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룩말로 살다가
굶어 죽을게요.

19년 05월 21일

by Sankim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머리를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나는 예전에는 아침형 인간은 저녁형 인간이랑 그리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나마 있는 유일한 다른 점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다소 지나치게 우쭐하다'는 것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어마어마한 체력의 차이가 있다는 걸 요즘 몸소 느끼고 있다. 오후 2시를 넘어서면 어찌나 잠이 쏟아지는지. 그때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버리면 이제 그날 밤은 완전히 조져버리는 거다. 잠깐 낮잠 잔걸 몸은 밤새 푹 자버린 걸로 생각하는지 도통 잠이 안 온다. 그렇게 벌써 세네 번 된통 당했다. 그렇게 된통 당한 날은 12시 넘어서까지 잠 못 이룬다. 그리고 내일 5시 반까지 몇 시간 잘 수 있는가만 반복해서 계산하다가 겨우 잠에 든다. 그러고 그다음 날 아침에는 "차라리 세상이 멸망하는 편이 좋겠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KakaoTalk_20190902_200013435.jpg 모카포트는 커피 간지의 끝이다. 더러운 가스레인지는 보지말아 주세요.


그래서 요즘 커피는 나의 생명수다. 잠이 와도 필사적으로 깨기 위해 카페인을 들이켠다. 그래도 이 동네는 커피가 싸서 참 다행이다. 허름한 카페테리아를 가면 한국 돈 1000원도 안 하는 커피가 있고 꽤 근사한 가게를 가도 2000원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얼죽아들에게는 딱한 소식이게도 아이스커피는 잘 없다. 프랜차이즈나 가면 겨우 있는데 여기서는 아이스커피는 USA 커알못 코쟁이들이나 먹는 커피라는 인식이 있어서 인기가 없다. 아무튼 쉽게 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콜롬비아에 있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재밌는 사실 하나. 내 주변 콜롬비아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나 커피가 자라는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커피가 안 자라는 나라라서 전량 수입해서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니 딱한 눈으로 쳐다본다. 여기서는 거들떠도 안보는 삼겹살이 한국에서 100g에 1500원이 넘고 여기선 100g에 500원도 안 하는 소고기가 한국에서는 100g에 2~3000원이 넘는다는 사실까지 알려준다면 그 딱한 동정의 큰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까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콜롬비아는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닐 수 없다. 가격도 싸지만 그 농작물들의 크기도 넘사벽이다. 수박과 파파야는 웬만한 각오로는 살 수 없는 크기다. 집에 들고 가기 막막할 정도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과장 좀 보태서 거의 가구 수준이다. 누가 가구를 비닐봉지에 담아다 집에 들고 가겠는가. 저건 사람 불러야 할 크기다. 아보카도도 난생처음 보는 모양이다. 아보카도인 줄 모르고 봤을 땐 방사능 오염이 되어서 청사과가 크고 길쭉해진 건가 싶었다. 맛은 똑같이 맛있고 가격도 싸지만 크기는 내 두 손 모은 거 보다도 크다.


생각해보면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농산물인 커피도 실은 콜롬비아 토종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커피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유럽 코쟁이들이 커피를 키우려고 씨앗을 가져다가 여기에 심은 거다. 그런데 이제는 아프리카보다 커피가 유명한 곳이 되었다. 콜롬비아는 농사짓기 최적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단군 할아버지는 왜 이런 땅에 나라를 안 만들고 아시아 끝 반도 땅에 나라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황사, 태풍에 여름에는 너무 더운, 겨울에는 너무 추운 동네에 나라를 지었다. 심지어 석유도 한 방울 안 난다. 그리고 지금은 강대국 사이에 끼여서 평생 양 옆 나라 눈치나 보게 생겼다. 단군은 좀 혼나야 한다.


KakaoTalk_20190902_200012172.jpg 아보카도가 이만하다. 그런데 내 손이 왜이리 통통하게 나왔지.




부까라망가의 동물들도 이 자연의 축복을 받았다. 밖에는 비둘기 대신 그보다 훨씬 큰 매나 독수리라고 불러주어야 할 것 같은 새들이 산다. 하는 짓은 비둘기랑 똑같지만 크기는 10배는 더 크다. 아마 내가 전력을 다해서 저 새와 싸운다면 호각을 다투다가 끝끝내 질 것 같다. 그래서 저 새가 보이면 빙 둘러서 피해서 걷는다. 아마 이 도시에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오토바이와 저 흉측하고 끔찍한 거대 새일 것이다.


