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압니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내 20대도 이렇게 떠난 뒤에야 아름다웠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 방학 또한 다 지나간 지금에서야 후회하고 앉아 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방학 내내 매일 하는 것 없이 개학하면 어쩌지 불안해하기만 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여행도 다녀오고 나름 책도 읽으려고 했는데, 다 끝난 지금에서는 후회만 남았다. 그러고선 여전히 지금도 게임하면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마 나는 40살이 되는 날까지도 아니 나무 상자로 들어가 한 줌의 재가 될 때 까지도 계속 후회하려는 모양이다.
주말동안 다녀온 Zapatoca. 고도 1500m인 곳이라 하늘이 더 가까웠다.
이놈의 콜롬비아는 계획대로 되는 꼴을 못 봤다. 이번 학기 개학도 그렇다. 저번 학기에 나누어 준 학교 스케줄표에는 분명히 분명히 화요일에 개학한다고 되어 있었다. 방학하기 전부터 화요일 날 개학하냐고 주변 선생님들에게 몇백 번은 물어보았고 또 확인받았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월요일 오후 2시까지 출근하라는 말에 절망했다.
세상에서 가장 기분 더러운 일이 '줬다 뺏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줬다 뺏기의 대명사, 터키 아이스크림을 나는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다. 인사동인가 이태원인가 아무튼 처음 먹을 때 혼쭐이 났기 때문이다.
그 날 터키 아이스크림가게가 장사가 안 되는 날이었던지 아니면 내 얼굴에 호구라고 쓰여있어서 그런 건지 그 아저씨는 정말 지독하게 놀려댔다. 몇 분을 그렇게 농락당해서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그 터키 아저씨의 성난 팔뚝은 나의 분노를 진정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람 골려먹는 기술을 배워야 터키 아이스크림을 팔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걸까?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나를 빼고도 전 세계에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명이 이렇게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다. 이런 인권 유린 척결은 국제사회가 나서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농담입니다.)
결국 오랜 실랑이 끝에 아이스크림을 받았지만 맛은 없었다. 참고로 잠깐 상식! 이렇게 장난칠 때는 "Benim dondurma ile oynamayin"라고 말해보자. 이 말은 터키어로 "내 아이스크림으로 장난치지 마."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론 어떻게 읽는 건진 나도 잘 모른다.
방학 마치고 학교 왔더니 실습장이 한창 공사 중이다.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옆 학교 UIS 대학교랑 담장을 터면서 실습장 벽도 날려버렸다.
하여간 나의 꿀 같은 하루 쉬는 날을 줬다 뺏겼더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모든 걸 파괴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분노가 속에서 들끓었다. 학교 출근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분노의 "Feliz Año Nuevo: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날렸다. 그 누구도 나의 휴일을 잃은 분노를 막을 수 없었다. 학교 개학의 첫날의 시작은 천주교식 미사였다. 분노의 마음은 바로 가라앉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시간을 가졌다.
미사 이후 매일 의미 없는 출근이 이어졌다. 나는 스페인어 초급자. 이제 중급 문을 똑똑 두드리는 수준이다. 이런 수준으로 어떻게 '이번 학기에 누가 무슨 수업을 맡을 지에 대한 회의'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정신 나간 학년으로 소문이 흉흉한 8학년 학생들을 피하려는 선생님들의 신경전이 어마어마하다. 그 학생들을 맡기 싫다고 고성과 삿대질이 오간다. 나는 그 전쟁터 가운데서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왜 여기 이 전쟁터 한복판에 있어야 하죠...?' 하지만 교장선생님의 대 원칙. 선생님들 하는 건 모두 참가. 그래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아마 떠뜸떠뜸으로라도 단어를 알아듣지 못했다면 911을 누르지 않았을까?
할 일 없지만 가야 하는 출근길. 출근하면 학교 앞은 매일 장사진이다. 예비 학부모들이 학교 입학지원서를 내기 위해서 사무실 앞은 물론 교문 밖으로도 길게 줄을 서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입학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콜롬비아는 이렇게 직접 가고 싶은 학교에 가서 지원서를 낸다.
교문 밖 한쪽 벽에는 학교 통학 버스에 대한 광고가 붙어있고 다른 한쪽에는 학생들의 이름과 반, 번호가 적힌 종이가 교문 위에 빼곡히 붙어있다. 전형적인 콜롬비아 개학 풍경이다.
이번학기는 누구랑 같은 반일까? 오른쪽은 학교 등교 버스 광고들. 저 사진 찍은 이후 수십개가 더 생겼다.
