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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Dec 25. 2019

지금,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는 지옥입니다.

19년 10월 28일




   아스파트를 녹일듯한 뜨거운 햇볕.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은 흡사 지옥 뒷골목 같은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나는 이유는 마치 유황불 같이 내리쬐는 태양 광선도 한몫 하지만 학교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길의 묘한 세기말적 분위기도 한몫한다. 내가 사는 부까라망가는 북쪽으로 갈수록 치안이 나빠진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부까라망가 거의 최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매번 학교 선생님들은 학교 앞 길을 다닐 때 조심하라고 당부하신다. 


학교에 집으로 가는 길. 길 분위기가 무섭다. 가끔 이쁜 그림들이 있지만 그건 아주 가끔.


   평화로운 우리 동네와는 다르게 학교 앞 동네는 그 흔한 슈퍼도 없다. 대신 무채색의 2,3층 집들만 이어져 있는데 이곳에 유독 노숙자들이 많다. 몇몇 노숙자들은 어디서 용케도 더러운 매트릭스를 주워 와서는 꼬질한 매트릭스 위, 그늘 아래에서 시끄러운 차 소리도 외면하고 푹 자고 있다. 어떤 노숙자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붙잡는다. 나는 수원역만 가면 '도를 아십니까' 서너 명에게 붙잡히는 한국 대표 호구상이다. 이 호구상은 국제적인 것인지 이런 노숙자들은 내가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나한테 달려온다. 그러곤 돈 달라고 하면서 이런 친절은 바라지도 않지만 우리 집까지 에스코트해줄 기세로 따라온다. 한번 화내고 눈 찌푸려주면 다른 호구를 잡으러 떠나지만 그 기분 나쁨은 집에서 샤워를 해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콜롬비아 친구들은 그런 사람들은 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이라며 욕한다. 아무리 봐도 베네수엘라 사람처럼 안 보이고 콜롬비아 사람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는 이런 걸인들은 모두 다 베네수엘라 사람 취급이다. 베네수엘라 사람은 걸인, 노숙자, 도둑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 베네수엘라는 생지옥이다. 얼마나 지옥인지 지표를 보면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다. 먼저 베네수엘라는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그래서 지금 물가 상승률이 세계 1등이다. 올해 추정 물가 상승률은 약 800만% 나 된다. 예를 들자면 올해 초에 1000 원하던 새우깡이 올해 말에는 80,000,000원(8천만 원)하는 것이다.(하지만 정확하게는 이미 작년 물가 상승률이 100만% 이어서 이미 올해 초에 새우깡이 천만 원 하고 있었다.) 그래서 빈곤율도 상상을 초월한다. 조사에 따르면 전체 베네수엘라 국민 중 90%가 기본적인 삼시 세 끼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전체 베네수엘라 사람의 평균 체중이 2015년에 비해 11Kg이 줄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살인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작년 통계에 의하면 인구 10만 명당 81.4명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추정 살인율은 작년보다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총알이 너무 비싸서 총알을 살 돈 조차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떠나는 난민들의 수도 압도적이다. 베네수엘라의 인구는 3000만 명 정도인데 그중 약 400만 명이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총인구의 10% 이상이 난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민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으니 얼마까지 난민의 수가 증가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베네수엘라는 작년 GDP 성장률을 - 22% 기록했다. 그리고 2015년 1인당 GDP는 10,500달러였지만 작년 1인당 GDP는 2,700달러로 반의 반토막이 나버렸다.




   왜 베네수엘라는 이런 나라가 되었나 하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경제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 먼저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석유 하면 흔히 사우디 아라비아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베네수엘라가 사우디 아라비아보다도 석유 매장량이 많은 나라이다. 하지만 이 많은 석유 때문에 도리어 흔히 말하는 '자원의 저주'에 먹잇감이 되었다. 먼저, 풍부한 석유 매장량 덕분에 베네수엘라는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지하에 빨대만 꽂아서 검은 금을 뽑아내서 팔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베네수엘라는 제조업, 농업 등 다른 산업은 쇠퇴하고 비정상적으로 석유 산업에 의존하는 경제가 되었다. 얼마나 비정상적인가 하면 한때 베네수엘라 수출의 97%가 석유였다. 이런 경제 구조는 석유의 가격이 높이 치솟을 때는 좋지만 문제는 석유의 값이 떨어질 때 치명적이다.


   2013년까지는 고유가 행진을 했다. 그래서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가장 GDP가 높은 나라로 승승장구했다. 하나 영원할 것 같았던 고유가 시대는 2014년 미국 쉐일 가스 혁명으로 인해서 막을 내렸다. 그 이후 석유의 값은 반토막이나 배럴당 40-50달러로 떨어졌다. 이 석유값 폭락은 베네수엘라 경제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값에 더 치명적이었다. 석유는 퀄리티에 따라서 채굴 비용이 다르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매장된 석유는 채굴 비용이 10달러밖에 안 되는 경질유이기 때문에 저유가 시대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 매장된 석유는 채굴 비용만 배럴당 40달러가 드는 중질유라서 채산성이 너무 낮아졌다. 아무리 열심히 땅에 빨대를 꽂아본들 채굴 비용과 떨어진 석유 가격이 같아서 이익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네수엘라 석유 회사는 해외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국유화를 했다. 국유화 덕분에 한때는 정부 수입의 60%를 석유에서 얻었지만 지금은 석유 시추에 해외 자본, 기술을 끌어오지 못해서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 그마저 하던 유지보수도 경제 위기로 손을 놓아서 매년 석유 생산량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다시 고유가 시대로 진입한다고 해도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2019년 1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었던 마두로 퇴진 시위. *출처 : Voice of America


