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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Dec 18. 2019

지금 콜롬비아는 선거 중.

19년 10월 24일




  평화롭다.

  요즘 나의 삶의 만족은 낮잠에서 나온다. 한두 시쯤 집에 도착해서 못 봤던 유튜브 조금 본 뒤 그대로 스르르 잠드는 것.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4시 반 과외 때문에 억지로 4시 20분에 일어나 방 정리하고 커피 물을 올리긴 하지만. 그때까지 얼굴에 자국이 남을 만큼, 팔이 찌릿찌릿 저릴 만큼, 꿈도 넉넉히 담아 꿀만큼 푹 잠든다. 그렇게 자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낮잠에 빠진 지 30분도 안되어서 깨버렸다. 밖에 무슨 삼바 축제라도 하는지 시끄러운 음악이 동네 전체를 울린다. 잔뜩 뾰족해져서는 창문 밖을 내려다봤더니 선거 유세 행렬이 지나간다. 부까라망가 시내가 다 무너져라는 듯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마 부까라망가 좋은 스피커는 다 빌려다 트는 게 분명하다. 교통질서도 막고 소음도 엄청나고, 저런 걸 왜 하는 건지 모르겠건만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보통 좋은 일을 하는 꼴을 못 봤다. 이번 주만 벌써 세 번째이다. 잠에서 깨버려서 기분을 잡쳐 버렸다. 진심으로 저 사람이 당선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집 엘레베이터는 할로윈, 가게들은 벌써 크리스마스. 조용할 일 없는 콜롬비아다.




  콜롬비아는 선거를 서너 달은 하는 것 같다. 언젠가 모든 길거리 광고들이 선거 유세 광고로 바뀌던 것부터 시작이었다. 대게 여기 건물 옥외 광고판은 보기 싫은 맥주 광고나 아구아르디엔떼 Aguardiente라는 콜롬비아 술 광고가 국룰인데 선거가 시작하고 어느 야망 있는 콜롬비아 아저씨의 세상 가장 어색한 미소와 대문짝만 한 이름 그리고 기호 번호와 그 정당의 로고로 도배된 광고로 바뀌었다. 그러다 점점 광고판이 아닌 곳들도 이름, 기호번호, 로고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건물 한쪽면에 이름, 기호번호, 슬로건이 인쇄된 용지가 벽면 가득 붙어져 있거나 어떤 집은 그걸로 모자라서 페인트로 한쪽 벽면을 아예 선거 광고로 칠해버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차들도 악랄하고 집요한 선고 광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몇몇 자동차 후면에는 기호번호와 로고가 찍혀있고 아예 선거용 차량인지 앞 유리창 빼고 전부 선거광고로 도배한 차량도 있다. 가게들도 창문이나 벽면에 빈자리만 있다 싶으면 냅다 로고와 기호번호가 쓰여있는 스티커를 붙여놓거나 작은 현수막을 걸어두었다. 가로수들도 저마다 지지하는 후보가 있는지 하나씩 현수막 걸어두었다. 유튜브 광고도 이제 듣기 싫은 선고 광고만 나온다. 아마도 이 기세면 곧 내 이마에도, 엉덩이에도 선거 광고가 붙는 날이 오리라 생각된다. 어디서 이런 돈이 나왔나 싶다. 나의 개인적인 결론은 콜롬비아 인쇄, 광고업계와 선거위원회 간의 뒷거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면 콜롬비아 전체 GDP의 10%는 선거 유세에 쓰이는 게 아닐까.




  선거 광고를 살펴보면 재밌는 점이 많다. 먼저 기호번호가 30-40여 개 된다. 몇몇 특정 번호들의 광고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후보자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정당 수도 많은데 자주 보이는 것만 해도 10개 정도다. 그중 신기해서 유심히 본 정당은 MAIS 정당. 발음이 옥수수 MAIZ랑 같은 이 정당은 그래서 로고도 옥수수이다. 원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이 사회 정당은 귀여운 옥수수 모양 로고 때문에 계속 눈이 간다. 돈이 없는 약소정당인지 광고를 흔히 볼 수 없고 스타일도 촌스러운 쌍팔년도 스타일이다. 하지만 가끔 보이는 귀여운 빨강 배경의 노란 옥수수 로고를 보면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 외에도 선거 슬로건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제 스페인어 공부 좀 했다고 뭐라고 쓰였는지 대강은 보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기서의 선거 슬로건의 과반수는 치안이 불안한 콜롬비아 답게 안전에 관련된 내용이다. 더 안전하게, 안전한 부까라망가. 이런 느낌의 슬로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중 나에게 관심을 끈 현수막은 AICO라고 하는 MAIZ와 같은 원주민 사회 정당인데 슬로건이 들어갈 중앙에 고양이'El gato'라고 적어 두었다. 대신 아래 조그마하게 부까라망가의 안전을 위해서 라고 적혀있다. 실수인지, 전략인지, 내가 모르는 Gato라는 단어의 뜻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전략이라면 뭔가 좀 아는 사람인가 싶었다.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만고의 진리이다. 이 사람은 내 기준에선 합격이다.


선거 광고는 이거 말고도 삼십억개는 더 있다.




