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선생님

2020.05.15.

by 비차

누구든 인생을 살다보면 '은사'님이라 부를 법한 인생의 스승을 한 번 정도는 만나지 않겠니. 그러니까, 이건 내 교육관과 어린 시절의 은사님에 대한 이야기야.


내가 예전에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말을 한 나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나. 아마 한 번 정도는 했었던 거 같아. 아홉 살 때였다. 우리 반을 맡았던 천사같던 담임선생님께서 임신을 하셔서 중간에 선생님이 한번 바뀌었어. 그 선생님께서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지. 집에 돌아가면 선생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엄마께 울며 매일 말했다고 해.


난 수업 진도는 곧잘 따라갔지만 학교에 제시간에 오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였다. 학창시절 내내 그랬어. 오래된 친구들은 알겠지만 시간이라는게 내게 그렇게 명확한 개념이 아니라서 어른이 된 지금도 제 시간을 지킨다는걸 늘 어려워하곤 해.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학교까지 가는 길이 너무 길어서 매번 지각을 했거든. 그 선생님은 지각을 자주하는 내가 너무 미웠던 것 같아. 아니면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같은 잘못을 해도 다른 아이들에게는 시키지 않던 벌이나 기합을 주셨으니까 말이야. 그게 너무 속상하고 수치스러워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말을 했대.


그때 성격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


아이들을 잔뜩 모아 뛰어 놀기 좋아하던 골목대장 같던 아이가 혼자 자리에 앉아 그림만 끄적이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고, 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하기 시작했지. 애들이 훨씬 더 빠르게 알잖아. 선생님이 누구를 예뻐하고, 누구를 미워하는지. 그래서 자기들이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지. 예전이라 왕따라는 말도 알려지기 전인데 말이야. 학교에 가는게 너무 싫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을 만난 건 바로 그 다음해였어. 고작 열 살, 고작 일 년을 함께한 선생님이셨는데, 아직까지도 성함을 기억하고 있다.


나이가 굉장히 많은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매번 구멍이 난 양말을 신고 계셨던 것이 기억이 나.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으셔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학교 생활이 어떤지 여러가지를 물어보고, 어울릴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겨주셨어. 선생님께서 점심시간마다 신발을 벗고 교탁 의자에 앉아서 낮잠을 주무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 양말에 구멍이 났다며 킥킥 웃고 그걸 콕콕 찌르고 했지.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 양말 세트를 골랐던 것도 그래서였어. 학교를 일찍 오는 아침이면 학교 근처에 있는 약수터에서 운동복을 입고 물을 떠 가시는 선생님과 마주칠 수 있었지. 그렇게 지각을 많이 하던 내가 선생님과 학교를 같이 가고 싶어서 조금 더 서둘러서 나오게 되었단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으셨는데, 잘못을 해도 교탁을 두드리며 주의를 집중시키고는 아주 엄숙하고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그 나이대의 애들이 얼마나 짖궂니, 선생님이 항상 아이들을 웃으면서 대해주시니 무례하게 굴거나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곤 했는데 그 모든 걸 받아주는 선생님이셨어. 장난기도 많아 아이들에게 먼저 장난을 치고는 더 기쁘고 재밌어하시던 것도 기억이 나. 지금 생각해보면 반쯤 인생의 도를 깨달은 도인이셨음이 틀림없구나.


당연하게도, 나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어.


선생님이 화를 내지 않는 게 너무 신기했어. 어린 시절의 나는 눈치가 꽤 빠른 편이었는데, 나를 사랑하지 않는 어른들을 굉장히 많이 봤거든. 나는 생긴 것이 그렇게 예쁜 편도 아니었고, 특출난 특기가 있지도 않았고, 말을 좀 똑 부러지게 할 수 있는 여자애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종종 외조부모님댁에 가면 아들만 둘 있는 작은 외삼촌은 얘는 머리카락이 길어서 징그럽다고, 높은 목소리로 징징대는 게 짜증난다고 말씀하시곤 했어. 아빠는 딸을 예뻐하지만, 그래도 대를 이을 아들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셨고, 엄마는 그래서 예쁨을 덜 받는 오빠의 편을 많이 들었지. 그래서 나는 나를 온전히 우선해 사랑해 줄 사람은 별로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여겼어. 나의 어떤 면은 존재한 것만으로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어른들은 아이가 그걸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고 쉽게 말을 하잖아. 나는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았다. 그래서 힘들었어. 그 말들을 여태껏 다 잊지 못했으니.


