파를 먹어줄 것만 같다. 쓸모없지만 이쁜 것들이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한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뾰족이는 콜롬비아 와서 단연코 최고의 소비였다.
어저께는 처음으로 콜롬비아 파티에 초대받았다. 우리 학교 선생님을 위한 파티였는데 드레스 코드가 멕시칸 스타일이었다. 난 드레스 코드는 색깔 정도나 정해서 가는 줄 알았는데 역시 콜롬비아는 놀 줄 아는 인싸의 나라라 다르구나 싶다. (아니면 내가 아싸라서 한국에서 한 번도 그런 파티에 못 초대받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드레스 코드가 멕시칸 스타일이니까 무릇 큰 밀짚모자에 풍성한 콧수염, 판초 그리고 옆구리에 옥수수와 피스톨을 꽂아놓고 타코를 먹으며 당나귀를 타고 파티에 입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무난하게 입고 가면서 혹시나 입구 컷을 당하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파티는 8시에 시작한다더니 9시가 되어서야 사람이 반쯤 모였다. 이렇게 여기는 부지런하면 당해야 하는 곳이다. 내 인생 첫 파티라서 모든 것이 생소했다. 어떻게 파티가 돌아가는지 몰라서 처음 상경한 시골쥐처럼 눈알을 빙글빙글 굴리며 구경했다.
이곳의 파티는 8할이 춤이었다. 다들 춤바람이 났다. 어마어마하게 시끄러운 이곳 전통음악에 다들 무대로 나와서 끈적한 춤을 춘다. 내 애인 혹은 내 아내가 이런 곳에 온다면 난 심각하게 헤어지는 걸 고려해 봤을 거 같은 곳이었다. 어떻게 동료 선생님들과 저렇게 바짝 붙어서 춤을 출수 있는지... "엣 헴,,, 남미 사람들이란,,, 쯧쯧쯧,,,," 절로 유교 정신이 나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올라와서 혀를 쯧쯧 차게 만들었다.
그렇게 문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주변 아주머니 선생님들이 나를 무대로 끌고 오셨다. 최대한 나의 정조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면서도 한국인은 노잼이 아니라고 보여주기 위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춤추는 걸로 봤겠지만 나는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처절하게 몸짓을 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한국과 콜롬비아는 문화가 정말 다르다. 한국은 아무리 요즘 개방적으로 변했다 한들 콜롬비아에 발끝도 따라가기 힘들다. 파티에서 추는 그런 끈적한 춤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길거리에서 애정행각을 보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여기 사람들은 식당, 길거리, 심지어는 고등학교 벤치에서도 뽀뽀를 하고 난리도 아니다. (엣 헴,,, 요즘 애들이 말이야,,,)
여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내게 나이보다 더 많이 물어보는 게 "여자 친구 있어"라는 질문이다. 없다고 이야기하면 왜 없냐고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이상한 눈으로 본다. 어떤 선생님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까지 한다.
그리고 또 많이 물어보는 질문 하나는 콜롬비아 여자가 어떻냐는 질문이다. 한국 여자보다 이쁜지 콜롬비아 여자를 좋아하는지 등등. 그 질문의 표정에는 짓궂음이 가득하다. 딱 봐도 원하는 대답이 있지만 그냥 한국인도 콜롬비아인도 이쁘다 하면서 그냥 웃는다.
30년간 유교맨으로 살아온 나. 과연 이 땅 콜롬비아에서 어떻게 2년간 살아남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