   게다가 베네수엘라가 지옥이 된 이유는 정치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은 두 명이다.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마두로와 이 선거는 부정선거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한 야당 국회의장 과이도. 이 두 대통령을 따라서 국민들도 두 파로 나뉘었다. 한쪽에서는 마두로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다른 한쪽은 마두로를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문제는 마두로는 퇴진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헌법을 입맛대로 고쳐 독재자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두로는 군경찰을 이용해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는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와 무력으로 제압하는 군경찰 간의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로 뭉쳐 위기를 타개해야 할 이 시기에 오히려 내부에서 갈등이 심각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고통은 시민들에게 전가되었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콜롬비아, 미국, 멕시코, 페루 등으로 떠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사실 베네수엘라 사태 초기 때의 난민들은 어느 정도 잘 사는 사람들이었다. 당장의 끼니는 굶지 않는 사람들, 해외에서 새 출발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 지식을 가지거나 자본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때까지는 큰 갈등은 없었다. 


   하지만 사정은 점차 안 좋아졌다. 그야말로 매끼 매끼와 생존을 위해서 사람들이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최근에 본 콜롬비아 뉴스에 의하면 재작년 난민 행렬의 초기에만 해도 베네수엘라 난민에 대해 인도적 조치를 해야 한다 생각하고,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간의 국경 개방이 옳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70% 이상 과반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설문에 의하면 40%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이 국경 개방에 찬성했으며 도리어 콜롬비아 내의 베네수엘라 사람을 송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콜롬비아에 입국한 베네수엘라 난민은 130만 명 정도로 대전 전체 인구에 맘먹는다. 이 정도나 되는 엄청난 수의 난민이 준비 없이 들어오다 보니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콜롬비아로 넘어 오는 베네수엘라 난민들. 어마어마한 수가 넘어온다. *출처 : UNICEF/ECU




   베네수엘라라는 지옥에서 겨우 벗어나도 미래와 희망이 없는 지옥 같은 삶은 불행히도 계속된다. 콜롬비아 내에서의 살인사건의 대부분, 약 8-90%가 베네수엘라 사람 대상이라고 한다고 한다. 그 외의 성범죄, 폭행 같은 범죄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난민들은 차 타고도 10시간 넘게 걸리는 곳을 몇 박 며칠 걸어서 이동한다. 그래서 이동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야생 동물에 의해 공격받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희망을 가지고 도시에 도착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 겨우 식당 일이나 가사도우미 같은 일은 구한 사람은 운이 정말 좋은 것이다. 도시에 도착한다고 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럼 그들은 또 도시로 걸어서 이동하며 구걸로써 매일 연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야산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아니면 떼를 지어서 절도, 강도의 길로 빠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베네수엘라 난민 중 몇몇은 자진에서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간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피난 오는 길에 아이들과 여자들, 노인들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일자리 알선으로 갔다가 납치를 당하거나 생매매로 빠지기 부지기수다.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일은 지구 반대편 일이다.


저 멀리 달동네 옆으로 나있는 길은 베네수엘라로 향한다. 하루에도 수백명이 걸어서 부까라망가로 온다.




   가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 혼자 살기도 빠듯한데 어떻게 남들 도울 여력이 있냐?", "한국에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해외까지 나가서 남을 도와야 하냐?"라고 하신다. '세계시민의식'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 좋은 말은 다 집어넣었지만 쉽게 뜻이 짐작되지 않는 이 단어의 뜻은 "우리 모두는 지구공동체이며 이에 따라 각자의 권리, 책임감, 의무가 있다."라는 뜻이다.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특별하게 생각되던 해외여행은 일상이 되었고 해외 직수입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서로에 주는 영향도 더욱 커져간다. 중국 수많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들이 한국의 미세먼지를 일으킨다. 브라질에 일어난 큰 산불로 세계 모두가 걱정한다. 각자 탈 세계화를 외치며 경제 빗장을 치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환경, 경제, 사회 많은 범위에서 서로 직간접적인 영향이 커져가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구는 하나의 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그 지구를 이루는 하나의 세포들인 셈이다. 지구 반대편에서의 비극이 생긴다면 지금 당장은 그 일이 나의 삶에 연관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일들이 순차적으로 도미노처럼 굴러와 지구 전체에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의 지구 공동체라는 의식이 더욱 중요해져 가는 세상이 오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사람과 콜롬비아에 온 베네수엘라 사람의 존엄성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일어난 테러로 몇몇 사상자가 난다면 온 세상에서 애도의 물결을 보이지만 콜롬비아에서 길에서 죽어가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알지 조차 못한다. 잘못된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알지 못하기에 슬퍼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이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베네수엘라 사람 한번 떠올려준다면, 난 그것 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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