그때 선생님께 배웠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어. 공부를 엄청 가르치지도 않으셨고, 무언가를 시키는 것도 그리 치밀하진 않으셨고, 애들을 크게 혼내거나 벌주지도 않으셨으니까. 그냥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두 넘치게 사랑하셨고, 아이들이 모두 그걸 느꼈다. 그래서 선생님이 행복할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하려고 했지. 나는 그런 선생님이 너무 좋았어. 그냥 아이들을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존재만으로도 사랑하신다는게 느껴졌거든.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생님께선 한 번도 내게 부정적으로 얘기하신 적이 없었단다.


살면서 정말 중요한 지식을 전해주는 선생님도 많이 계셨고, 특별히 예뻐하고 챙겨주셨던 선생님도 많이 계셨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좀 특이한 일을 업 삼아 하고 있는 덕분인지 나이를 먹어도 만나 뵈었던 선생님들께서 대체로 관심을 많이 보여주셨거든. 고등학생 때는 그게 유독 커서 아이들 사이에서 히스테리를 많이 부리기로 유명하셨던 여선생님께서 나만 만나면 냉장고에 숨겨두었던 초코파이를 꺼내주시기도 했다. 덕분에 고등학교 생활은 선생님의 편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조금 더 힘들었지만.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인상 깊었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선생님은 아마 열 살의 나를 가르쳤던 그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스무 살에 교육청에서 '나의 선생님 찾기'로 찾아본 선생님은 이미 정년퇴직을 하셨더라. 그래서 한 번 정도는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뭐라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오래 지났으니 기억을 못하실까 싶어 찾아뵙는다는 게 무서워져 뵈러가지 못했다.


선생님이 내게 가르쳐주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아무 조건 없이도.


우스운 건 그때 내가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애정을 받는 것이 너무 기뻐서, 열심히 책을 읽고 교과서를 파서 성적이 가파르게 올랐고, 열세 개 반에 48명씩 있던 전교에서 손꼽힐 정도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거.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가 아닌 손녀에겐 관심이 없으셨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조차 상장이나 성적표를 가지고 가야 기특하다 예쁘다는 말이 나왔었는데 선생님은 그런 것이 없었어. 정말 모든 아이들을 평등하고 다정하게 사랑하셨지. 어렸던 나를 바라보는 표정만 보아도 너무 행복해질 정도였어.


어떤 가르침보다 그 깊은 애정이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가르쳐주신 것 이상으로, 스스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10살 꼬맹이였던 나는 어른이 되었어. 최근에 나는 선생님의 역할로 교육 현장의 나가곤 해. 그곳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전하면서 가르침의 재미와 뿌듯함을 느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단순히 무언가 지식이나 스킬을 알려주고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알고 싶고 배우고 싶게 만드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인생에는 나를 가르치고 애정해주고 이끌어주신 수많은 선생님들이 계셨다. 수많은 조언과 대가 없는 베품같은 것이 내가 지금의 자리에서 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어. 어떤 분은 글 쓰는 법을 알려주시고, 나를 채워준 수많은 인문학적 지식들, 어떤 분은 그림을 일로 하려면 갖춰야 하는 것들을, 어떤 분은 디자인 툴을 더 잘 다루도록 알려주셨지.


그런 생각을 했다.


종종 우리는 내가 이룬 것이 '내가' 이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내가 이룬 것은 나 혼자만의 성취나 노력이 아니었다고. 주변의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경험과 조언이 지금의 내가 되도록 단련시켜주신 거라고. 그래서 나 역시 그런 선생님들을 본받아 다른 사람이 이룰 수 있게 도와야 하겠다고, 언젠가는 나도 내가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참 뿌듯하겠다고, 스승의 날을 맞아 어린 시절의 선생님 생각을 하며,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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