매주 언급하는 모기는 이제 말할 것도 없이 꾸준히 왕성하다. 모기는 그래도 학교 기계과 건물에서만 보니까 하루 6시간만 괴롭힘을 당하면 된다. 하지만 집에 팔자에도 없었던 새로운 반려동물 개미들이 요즘 나의 남은 18시간을 괴롭히고 있다. 처음 봤을 땐 개미도 하나의 생명이니까 그냥 살려 두었다. 나의 설탕통에 들어가는 것도 그러려니 했고 줄지어 다니는 모습이 가끔 귀엽기도 했다.


그렇게 2~3주 지났다. 개미는 매일매일 배로 늘더니, 이제는 내가 사는 집에 개미가 얹혀사는 것이 아니라 개미집에 내가 반려동물이 된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잠깐 음식을 식탁에 두고 깜빡하면 개미들은 어디선가 나타나서 자기 음식인 양 먹고 있고, 바닥도 천장도 개미들이 줄지어 기어다녔다. 아오 이 녀석들. 개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과연. 생명이 넘치는 부까라망가 대자연의 개미가 승리할 것인지 자본주의와 현대 과학의 집결체인 개미 잡는 약이 승리할 것인지.


그런데 정말 싱겁게 결과가 났다. 역시 현대 과학은 위대했다. 개미들은 개미 약을 신이 내려준 만나처럼 맛있게 먹었고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 아마 그날 내 인생 가장 큰 살육을 벌인 날일 거다. 그러게 내 음식을 건드려선 안됐다.




이런 풍족한 곳에 살다 보니 사람들도 참 여유롭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사람한테도 "Hola올라(안녕)", "Hasta Luego아스타 루에고(다음에 봐요)"라고 인사한다. 그리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쉬는 시간은 모두 챙긴다. 일요일이면 많은 가게들이 닫는다. 점심시간은 또 2시간이나 된다. 그래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집에 다녀오기도 한다.


공원에 가면 한가롭게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옆에는 꼭 비엔나소시지처럼 뚱뚱한 개가 있다. 근처 허름한 바에는 오후 이른 시간임에도 손님들이 맥주 한 잔을 하고 있다. 여유롭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 전혀 아니다. 이야기 듣기로는 이곳의 월 평균 월급은 80만 페소정도라고 한다. 한국 돈으로는 3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좀 적게 벌지만 그다지 급하지 않다. 여유롭게 오늘을 음미한다. 어쩌면 이게 사람 사는 게 아닌가 싶다.


KakaoTalk_20190902_200024993.jpg 저 소고기는 4600페소, 한국돈으로 1500원.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바싼건 저 하긴스 소스다. 저 소스가 소고기보다 1.5배 비싸다.


커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지구 상에 종을 멀리, 많이 퍼트리는 것, 번식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성공했다고 한다면, 커피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생물학적으로 성공한 식물 중 하나일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자라나던 이 나무는 남미, 동남아까지 건너와서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온갖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그 수는 처음 아프리카에 있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을 거다.


하지만 커피나무 각각의 수명은 짧아졌다. 왜냐하면 커피나무가 너무 크게 커버리면 커피를 수확하기 어렵기 때문에,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커피나무를 심기 때문이다. 그 전체 커피나무 종은 생물학적으로 성공했을진 모르겠지만 각각의 나무들의 수명은 줄었다.


동물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동물은 소, 돼지, 닭으로 대표되는 가축일 거다. 하지만 소는 평생 몸을 가누지 못하는 좁은 우리에서 사료만 먹다 죽는다. 닭은 24시간 불이 켜진 닭 장에서 잠도 못 자고 하루 두세 번씩 알을 낳는다. 돼지도 마찬가지로 비참하게 살다 죽는다. 생물학적으로 성공했을지 언정 그 각각의 삶은 비참해졌다.


반면 얼룩말은 가축으로 만들려고 수차레 시도를 했지만 끝까지 가축이 되지 못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생물학적으로 실패해서 지금은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그러나 남은 소수는 아프리카 대 초원에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의 삶은 나에게 밥 꼬박꼬박 주는 우리 속에서의 삶 같았다. 지금은 한국이라는 우리에서 나와서 편의점 알바보다 돈 적게 받고 살고 있다. 미래를 고민해보면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실패한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얼룩말이 된듯한 자유가 좋다. 인생이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인간에 꼬드김에 끝끝내 저항하던 싹수없던 얼룩말처럼. 평생을 저렇게 마이웨이로 살 용기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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