콜롬비아 공교육은 무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립학교는 무료이다. 콜롬비아는 유치원 1년, 그리고 학교 9년 총 10년간 무료 교육을 한다. 그래서 빠르면 만 15살 늦으면 만 19살에 졸업을 한다.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까닭은 학교에 들어오는 때도 제각각이지만 유급하는 아이들, 일명 '꿇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약 15-30% 정도의 학생들이 진급 조건을 갖추지 못해서 유급한다고 한다.
그렇게 1,2년 유급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은 그래도 준수한 편이다. 왜냐하면 3번 낙제를 하면 아예 퇴학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공립학교에서 받아주지 않고 사립학교를 가지 않는 한 졸업하지 못한다.
그 외에도 학생들이 집안일을 돕거나 부모님의 이혼 등의 이유로도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를 빠지고 범죄나 마약거래 등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한 기사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학교 졸업률을 60%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나 시골에서는 겨우 31% 정도만이 졸업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낮은 졸업률을 보이는 것은 세 가지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부정부패로 인해서 교육의 질이 낮기 때문이다. 먼저, 콜롬비아의 교육비 예산을 보면 전체 GDP의 4.5%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5.8%로 높은 편이며, 세계적으로는 4% 내외다. 콜롬비아의 교육비 예산은 세계적으로 결코 적은 편이 아니지만 문제는 이 돈이 도통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교육 예산이 부족하니 수업의 질은 당연히 떨어진다. 학생 수는 많은데 학교 수가 부족하니 한 학교에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수업을 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은 고작 하루 6시간이다. 그리고 교육 예산이 부족하니 교과서도 없다. 매일매일 선생님들이 사비로 만든 A4지 유인물이 전부이다.
학생 수에 비해서 선생님의 수도 부족하다.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4학년부터 8학년까지 모든 영어 수업에 들어가신다고 까지 하셨다. 심지어 이 선생님의 전공은 프랑스어 교육이시다고 하니 말 다했다. 이렇게 교육 수준이 열악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에서 의미를 못 찾고 방황하기 쉽다.
컴퓨터실 만들기 위한 자재들이 드디어 도착했다. 두근두근
그리고 두 번째는 교육의 열의이다. 콜롬비아에서도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특히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지금 당장 일손이 급한 농촌에서 더 그런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한 기사에 의하면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 아래에서의 자녀들의 졸업률을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집에 일이 생기면 쉽게 학교를 포기한다. 작년에 가르치던 제자 중에서도 한 명이 올해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이사를 가는데 당장 돈이 급해 올해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나중에 집이 괜찮아지면 학교로 돌아온다고 말을 했지만 돌아올진 미지수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코디네이터 같은 부장들이 선생님이 아니라 '관리자'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분들은 학교에 전반적인 운영의 목표를 '학생들의 교육 질 향상'에 두지 않고 '학교의 행정적인 업무의 효율성', 다르게 말하자면 '가성비의 논리'로 학교를 운영한다.
한 학생이 퇴학하면 그 아이의 삶은 나락으로 빠지지만 학교 관리자의 입장으로써는 그저 학생 숫자 하나로 보기 쉽다. 심지어는 그 가망 없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그 돈으로 다른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졸업하지 못한 아이들은 당연히 대부분 끝이 좋지 못하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혹은 범죄에 유혹에 빠진다.
실제로 파울로 에스코바르가 속해 있던 메데진 카르텔이 크게 성장한 이유 중 하나가 메데진 코로나 지역에 교육받지 못한 청년층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메데진 카르텔은 그들에게 마약을 팔았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반 강제적으로 카르텔에 소속시켰다. 콜롬비아가 아직도 치안이 좋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작년 나를 애먹이던 하던 학생들 몇몇이 안 보인다. 수업시간에 몸만 앉아있고 딴생각하던 친구들, 수업 내내 졸고 숙제를 한 번도 안 해온 친구들이다. 첸, 안드레스, 알레한드라 등등.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친구도 있는 것 같고 저번 학기에 낙제를 해서 퇴학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준 점수가 낮아서 낙제에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시려진다. 참 교육이라는 게 어렵다. 어떻게 학생들을 이끌어 줘야 하는 것일까.
새 학기를 맞이해서 새로운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또 작년 처음으로 돌아간 듯하다.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내 이름 이야기해주고 "안녕하세요" 한국말 인사 가르쳐 주고 서로 알아 가고 있다. 올해는 어떻게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까. 나도 너희도 '꽃이 지기 전에 봄을 만끽하는' 그런 한 해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