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01월 28일
분주하다.
고작 컴퓨터 교실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다. 돈도 얼마 안 드는 게 시간은 무쟈게 잡아먹는다. 매일매일 물건 사러 가고, 물건 온 거 하나하나 검수하고, 그걸 사진 찍어서 보고서까지 쓰려니 하루 종일 컴퓨터 의자와 하나가 되어서 워드만 붙잡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이토록 기대하고 기다리고 생각하고 조사한 적이 있었나 싶다. 아마 내 인생 가장 중요한 선택이던 대학, 코이카도 이 정도로 애쓰진 않았다. 어떻게 아직도 용케 안 망하고 살아있나 싶다. (다 하나님의 은혜다.)
하여간, 다른 선생님들은 수업 회의 때문에 바쁘고, 나는 보고서로 바쁘니 사무실이 종일 분주하다. 그래도 다들 새로 만드는 교실로 들떴다. 매일 아침마다 달라져 가는 새 교실에 다들 신이가 났다.
그래도 이렇게 일처리가 복잡해지고 오래 걸리는 건 이스마엘 선생님 탓이 크다. 이 자리를 빌어서 이스마엘 선생님 욕이나 시원하게 해야겠다. 낮에 보고서를 쓸 때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면, 이스마엘 씨는 '하나도 없다. 완벽하다Perfecto. 다 잘되고 있다Todo bien.' 다 끝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곤 늦은 밤에 갑자기 문자가 온다. 무슨 쇠덩이 사진과 함께 이것도 혹시 구매 신청할 수 있냐고 별거 아닌 거처럼 이야기한다. 이스마엘 선생님이야 뭐 소파에 누워 코나 후비면서 핸드폰 게임하다가 불현듯 '아! 이거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물어보는 거 겠지만 나는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나름 정부일이기 때문이다. 추가 사항 하나하나 다시 보고서를 써서 콜롬비아 사무소에 보내야 하고 또 사무소에서는 신청서를 검토한 뒤 한국 본부로 또 보고해야 한다. 이스마엘 씨가 코 파면서 '아! 이거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하나에 수십 명이 일을 더 해야 하는 것이다. 이걸 설명한들 이스마엘 씨의 열정에는 안 먹힌다. 이거만 더하면 더 좋아질 거라고 사정사정한다. 뭐 별수 있나. 해줘야지.
새 학기가 시작하니 모르는 학생들이 참 많아졌다. 작년 초, 처음 내가 이 학교에 왔을 때는 학교 생활이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인이라는 신기한 동양 원숭이를 보러 전교생이 나를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는 쥐새끼들 마냥 쫓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무실에 숨어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사무실 앞에서 사생팬처럼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악성 학생들도 있었다. 살다 살다 이런 공대생 나부랭이가 인천공항에서 BTS가 된 기분을 느껴보다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작년 말쯤 되자 편해졌다. 내가 아무것도 없는 그저 못생긴 한국인이란 게 들통나 버린 것이다. 심지어 재미없는 수업까지 하는 끔찍한 선생님인 건 덤이었다. 그래서 가끔 내게 달려와서 '안냐세요!' 말하고 도망가는 수줍은 학생들 정도만 있었다. 그 나머지는 나를 무슨 바닥에 있는 돌, 나무 같은 무생물 취급을 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너-무 편했다.
하지만 또 새로운 학생들이 오니 구경당하느라 바쁘다. 원숭이가 된 것처럼 둘러싸여서 맨날 듣던 질문들을 또 듣고 있다. "어디서 왔어요?" "여기서 뭐하세요?" "한국이면 북한이에요? 남한이에요?" "한국어로 올라Hola를 뭐라고 그래요?" 좀 귀찮지만 이런 아이들은 귀여운 편이다.
"칭챵칭챙춍." 한 아이가 이런 소리를 내며 웃는다. 그리고 중국인이라는 의미의 '치노'. 놀리듯이 말하는 '니하오'나 '곤니찌와'. 양손으로 눈을 찢는 아이들도 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치노'나, '니하오', '곤니찌와'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 하지만 '칭챵칭챙춍.'이나 '눈 찢는 행동'은 단순한 장난이라 볼 수 있지만 명백한 인종 차별이다.