  이렇게 후보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건 사실 생선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몰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과외선생님과 요즘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이때껏 과외선생님이 보였던 반응 중 단연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여줬다. 주먹을 불끈 지고서는 저런 사기꾼 녀석들 다 잡아다가 감옥에서 콩밥을 먹여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한다. 이야기를 좀 듣자 하니 역시나 부정부패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부정부패는 옛날부터 유명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 Pablo escobar의 일화가 유명하다. 메데진 마약 카르텔의 리더였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정치인을 포섭하기 위해서 Plata o Plomo라는 이름의 정책을 썼다. 우리나라 말로 한다면 '은 혹은 납'이라는 뜻인데 은Plata는 여기서 Dinero돈이란 말 대신 쓰는 단어이고 Plomo는 납, 총알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을 포섭할 때 "돈 받고 조용히 할래?" 아니면 "총알 세례를 받을래?"라는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돈을 받지 않고 공개적으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비난한 사람들은 암살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는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자신을 맹비난한 대통령 후보를 죽이기 위해서 비행기를 폭파시키기 까지 했다. 여기서는 정직하면 목숨을 잃어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이렇게 퍼졌다. 그렇다 보니 부정부패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도 정착되어버렸다. 그래서 일상적인 부분에도 이런 부정부패가 넓게 퍼져있다. 대학교 졸업한 뒤 좋은 곳에 취직하려면 윗사람에 뒷돈을 주는 게 상식으로 통한다고 한다. 경찰에 잡혀도 주머니에 돈 좀 꽂아주면 풀어준다고 한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황금만능주의도 만연하다. 콜롬비아 정치인들에게 부정부패는 그저 부업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여기서도 부정부패를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부카라망가 전 시장이 좋은 예이다. 부카라망가 전 시장은 괴팍하고 다혈질 적이고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괴짜 할아버지로 통했다. 그래서 작년에는 회의 중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을 맹 비난한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뉴스 세례를 받았고 지금은 특정 후보를 지지해서 시장직도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런 천방지축 할아버지가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이 괴팍한 할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게 부정부패였다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가 보여준 부정부패 청산에 대한 의지 덕분에 콜롬비아 여러 지역 중 가장 청렴도가 높은 지역으로 부까라망가가 꼽힌다. 반면 부정부패가 가장 심하기로 소문난 까르타헤나는 6년 동안 11번이나 시장이 바뀌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부정부패, 뇌물수수 몇몇은 성 스캔들로 물러났다. 1년의 시장이 2번꼴로 바뀌었다. 비정규직도 이렇게 자주 잘리지 않는다. 아마도 시장 비서는 매번 바뀌는 시장의 풀 네임을 외우는 것이 하나의 업무였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콜롬비아 전체를 보면 부패지수는 100점 만점에 36점. 세계 90위권의 나라이다. (한국은 57점으로 세계 45등. 한국도 갈길이 멀다.) 부정부패로 인한 연간 추정 손실이 16조 달러에 달 한다고 한다. 부정부패 척결은 콜롬비아의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이다. 아무튼 이번 시장 선거 및 Consejo라고 하는 의원 선출에 과외선생님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남의 집 벽에다가 특정기호와 번호를 그리는 것, 심지어 야산의 바위에도 기호를 그리는 것을 보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서 할 첫 과업은 안타깝게도 원금 회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요즘 남미 전반적으로 정세가 혼란하다. 콜롬비아와 이웃하는 나라인 에콰도르는 저번 달부터 기름값 인상 반대 시위가 심각해져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에콰도르에 근무 중인 코이카 단원들은 안전 문제로 외출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뉴스로 보니 시위는 꽤 심각해서 몇몇 에콰도르의 지역은 사실상 도시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칠레에서 큰 시위가 일어났다. 버스비 50원 상승으로 시작된 이 시위는 심각한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와 지도층의 망언으로 인해 폭력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칠레 또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볼리비아도 대통령 선거 개표 조작 의혹으로 인해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남미 전체는 같은 스페인어를 쓰기 때문에 서로서로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 국제적 분위기는 시위하면 빠질 수 없는 나라 콜롬비아로도 넘어오고 있다. 원래 대학생을 중심으로 빈부격차, 교육질 향상의 목소리를 내며 지속적으로 시위하고 있었지만 얼마 전 교육 쪽 예산 삭감을 계기로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오랜 빈부격차와 불경기 그리고 남미 사람들의 불같은 성격이 맞물려서 혼돈의 시대로 가고 있다.




  사실, 언제나 평화롭고 좋을 순 없다. 모든 평화와 권리는 처절한 항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흑인이 노골적인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 것도 흑인 민권운동으로 저항했던 흑인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우습게 들리기까지 하는 여성 참정권도 여성들의 권리 주장 목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의 노동자 권리도 전태일과 같은 꺾기지 않은 몇몇 목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많다. 남미에서의 폭력시위도 한 예일 테고 요즘은 당연시되어가는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시위 또한 위와 같은 예시로 남을 것이다. 불의와 불공평, 불평등에는 목소리를 내는 건 옳다. 자신의 이권은 누구도 대신 대변해 주지 않는다.


21일 대대적인 시위를 알리는 낙서. 밤새 시끌벅적했다.


   오늘 밤도 UIS대학교 쪽에서 폭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UIS 대학에서 있는 교육비 삭감 반대 파업도 꽤 장기적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정치문제로 시끄럽다. 근육이 자라기 위해서는 기존의 근육이 과도한 운동으로 상처를 받아야 한다. 그러고 난 뒤 새로운 더 큰 근육이 그 자리에 자라난다. 시위의 폭력성과 시위의 정당성은 다른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불공평한 대우에 대해서, 혹은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라는 더욱더 정의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평화롭게 있지 않고 기꺼이 목소리를 내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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