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전문가를 조정하는 능력_ 판단과 결정 선택과 집중
몇 년 전 치과계에서 꽤 유명한 최모 원장님의 경영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의 중 최원장님은 "우리 병원에서 가장 고가의 트레드밀은 다름 아닌 나인데 내가 진료가 아닌 다른 일을 하느라 가동을 멈추는 것은 사업적으로 지대한 손실이잖습니까"라고 하시더군요. 스스로를 장비로 표현하시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다른 수강생들이 모두 웃음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웃었지만 이 말은 깊이 새겨들을 이야기입니다. 병의원은 사업 특성상 진료라는 행위의 위임이 어려운 업종입니다. 물론 봉직의를 고용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규모가 큰 병원이 아니라면 이 또한 한계가 있음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병원마케팅을 집행하기 위해 원장님의 진료시간과 진료에 집중해야 할 에너지가 분산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의료인의 주 업무는 진료이고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환자를 위해 그리고 원장님 스스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일 것입니다. 따라서 원장님 스스로 마케팅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각종 광고 활동을 하는 업무 자체는 대행할 누군가를 찾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래서 대행사라는 직종이 있는 것이고 마케팅 담당자를 고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장님은 병의원이라는 조직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입니다. 따라서 마케팅의 집행이 아닌 지휘자로의 역량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필자가 광고대행사를 다니던 시절 3년가량 롯데제과 전담 AE(광고 책임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연간 매체 예산도 크고 상품도 다양하기 때문에 당시 매체기획(Media planning)과 전략기획(Account planning)만 경험했던 제 입장에서 업무 전환을 하기에 최적이라는 판단으로 선택한 클라이언트였습니다. 상품이 많으니 새로운 기획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봄에는 목캔디, 여름에는 빙과류, 가을에는 초콜릿류 등 계절별로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즐거움도 잠시 어느 날부터 인가 광고기획서를 받아 든 광고주께서 지속적으로 집행을 중도 취소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8개월간 필자가 작성한 기획안 11건이 연속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었습니다. 차라리 기획이 잘못되었다 거나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으면 좋았으련만 이유는 그저 '광고를 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이 산이 아닌 것 같아요.' 당시 필자는 상사에게 한 건만 더 연속으로 집행이 무산되면 퇴사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였고 2달 후 결국 실제로 퇴사를 하게 됩니다.
마케팅 지휘자로서 원장님의 업무는 판단과 결정, 선택과 집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올해 우리 병원의 마케팅 콘셉트를 개편할지 말지, 광고 집행을 할지 말지, 광고를 한다면 얼마를 쓸지, 누구에게 맡길지, 광고 집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등의 문제를 고민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업무를 맡아야 합니다. 이때 충분히 사전에 고민하고 결정한 사항대로 추진력을 갖고 밀고 나가지 않으면 내부 담당자도 외부 마케팅 업체도 의욕을 잃고 성장을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휘자가 자신의 판단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조직원은 기필코 이를 감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된다는 점을 고려해, 사전에 고민하고 공부하여 스스로 믿을만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휘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의도는 하나입니다. 개원을 하고 진료에 집중해야 하는 원장님께서 가장 적은 시간을 할애하여 병원마케팅을 최대한 빨리 습득하여 적용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미 서점에 가면 병원마케팅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책은 충분합니다. 저의 의도는 어떻게 병원마케팅을 경영자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적용할지에 대해 쉽게 배울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10년 동안 병원 마케팅을 하며 제가 겪은 시행착오와 문제 해결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마케팅 지휘자로서 원장님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모두 인생을 살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부모도 배우자도 나의 존재 의미에 대해 대신 정의해줄 수 없습니다. 사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기업이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를 정하는 것은 오직 그 기업의 대표의 몫입니다. 마케팅의 가장 큰 목적은 나의 소비자(환자)를 확인하고 그들에게 제공할 나의 약속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누구도 아닌 병원의 주인인 원장님이 직접 결정하고 지켜 나아갈 가치입니다.
오늘날 마케팅계의 최고 대가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세스 고딘의 정의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마케팅이다'에서 마케팅은 의도를 가지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는 마케팅의 본질적 의도는 나의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부분입니다. 생각해보면 특히 병의원의 모든 마케팅 활동은 환자의 신뢰를 얻기 위함에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의료서비스를 환자가 선택하는 이유는 결국 진료를 하는 의료진에 대한 신뢰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마케팅을 통해 어떻게 신뢰를 만들 수 있을까요? 세스 고딘은 나의 소비자를 정해서 그들에게 내가 제공할 가치에 대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이뤄진다고 답합니다.
최근 이러한 고객에 대한 약속이라는 마케팅의 중요한 가치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세스 고딘은 온라인 마케팅의 진화로 많은 광고 활동이 그 효과를 측정하고 계산해서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는데, 이것은 단점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키워드 광고를 하면 몇 명이 클릭했는지, 인스타 광고를 몇 명에게 노출시켜 어떤 이들이 클릭했는지와 같은 결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측정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고객의 신뢰는 잊은 채 측정 가능한 결과치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합니다. 마케팅 지휘자는 이러한 시점으로 측정 가능한 광고효과의 결과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신뢰는 상대가 원하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킬 때 얻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마케팅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고민하고 도출해야 하는 중요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일 어떤 영업사원이 병원에 방문해 자신들의 광고 컨설팅을 받으면 매출이 1억 이상 증가한다고 약속한다면 곧이곧대로 믿으시겠습니까? 우리는 그 영업사원이 제시하는 메시지의 진정성을 평가하게 됩니다. 진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 약속의 근거가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영업사원이 이미 광고 컨설팅을 통해 7개의 병원 매출을 1억 이상 올린 경험을 가졌고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환불도 제안한다면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믿어볼 수도 있습니다.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약속과 함께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추후 2장에서 이러한 약속과 근거를 광고회사는 어떻게 도출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자 이제부터 병의원의 환경에 적용해서 생각해보십시오. 원장님의 병원이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한 답이 있다면 마케팅 지휘자로서의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