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림을 그려 먹고살게 되었는지
제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가끔은 작가라고도 하고, 강사라고도 하고, 만화가라고 소개하는 때도 있지만요. 다 하고 있으니 거짓말은 아닙니다. (사진을 자주 올리지만 그건 취미예요...) 전공은 국문학입니다. 그림을 그려서 얼마를 버느냐고도 물어보시는 분들이 자주 있는데, 당연히 사람마다 때마다 다르겠지만 연 소득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적당히 또래의 직장인 정도는 버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 삼았다는 것 외에는 꽤 무난하지요.
문학을 전공해놓고는 그림을 그려 어떻게 먹고살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좀 긴 글을 적어봐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스스로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생각하게 된 건 8살이었어요. 근처 대학교에서 어린이날을 기념해 백일장이 열렸는데 초등학생 부문에서 가장 큰 상인 대상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 그림이 수상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셔서 오빠의 운문 부문 발표가 끝나자마자 일찍 집에 돌아오셨는데, 솔빛이가 가장 좋은 상을 받았는데 어디에 있느냐며 집 전화기가 계속 울리고 있지 뭐예요. 원래 수상자가 자리에 없다면 수상을 취소하는 것이 원칙인데, 가장 좋은 상이었던 대상이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학교로 상을 보내주셔서 전달받았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그림을 잘 그리면 인정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림으로 처음 돈을 번 것은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들어온 외주였어요. 네이버에서 검색하다가 제 블로그를 보셨다며 티셔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홈페이지와 티셔츠에 쓰일 그림을 요청해주셨답니다. 일 년간 일고여덟 건을 작업했던 것 같아요. 외주 비용이 높진 않았지만, 학생의 용돈으로는 꽤 많은 액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야후가 네이버보다 유명했던 먼 옛날, 네이버에서 블로그가 생긴 아주 초창기, 중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주로 그림을 올렸습니다. 손으로 그린 낙서를 스캔해서 올리기도 하고,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사이툴의 이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오픈 캔버스라는 프로그램, 비툴 커뮤니티, 오에카키 등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포토샵이 무려 7.0이던 그때 그 시절... ... 그림 카페 활동도 많이 했고, 서툴지만 그레이징 기법이나 그림툴의 사용법 등을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어요. 방학에는 16시간을 연속으로 그림만 그리고도 있었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하면 저랬을까 싶도록 엄청 부지런했네요.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또래 집단에서의 따돌림이 드문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만큼 부지런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학교생활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여담이지만 그 시기의 저는 정말이지 힘들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청소년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또래들보다 일찍 돈을 벌어본 경험은 제게 꽤 풍족한 청소년기의 마무리를 선물해주었답니다. 그게 엄청 큰돈이 아니어도 친구들에게 석식 시간마다 매점에서 과자 한두 봉지를 사서 나눠줄 정도, 주말에 시내에 나가서 노래방을 가고 스티커 사진을 찍을 정도는 되었으니까요. 직업으로 그림을 그려야지 하는 마음을 먹기도 전부터,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먼저 깨달았어요. 요즘에는 커미션 등이 생겨서 저렴하게 그림을 판매하는 문화가 생겼다지만, 십 년 전에는 학생이 지방에 살면서 업체와 이메일로 소통하며 그림을 그려 돈을 번다는 건 꽤 특별한 일이었어요.
그렇게 그림을 열심히 그렸으면서, 심지어는 돈도 벌었으면서 왜 미대를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종종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 화가의 딸과 농부의 아들이 만났다고 말하곤 해요. 외할아버지께서는 평생 동양화를 그리셨는데, 성균관대에 현판이 걸릴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셨지만 - 순수 예술을 하는 분들이 그렇듯 늘 소득이 일정치 않았습니다. 평생을 외할아버지 옆에서 이 그림만 팔리면 된다며 가족들이 마음을 졸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아온 어머니는 제가 그림을 전공하길 원치 않으셨어요. 제게 늘 직업을 따로 가지고 그림은 취미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죠. 실은 아직도 종종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대를 가지 않았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 위의 이유로 집에서 반대하는 입시 미술을 배우지 못했기에 미대의 실기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없었어요. 둘, 이미 그림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굳이 모두가 똑같이 배우는 입시 미술이 아닌 나만의 스타일을 찾고, 작가 생활에 도움이 되는 다른 전공을 가지자는 생각이었어요. 특히 청소년기에 글짓기와 그림 대회에서 많은 수상을 했었기에, 내 글에 내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니 전공 선택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문학을 전공한 것은 무척 잘한 일이라 여겨요. 많은 사람이 헷갈리는 부분이지만, 국문과는 문창과처럼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학과 공부와 교양 수업을 들으며 인문학적 소양과 넓은 상식, 기획력을 기르기에는 분명 좋았습니다. 동시에 문창단 활동을 하며 시와 소설을 썼던 것은 지금에도 제가 먹고사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기획과 마케팅, 카피라이팅 능력을 함께 가진 일러스트레이터가 드물기 때문에요.
