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 세 명만 건지면 제대로 한 거야
대학교를 처음 들어갔을 때, 당시 과 대표였던 선배가 대학 생활에 대해 이런 조언을 해주셨단다. 대학교 사 년을 다니며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 세 명만 건지면 대학 생활을 제대로 한 거라고. 그때는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 지금 입학하는 우리 과 동기만 해도 60명인데, 고작 세 명이 남을 수 있나 싶었거든.
그리고 지금은, 그때 과 대표였던 선배의 현명함이 오래 기억에 남아.
최근에 나의 "이 사람과 가까이 지내도 될까"의 기준은 친해질수록 더 많이 챙겨주는 사람인가, 친해질수록 함부로 대하는 사람인가로 시작해. (물론 처음부터 무례한 사람은 애초에 논외가 된다) 후자의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
친해질수록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상대를 어려워하며 더 매너있고 친절하게 대해. 하지만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관계에서의 우위를 점하려 하지. 애초에 새로운 사람이 아니면 별 관심이 없는 부류도 있어. 타인에게 차려야 하는 기본적인 배려나 예의를 친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생략하거나, 나중에 그 친밀함이 무기가 되어 "나 얘랑 친한데 알고 보면 ~해"라며 특별한 친분을 과시하려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이상하게 전달하기도 해.
이런 사람은 주변에 자주 어울리는 친구 중 오래된 친구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꽤 빨리 알 수 있단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찾아다니다보니 언뜻 보기에는 정말 사교성이 좋아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여. 하지만 친해질수록 함부로 대하니 그 곁에는 길어야 2~3년 알고 지낸 사람들 뿐이고, 늘 새로운 사람을 찾아다니더라고. 지켜보며 새 사람을 일회용품이나 연료처럼 소모하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특히 오래된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건 정말 주의 깊게 봐야 해. 오래된 친구가 있더라도 그다지 서로를 아끼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포함이야. 시간이 만들어주는 신뢰 관계는 생각보다 단단하거든. 어렸을 적에 학교에 다니며 좋든 싫든 하루에 열 시간 가까이 붙어있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그럴만해' 혹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고 말할 수 있게 되잖아. 그것이야말로 성인이 되어서는 가지기 힘든 상당히 큰 신뢰란다.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건 얼마나 심각한 거겠니. 제대로 알게 되면 떠나고 싶어지는 사람이라는 건 말이야.
이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나쁘다는 건 아니야. 악의를 가지고 이러지는 않는 사람이 더 많고, 자기 행동을 의식조차 못할 수도 있어.
다만 나랑은 맞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거야. 조금만 맞춰주면 되니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일하고 취미하고 사람에 치이고 현생이 바쁘다 보면 점점 소원해지기 마련인 오래된 관계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 유지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스트레스 없이 가볍게 가볍게 만나며 풀 수 있는 거니까. 그냥 심심하면 술 한잔할 수 있을 정도만 친하면 만족한다거나, 이상형을 만나 연애가 너무 하고 싶다던가, 다양한 사람들의 프로필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던가, 오래되었다고 다 친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흠 없이 어울리고 좋을 사이다.
하지만 나는 깊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여러번 오래 만나야 편해지고, 거리감이 있을 때는 쉽게 꺼내지 못할 서로의 상처나 기억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어 하고, 가까워지면 그 사람이 문득문득 생각나고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이라 (어제도 체리를 1킬로나 시켜버려서 나눠줄 약속을 잡았다) 가벼운 관계가 익숙한 사람과 마주치고 난 날이면 기력이 쇠하고 관계의 현자 타임이 찾아오더라. 그러면 멀리하는 게 더 나은 거지. 서로가 에너지를 뺏는 몬스터가 되면 안 되잖아.
어떤 관계는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가 존재할 때 더 건전할 수 있단다. 어떤 사람은 곁에 두지 않는 편이 더 이로울 수 있고. 친밀할수록 더 친해지고 싶고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게 잘 걸러져서 친밀하게 지내오는 사람들에게 근래에는 평생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려. 평생이라는 말은 참 아득하고 막막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가 많이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은 데리고 앞으로의 평생을 함께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서로가 주고 또 받으면서 더 주고 싶어 하며 유지되는 관계가 벌써 오년 십년 십오년이 금방이더라고.
곁에 사람을 많이 두는 게 크게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요즘, 사람은 양보다 질이고, 알게 되는 사람이 많더라도 거기서 나와 맞는 한두 명만 건지면 만족해. 이제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고, 굳이 맞지 않는 것을 맞는 것마냥 참고 꾸며내어 잘 보이고 싶지도 않아. 쎄하다거나 아니다 싶으면 바로바로 선을 긋고 잘라내야 나중에 현명하더라. 이건 나도 아직도 잘하지 못해 노력 중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나 자신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더라. 무리하고, 내 마음을 무시하고,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홀해지고. 나를 먼저 챙기고 가까운 주변부터 챙기는 게 맞는데 말이야. 그러니 내게 가치있는 타인에게만 잘 하자. 지금은 나를 위하고 내가 위할 사람을 잘 가리는 노력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난 요즘 이런 생각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