그리고 기계과 할아버지 선생님으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는 동양인을 구분할 수 있다면서 동양인인데 이렇게 눈이 크면 한국인, 눈을 찢으면서 이렇게 작으면 일본인, 못생겼고 셔츠를 들어 이렇게 배를 까면 중국인이라고 그런다. 한국인이 그중 제일 잘생겼다며 치켜세웠다. 나 기분 좋아라고 한 이야기인걸 알지만 그럼에도 썩은 미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혹시, 남미는 우리보다 못 살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사실 이런 생각이 또 다른 인종차별이 아닐까?) 오히려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가 세계에서 동양인을 가장 차별하는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왜 남미는 동양인들을 차별할까?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지만 내 생각에 첫 번째는 인식의 문제에 있다고 본다. 남미 사람들은 인종 차별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부족하다. 특히 여기서는 인종차별Racismo이라 함은 "흑인들이나 원주민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떠올리지 아시안을 향한 인종 차별은 인종 차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친근함의 표현, 그냥 짓궂은 장난일 뿐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아시안을 보면 눈을 찢고, '칭창챙칭춍'이러는 거다. 그래서 이걸로 화내면 오히려 어리둥절한다. 나는 그냥 농담한 거고 친한척한 건데 거기에 왜 이렇게 호들갑 떨며 싫어하냐는 반응이다.
두 번째는 나라마다 약간씩은 다르겠지만 남미에는 은근히 아시안을 내려보는 시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미의 역사를 이해하기로는 남미는 스페인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사람이 일본을 미워하듯 남미 사람들은 스페인을 싫어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콜롬비아 대다수는 메스티소로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이다. 그래서 여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여기 사람들은 과거 인디언 시절의 역사는 자신들의 땅에 살던 옛날 사람들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는 남미에 도착한 스페인과 그 이후 독립 영웅인 볼리바르와 독립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니 스페인은 이중적인 위치를 가진다. 자신의 조상으로써의 스페인. 그리고 자신들을 식민지 삼았던 스페인. 그래서 콜롬비아 사람들은 의아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유럽 백인이라고 여긴다. 또한 유럽이 제국주의 시절에 세계를 지배한 서구 문명사에도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시각에서는 동양인을 유럽인인 자신들보다 조금 낮게 여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콜롬비아에는 동양인이 없어도 너-무 없다. 콜롬비아는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 중 하나다. 그래서 콜롬비아에 있는 한국인을 전부 다 합쳐봐야 천명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어딜 가나 있다는 중국 사람도 여기는 2만 명 정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에는 중국인이 107만여 명이 살고 있다.) 심지어 일본 사람은 콜롬비아에서 아직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이렇게 동양인들이 없는 탓에 콜롬비아 사회에서 동양인들의 힘은 아주 약하다. 동양인이 차별을 받아도 그 목소리 자체가 너무 작은 것이다. 아무도, 어느 정당도 동양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힘이 되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콜롬비아에서 인종 차별당하는 건 예삿일이다. 처음에는 이런 소리를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치노'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코레아노!'라고 크게 소리 지르곤 했다. '칭창칭쳉총'하면 내가 더 승내며 '칭! 창! 칭! 쳉! 총!!!!!'을 했다. 눈 찢는 모양을 하면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째려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 초월했다. 그냥 '다 너희가 못 배워서 그런 거다. 그냥 내가 이해해줘야지'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제는 오히려 대화를 시작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치노'라고 물어보면 '코레아노'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아느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아직 '칭창칭쳉총'은 참을 수 없다. 그런 놈들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저주한다. 아직은 덜 초월했나 보다.
콜롬비아의 인종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한국도 사실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에 대해서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의 인종차별은 특수한 편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드문 단일 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외국인이라는 표현은 무례한 표현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인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겉 보기에는 자국민인지 외국인인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백인도, 이민 온 동양인도, 노예로 넘어왔던 아프리카 사람들도 자국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피부색이 다르면, 생김새가 다르면 외국인이다.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한국 국적이 있어도 외국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차별도 많다. 예를 들면 우리는 흑인들을 흔히 '흑형'이라고 부른다. '흑형'은 흑인들이 운동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는 것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친근하게 표현한 단어이지만 최근 이 단어는 대표적인 인종 차별 용어로 지정되었다. 아무리 칭찬이라 하더라도 이건 편견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이건 꼭 동양인은 숫자에 강하고 태권도 가라테를 잘한다고 계산기나 쿵푸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들은 칭찬으로써 그런 이야기를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썩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세계가 난리이다. 그리고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새로운 인종 차별이 시작되었다. 내가 지나가면 이제 코로나 비루스Coronavirus라고 속삭이는 사람들이 많다. 쇼핑몰에 가더라도 내 주변을 슬금슬금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옷 가게에 들어가니 직원에게 '혹시 중국인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나는 그저 외모만 닮은 한국인일 뿐이지만 중국인들은 얼마나 많은 차별과 혐오를 당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에 중국 사람들을 차별하게 만들 듯, 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의 차별이 심했듯, 근본적으로 모든 차별과 혐오는 불안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연약함, 불안감으로 인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잘못이 나의 탓이 아닌 누군가의 탓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의 차별이 더 무섭고 독하다. 그래서 여기 노숙자, 방황하는 아이들,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인종차별이 제일 심하고 독하다. 하지만 단언컨대 남을 차별하고 혐오함으로써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도 더 나아질 수도 없다. 모든 종류의 차별과 혐오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