그리고 잘 모르시는 비전공자의 특수한 장점 중 하나, 대학생 시절 주변이 모두 문과대나 경영대를 다니는 친구들이다 보니 디자인 툴을 다루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서 디자인과 일러스트 관련 업무가 생기면 교수님과 주변 친구들이 제게 먼저 일을 할 수 있냐고 묻는 일이 많았어요.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좋은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기에, 본가에서 나와 자취를 하며 몇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어요. 사람이 사는 데에는 돈이 정말 많이 든다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 한다는 거였죠. 부모님은 제가 대기업에 합격해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기를 바라셨어요. 부모님의 용돈을 받으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가장 먼저 학자금을 갚고 보증금을 마련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취직을 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로 내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대학생 시절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꿈꿨기에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이건 어느 것 하나 후회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돈을 주고 배웠던 것들을 돈을 받으면서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것들까지도요. 카페에서 일하며 에스프레소 추출을 알게 되고, 피시방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화장품을 판매하거나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들어가 디자인과 피피티, 액셀을 다루는 일을 하기도 했어요. 덕분에 회사 업무 미팅에도 참여하고, 방학 때에는 토론 캠프 선생님, 상세 페이지 디자인, 외국 카탈로그 번역 등등... ...
결국 대학에 다니면서도 제가 쓰는 돈을 제가 벌어서 쓰고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학자금을 다 갚고 보증금도 모아서 빚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물론 휴학도 길게 했지만요.
제가 제 글에 제 그림을 넣어서 책을 내고 싶다고 했었지요. 대학에 다니는 중간에 저는 1인 출판사를 하고 싶었어요. 내 글과 그림 외에 다른 사람들의 책을 출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앞으로의 출판 시장은 e북으로 이어질 거라고 여겨서 디자인 학원에 들어가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인 쿽과 인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생각대로 e북이 대세가 되지는 않았지만요. 포토샵은 잘 다룰 줄 알았지만,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디자인 기술은 또 미묘하게 다르더라고요.
그때 학원에서 알게 된 강사 선생님께서 제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을 눈여겨보시고 나중에 부원장이 되신 후 제게 디자인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도 주셨답니다! 그렇게 해서 몇 년 뒤에는 디자인 아카데미 강사 일을 또 하게 되었고요. 인연이라는 건 정말 신기해요.
그 와중에 그림 외주는 계속하고 있었어요. SNS에 그리는 그림을 계속 올리고 있어서인지, 20대 초반에 블로그 포스팅 협찬 등을 병행해서인지, 외주를 주신 분께서 다음번에 또 외주를 주시는 경우도 많았고, 외주를 주신 분이 다른 분께 저를 추천해주시기도 했어요. 그렇게 일이 일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제대로 그려보자고 생각했을 때, 캘리툰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저를 아시는 분이라면 제가 업로드하고 있는 만화를 아실 거예요. 조금 더 관심을 주셨다면 그 만화의 이름이 캘리툰이라는 것도 아실 테지요.
처음 시리즈의 그림을 시작한 건 2014년도였습니다. 당시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던 캘리그라피와 그림 모두에 관심이 있던 저는, 내 작업물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림을 스킬 적으로 아주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쉽게 만든 단순화한 캐릭터로 시작한 시리즈가 캘리툰이었답니다.
때마침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할 때, 네이버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그게 바로 네이버 포스트였어요. 지금은 SNS 마케팅하시는 분들이라면 꽤 아실 텐데, 베타 테스터부터 시작해서인지 포스트에 올린 그림들이 네이버 메인에 굉장히 많이 올라갔어요. 한 번은 하루에 48만 명이라는 조회 수가 나오기도 했는데, 대단한 숫자였죠. 나중에는 카카오에서 먼저 제안이 와서 플러스 친구 채널을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내 작업물이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고 애정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때에도 완전히 그림만이 내 길이라는 생각은 크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림에 온전히 내 남은 삶을 투자하기에는 걱정되는 것이 너무 많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외할아버지, 주변에서는 대기업 입사는 29살 전에 해야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지, 첫 직장이 얼마나 영향이 큰지도 이야기하지, 부모님은 여전히 그림은 취미로 하고 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라시지, 당장 그림으로 버는 수익은 일정하지 않았고 만족스럽지도 않았어요. 덕분에 아주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마케팅 에이전시에 인턴으로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마케터의 직무로요. 지금 생각해보면 마케터인데 디자인도 다루고 에디터 역할도 병행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네이버나 캐논에서 하는 대외활동을 병행하고 캘리툰 연재를 이어나갔으니 쓰리잡을 했다고 보아도 되겠네요. 틈틈이 외주가 들어오면 또 외주를 하면서요.
