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친구, Y에게.

2020. 05. 30.

by 비차

사랑하는 내 친구, Y에게.


오늘은 날씨가 좋더라. 볕이 따뜻하고 거의 여름같았어. 나는 요즘 잠을 통 못잔다. 알잖아, 원래부터 티나지 않게 예민했던 거. 5월 말부터 삼사 일을 제외하고는 세 시간 채 못 자기 시작했으니 한달이 넘어간다. 둔한 척을 하는 주제에 누구보다 신경줄이 약하다고 배가 아프고 잠을 못자는 내게 너는 자주 면박을 줬었지. 오늘도 그렇게 밤을 새고 널 보러 갔다. 이 글도 그렇게 밤을 새며 쓰고 있고.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부터 깨어있다가 일찌감치 꽃시장에 들렸어. 요즘에는 묘소에 두는 꽃도 흰색 계열만 맞추지 흰 국화는 청승맞아서 잘 쓰지 않는다던데, 나는 그래도 네게 격식을 차려보고 싶더라. 작년에는 여러 꽃을 섞어서 엄청 크고 화려한 꽃다발을 주었잖아. 올해는 그냥 애도를 표하고 싶었어. 사실 지난 주부터 꽃집들을 기웃거렸다. 흰 국화 꽃다발을 네게 주고 싶어서. 그런데 일반 꽃집에는 흰 국화 꽃이 없고, 주문해놓고 꽃집 여는 시간을 기다리자니 기차 시간이 애매해 내가 좀 부지런해지기로 했지.


네가 깔깔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누구보다 게으르고 아침 잠이 많던 내가, 새벽같이 열려서 정오에 문을 닫는 꽃시장까지 찾아가 꽃다발을 만들어 오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라며 말이야.


꽃 향기가 아주 좋더라. 날이 더워져서 꽃시장 안은 서늘하게 느껴졌고 나는 약간 어지러웠어. 흰 국화를 사고, 요즘 사람들이 아주 예쁘다 하던 폼폼국화를 좀 섞었지. 가장 싱싱하고 꽃잎이 삭은 곳 없는 것으로 신중하게 골라서.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약을 좀 넣어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건 더워지면 너무 빨리 시들잖아. 내가 더 울 것 같더라고.


꽃을 골라 한아름 껴안고, 포장해주는 곳에 찾아갔더니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께서 계시더라. 포장을 부탁드렸더니 잎을 정리하며 예쁜 꽃이 많은데 왜 흰 꽃만 사느냐 물으시길래 성묘를 간다고 말했어. 그럼 꽃 배치를 고상하게 해야겠다고 하시며 아주 예쁘게 모양을 잡아 주시더라. 검은색 포장지를 집으시려다가 요즘은 색 포장지를 쓰기도 하는데 가신지는 오래 되었느냐 물으셨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더니 그러면 아직 검은색을 쓰기는 좀 이르겠구나 하시며 연한 회색을 골라주시더라. 물주머니 같은게 없어 가는 길이 꽤 오래 걸리는데 시들지는 않을까요 걱정하며 여쭈었더니 국화는 잘 시들지 않아 괜찮을거래. 안심했어. 차를 가지고 왔냐고 물으시길래 어물어물 지하철을 타고 왔다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별 말이 없으시더라. 약간 불쌍하게 보시는 것 같기도 하고, 사연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약간 머쓱했어. 그게 틀린 말도 아니지만.


사실 네가 멀리에 있기는 했지. 가려면 서둘러도 편도로만 네 시간이 넘게 걸린단 말야. 심지어 나는 기차 시간보다도 한참 먼저 나와버렸고. 오늘은 너 보러 가는데만 여덟 시간이 걸렸다.


꽃다발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러 가는 길, 이른 주말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어. 햇빛이 아주 선명하게 플랫폼에 고이는걸 보고 있었지. 몇 번을 갈아탔다. 오늘 내 목표는 꼴사납게 길에서 울지 않기, 였는데, 속이 어지럽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아주 천천히 사람 없는 곳을 골라서 다녔어. 마스크를 끼니 숨이 더 안 쉬어져서 사람 없는 곳에서는 슬쩍 내리기도 했다. 어딜가든 사람이 적고 자리가 많아 다행이었고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나오길 잘했더라.


날이 아주 좋았다. 기차 창문 너머로 속절없이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다가 어지러워서 눈을 감았어. 내려서는 또 한 시간을 차를 타고 가야 하니까.


햇빛이 잘 드는 곳, 네 무덤 위의 나무도 그새 훌쩍 자랐더라. 그 넓은 수목장에 네 묘소 위치를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이 즈음이겠거니 걷다보니 보였다. 일 년 만인데 말이야. 누가 나보다 먼저 다녀갔는지 꽃다발이 이미 하나 놓여져 있더라. 약간 꽃잎 끝이 말려들기 시작한 흰 장미였어. 나무 주변엔 패랭이 꽃을 심어 두었던데, 날이 가물어 약간은 시들어보였지. 아마도 네 남편이 아니었을까. 작년과 재작년에는 나무에 네 사진을 달아두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없더라. 부쩍 자란 나무 아랫부분의 가지를 다 정리하고, 사진은 너무 삭아서 다 치운 모양이지.


산 속이라 풍경이 좋더라. 조용하고, 새소리가 많이 들렸어. 강아지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작은 주차장 앞 정자에는 어르신들 몇 분이 술을 드시는지 젯밥을 드시는지 앉아 계시고. 다시 내려가는 길에는 다람쥐도 보았다. 여기서 너는 드디어 편안하게 쉴까, 이제서야, 싶다가도 나는 이런 애도 역시 떠난 사람보다는 남은 사람들을 위한 합리화만 같아서 참 속상했어.


우리 안 지가 15년이 되었더라.
이젠 내 인생의 반을 너와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직도 네가 떠난게 너무 억울하고 속이 상하는 나는, 가끔 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나 옛날 싸이월드 시절의 사진 같은걸 보곤 해. 아직, 네 번호를 지우지도 못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어딘가에서 네가 여전히 그 느긋하고 나른한 몸짓으로 낮잠이나 뒤척거리고 있을 것 같단 말이야. 네 글이나 사진이 아직도 생생해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건 알아.


네가 곁을 떠나고 벌써 2년이다. 6월이 다가오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야. 그런 생각을 2년 내내 했다. 네가 떠나고 1년이 되던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가 내 꿈에 나왔는데, 내 손을 잡고 바닷속과 사막과 온갖 곳들을 둘이서 다 돌아다녔는데, 올해는 또 그런 일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조금 했다. 내가 너를 너무 그리워해서 네가 내 꿈에도 오지 못하는 걸까.


영혼은 없다고, 사후 세계도 없다고 믿던 너지만 만약에라도 그런 것이 남아있어 이 세상에 네 흔적이 있다면, 오늘 내가 너를 찾아간 것이 기뻤으면 좋겠다. 아주 많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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