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건 살아있다는거다.

19년 3월 23일

by Sankim




스트레스는 적당히 필요하다.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는 삶은 불행하다. 방학도 시작하면 딱 하루 이틀은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하지만 일주일만 지나도 할 게 없나 주변을 기웃거린다. 지루하다. 자극이 필요하고 부담이 필요하다.


나에게 그 적절한 부담은 글쓰기이다. '써야하는데... 써야하는데... 글 써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 한편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다. 그 눈빛이 얼마나 따끔한지 모른다. 글 쓰고 나면 하루 이틀 정도는 그 자책감에서부터 자유롭다. 그렇지만 삼사일 지나고나서부터는 슬슬 뒤통수가 따갑다. 그래서 한적한 주말에서야 이렇게 끄적인다. 무서운 눈초리의 감시를 받으면서 말이다.




요즘 우리 콜롬비아 기수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점심 뭐 먹지?"도 아니고 "스페인어 공부"도 아니고 남사스럽게도 혹은 영광스럽게도 "나의 대왕 여드름"이다.


이 여드름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까르미냐 스페인어 선생님께서는 그 정도 크기면 Amigo(친구)라면서 미구엘Miguel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셨다. 다른 선생님은 이정도 크기면 병원 가서 수술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어떤 선생님은 내가 잘 짜주겠다면서 눈독을 들이신다.


처음부터 남다른 크기였지만 매일 쑥쑥 자라서 이제는 눈까지 팅팅 부었다. 꼭 누구한테 두들겨 맞은 것같이 되었다. 눈도 잘 못 뜬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개그감이 좋으신지 2년간 쓸 신분증 사진을 찍는 이 기간에 절묘하게 미구엘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덕분에 2년간 내 신분증에는 눈이 3개, 혹은 이마 옆에 뿔난 사람이 있게 되었다.


KakaoTalk_20190530_110945142.jpg 나의 인생 햄버거. 미구엘의 고향으로 의심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을 꼽는다면 "석연치 않다"라는 말이다. 무언가 뒷 꿍꿍이가 느껴지는 말. 개운하지 않은 말의 빈틈을 상상력이 채워질 때가 참 재미있다.


예를 든다면 요즘 보고타의 삶들이 그렇다. 택시 기사가 '석연치 않게' 돈을 더 요구한다던가. 한국 여권을 보여줬는데도 '석연치 않게' 나보고 중국인 아니냐고 계속 묻는다던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는 그림을 눈치로 그려본다. 야간 할증인가? 내가 봐도 난 중국인 같으니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그 마무리마저도 석연치 않다.


하나하나 파악 안 되고 떠뜸떠뜸 눈뜬장님으로 살아가는 삶이 너무 재미있다. 특히나 그 의사소통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루어질 때, 의사소통이 언어가 아닌 서로의 이해와 고민으로 이루어지는 퀴즈 같을 때 더욱더. 끝 맛은 호구 당한 것같은 석연치 않음이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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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딸기 주스를 저런 대접에 받았다. 싸우자는 이야기를 굉장히 독창적으로 하셨다. 그런데 음식이 맛있어서 참았다.





오늘 다녀온 소금 성당도 그러한 점에서 재미있었다. 오늘 봉사단원들과 소장님 그리고 인턴 선생님과 함께 소금 성당을 다녀왔다. 어차피 한번 다녀온 곳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갔지만 또 한 번 더 감동으로 두들겨 맞고 돌아왔다.


옛날에 Zipaquira 땅 속 깊은 곳에서 소금과 여러 광물이 발견되었다. 그 후 이곳은 소금 광산으로 개발되었다. 첫 시작은 위험한 광부 일을 안전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이후 정기적인 기도모임이 되고 신부님을 초청해 미사를 드리고 하다가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소금 성당까지 이르렀다.


소금성당에 있는 예수님의 생애를 나타내는 10개의 십자가와 아름다운 지하성당도 놀라웠지만 나에게 감동을 준건 그 공간이 주는 뉘앙스였다. 어깨에 짊어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이 지하 깊숙이에서 빛은 커녕 숨쉬기 힘든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아 있음에 감사했을 그 아버지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삶, 그 가장의 무게까지 느껴졌다. 아 이런 상상은 좀 심했나? 아니면 말고 뭐.


KakaoTalk_20190530_110936845.jpg 소금 성당이라서 벽을 핥아 먹어 보았다. 짰다.


콜롬비아에 살면서 매일 보는 것 중 하나는 구걸하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다. 콜롬비아에는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많다.


상황이 좋은 사람은 차 하나 구해서 Uber로 불법 택시 영업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전거를 구해서 배민커넥트처럼 배달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있는 홈스테이 집에서 청소해주는 분도 베네수엘라 사람이다. 상황이 나쁜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간절함만큼은 진하게 느껴지는 글자가 쓰인 골판지를 들고 서있는 차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한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는 우리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았을 거다. 그러다 나라가 경제 위기를 겪게 되었을 거다. 베네수엘라에서 더이상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아, 목숨걸고 몇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히치하이킹해서 이 곳 보고타로 넘어왔을 거다. 오랜 노숙 생활에 낡아버린 옷과 신발이지만 그 브랜드만큼은 눈에 익는다.


그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더 나아가 사회 자체의 문제가 이렇게 큰데, 내가 여기서 봉사한들 의미가 있을까 하는 부정적 생각마저도 든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내게 베네수엘라 난민들 조심하라는 걱정을 해준다. 국제 사회에서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도울 방법은 없을까. 그저 미국 눈밖에 난 나라니까, 경제 정책을 실패한 나라니까, 그 나라 시민들은 이런 대접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일까. 진짜 국제 개발 협력이란 건 뭘까.


전쟁 같은 치열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난 오늘의 평화로운 하루를 그냥 누려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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