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다 놓고 도망치면 네 집에서 2주만 재워줘
오늘,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뭐가 가장 힘들었냐고. 요즘 친구는 취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서울로 취직이 되면 처음 해야 할 자취에 대한 고민이 많다.
툭 말이 나왔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게 가장 힘들었지.
맞아, 내 스물은 그랬다.
가장 친하던 친구들은 지방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친척들도 서울에 살지 않았고, 만약 살았다 하더라도 시시콜콜하게 연락하진 못했을 거다. 가족들은 모두 대전에 있었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대학교에 올라와서 처음 안면을 튼 사람들이라 낯이 설었다. 대학교 친구들은 고등학생 때만큼 붙어 다니지도 않았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좋았지만, 서러운 일이 생기면 좁은 방에 혼자 앉아 보내는 새벽이 아주 얄팍하고 길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의 나는 늘 이방인 같았다.
샤워를 할 때마다 화장실 문이 잠겨 그 안에서 굶어 죽었다는 도시 괴담이 생각나 문을 조금 열어놓고 씻었다. 아프면 서러웠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도 걔? 누구? 글쎄, 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사람. 나에게 애정을 품고 있지도,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만 주변에 있으니 쉽게 왜곡되고 심지어 당시의 내 대인관계는 얼마나 서툴고 절박했는지.
아직도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실은 아직도 나는 종종 이 도시가 낯설어지곤 한다. 아직도 버스를 잘 타지 못하고, 아직도 지하철 어플이 없으면 방향과 노선이 헷갈리곤 한다. (길치인 탓도 있다) 사는 곳을 제대로 꾸민 적도 없었다. 여긴 내 집은 아니고, 나는 어디든 곧 떠나야 할 것 같아서.
그래도 새삼스럽게 돌이켜보자면, 그 아무도 없는 밑바닥에서 정말 많은 경험과 인연을 쌓아서 지금이 만들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
얼마 전에 힘든 일이 겹겹이 찾아와 너무 몸과 마음이 무너졌을 때, 친구들에게 뻔뻔하게 이런 부탁을 했다. 내가 정말 다 놓고 도망치면 네 집에서 2주만 재워줘. 그러면서 정말 내가 다 놓고 도망친다면 나를 2주 정도는 재워줄, 내가 염치 불고하고 그런 부탁을 할 만한 친구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봤다. 물론 결국 그런 날이 오지는 않았고 내 마음도 많이 회복되었지만, "그냥 우리 집 들어와서 살아도 되는데 들어올래?"라는 말은 좀 우습게도 기뻤다.
그래도 꽤 잘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