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04월 01일
인스타에는 벚꽃사진이 올라온다. 한국은 이제 봄이구나. 한국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가 떠나올 때 그 겨울일 것만 같다. 이렇게 추워도 되나 싶은 시베리아 추위와 김밥 한 줄이 걸어 다니는 것 같이 보이는 검정 롱 패딩들. 하지만 지구는 매일 한 바퀴씩 부지런히 빙글빙글 돌아서 벌써 한국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나는 한 거 없이 지난 보고타 생활 한 달. 뭐 달라진 거 없지만. 스페인어도 그다지 늘지도 않았지만. 다만 살만 좀 많이 쪘지만. OJT. On the Job Training. 내가 2년간 파견될 기관으로 5일간 Job training을 떠났다.
OJT를 떠난 시간은 저번 주 화요일 아침. 2년 간 함께할 직장 동료들을 처음 만나는 날. 그 날은 하필이면 한국과 콜롬비아 축구 친선전이 있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잘하지도 못하던 한국 축구가 웬일인지 이겨버렸다. 공교롭게도 여기 콜롬비아는 국제대회에서 자살골을 넣은 선수가 피격당할 정도로 축구에 목숨을 거는 나라였다.
게다가 첫 만남인데 친구 Miguel은 떠날 기미가 없었다. 이리저리 공교로울게 많은 첫 만남이었다. 공항까지 마중 나와준 사람은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은 "Buenos Dias, Mucho gusto"(좋은 아침, 만나서 반갑다)라는 인사에 이어 축구 이야기로 첫 대화의 포문을 여셨다. 나는 기관장을 만난 첫자리에서 Hola라고 인사한 뒤 바로 Lo siento(죄송합니다)라고 말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의 기관이 있는 곳은 부까라망가Bucaramanga. 콜롬비아의 5번째쯤 되는 도시라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대전, 울산쯤 된다. 기온은 20도에서 30도쯤. 습도는 상시 높아서 꼭 선선한 동남아에 온 것 같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의 이름은 Instituto técnico superior Damazo Zapata. 일명 Damazo Zapata다마소 사빠타로 무려 이름에 a가 5번이나 들어가는 멋진 곳이다. 우리 학교는 한국으로 치면 공업 고등학교인데, 좀 특이하게도 이 학교 안에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가 다 있다. 학생은 총 5천 명. 상상이 되는가. 쉬는 시간만 되면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나 같이 방 어지럽히고 안 치우는 사람이 가는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 거다. 그런데 그런 곳에 있는 내가 왠지 싫지 않은 느낌?
비행기를 처음 탓을 땐 꽤 설레었다. 타게 될 비행기 사진도 찍고 들어가는 게이트 사진도 찍고 그 앞에서 친구랑 기념사진도 또 찍고. 요즘은 잘 안 하지만 승무원들이 이륙 전에 하는 비상시 대처방법도 혹시 쓸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설렘으로 열심히 듣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비행기 좀 타봤다고 좌석에 앉으면 잠자기 바쁘다. 그때부터였나 비행기 타는 건 나에게 놀이가 아니고 이제 일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쫌 꽤나 성가시고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1시간 성가시고 피곤한 일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열정이 과하게 넘치는 교장선생님은 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방에서 조금만 쉬게 해 달라는 말이 목젖 근처를 살랑살랑 맴돌지만 스페인어로는 나오지 않는다.
와서 하는 스페인어라곤 감사합니다Gracias, 안녕하세요Hola, 이해 못했어요No entiendo, 스페인어 못해요 No hablo español이 8할. 내가 했던 가장 근사했던 스페인어는 점심 식사를 시킬 때 했던 Quisiera pollo frito sin sal por favor.(치킨 안 짜게 주세요. 그리고 근사 하다는 건 길게 이야기했다는 거다.) 그마저도 못 알아먹으셔서 한번 더 말했다. 배운건 많은데 내 스페인어는 언제쯤 자연스럽게 나올까.
이런 자아성찰조차 할 시간도 없이 교장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하듯이 자유시간 없이 이리저리 날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학교 밖을 택시로 달리기를 수십 분, 어디 으리으리한 건물로 도착했다. 딱 봐도 여간 건물이 아닌 느낌, 들어가는 길부터 삼엄 그 자체였다. 그런 철통 경비를 뚫고 도착한 곳은 넓은 회의실이었다. 회의실 정 중앙에는 사람 10명이 누워도 자리가 남을 드넓은 마호가니 나무 책상이 있었고, 그 양 옆으로는 비싼 사무용 의자가 수십대로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지만 그렇게 나는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은 물론 부까라망가에 있는 모든 교장들이 모여서 각 학교의 교육 수준과 학생들 영양 실태에 대한 보고 및 개선 방안에 대한 대책 회의에 강제로 참관하게 되었다. 음 그러니까. 부까라망가에 도착하고 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시교육감과 각지의 학교 짱들이 계신 곳에서 중요해 보이는 멋진 의자 한자리 차지해서 진지하게 알아듣는 척 경청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여야 되는 영광이 주어진 것이다.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몸이 너무 피곤했지만 육체는 정신이 지배하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 누가 봐도 애써 듣는구나라는 느낌으로 경청했다.(그 역할에 꽤 몰입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갑자기 저 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고 수십대의 방송용 카메라와 함께 이경규 아저씨가 "몰래카메라였습니다"라고 말해주길 계속 바라면서 이 순간이 끝나기를 고대했다. 그렇게 마호가니 책상 한 구석자리에서 3시간이 훌쩍 흘렀다. 코이카 2년 꿀이려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련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