그러면서 캘리툰 메인 노출이 더 많이 되고, 직장 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알게 되며, 출근의 고됨을 알고, 나의 앞날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네이버 메인에 뜬 제 그림을 보고 국민은행에서 웹툰 연재 제안이 왔어요. 6개월 동안 올라가는 웹툰이었죠. 그때, 아, 이 6개월간 이어지는 고정 비용을 가지고 한번 도전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신기한 비밀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똑같은 그림과 경력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대학생이라고 소개했을 때와 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무척 달라요. 스스로를 작가로 소개하고 난 뒤부터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생겼답니다. 저 자신과 제 작업물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도 사람들이 보기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대학생과 프로 작가 활동을 하는 사람은 다르게 느껴지나 봐요.
직장을 나와서 작가로 활동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작가 노트를 쓰고, 이제까지 해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보았답니다. 이때쯤 되니 생각보다 해온 것들이 많아서 막상 정리한 뒤에 보니 저도 깜짝 놀랄 정도로 경력이 나이에 비해 화려해졌어요.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야 하는데(?) 성향이 결코 놀고먹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 왔고...
국민은행에서 진행하던 웹툰 연재가 막 끝났을 때는 갑자기 고정 일이 끊겨 다소 힘들었어요.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여기저기 올려보기도 하고, 캘리툰도 여러 플랫폼에 올려보기도 하고, 외주 구하는 글을 찾아 지원도 해보고 그랬죠. 그러면서 단행본 출간 제의를 받고, 다양한 전시도 진행하고, 이후에 다음카카오에서 제안을 받아 스토리볼 연재를 하고, 내 이름을 단 책이 나오고, 그 책이 서점에 진열되고, 내 그림이 기차역에 공식 포스터로 걸리고, 제주도로 떠나서 라이브 페인팅을 하고... ... 정말 많고 다양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고정 외주를 하며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올 초-중순에는 사건사고로 인해 다소 힘이 들었었는데, 그러면서 일을 가리지 않고 받아보기로 했었답니다. 지금은 그렇게 찾아온 일을 많이 하느라 생각이 깊어질 시간이 없어서인지 열심히 마감하며 살고 있고 지금도 바닐라 라떼를 시켜 마시며 밤을 찢으며 작업할 예정이고요...
분명 세상에는 처음부터 자신의 굳은 의지로 나의 길을 뚜렷하고 선명하게 바라보고, 이게 내 길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걸어가는 멋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처음부터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나의 외줄 인생을 정해놓고 달려온 사람은 아니었어요. 남들보다 많이 헤맸고, 고민했고, 욕심을 부렸고, 이것저것 손을 뻗어본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렇게 헤맨 것이 헛수고였냐고 한다면 그렇진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넓은 바운더리의 일을 할 수 있는 건 모두 그 헤맸던 시간 덕분이라고 여겨요.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고, 작가라고도 불리고 있네요. 어쩌다가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나갔는지, 이 많은 일을 내가 어떻게 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열심히 뛰었는데 그러다 보니 여기에 도착했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실은 제게 어떻게 그림을 그려 먹고살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께서는 아마도 일러스트레이터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으셔서 물어보신 게 아닐까 싶어요. 최근에는 디지털 노마드와 마이너 시장이 커지며 관심이 커지고 있지요. 세간에서는 이 직업들이 아주 부유한 1%와 몹시 가난한 99%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1%라는 확신이 없다면 결정이 어려우리라 생각해요. 저 역시 큰 반대에 부딪히고, 중간에 포기하는 동료 작가분들을 자주 보아왔고, 온갖 비관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이 컸었어요.
저는 걱정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취직과 창작 중에서 두 가지 선을 다 놓치고 싶지 않아 남들의 두 배, 세 배로 많은 일을 찾아 해왔어요. 그런데도 제 남은 인생에 확신이 생긴 것은 아니고, 가끔 힘든 일이 생기면 취직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혼자 그림을 그리는 사람 치고, 직장인 연봉을 벌기가 참 쉽지 않은데 그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올 초에는 잡코리아와 인크루트까지 찾아본걸요...
그래도, 만약 지금에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다 읽으신 분이 계신다면, 내 미래를 한 방에 투자하기보다 할 수 있는 선에서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가만히 있으면 계속 그 자리에 있게 되지만, 걷다 보면 어딘가에는 도착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걸어서 도착한 자리라면 어디라도 뿌듯하지 않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하시는 모든 분께 애정과 응원을 전해요. 오래 함께 걷고 싶어요. 길고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